만약 원세개가 분수 넘치는 칭제의 야망을 버리고 그냥 곱게 초대 중화민국 총통으로 재직하다가 퇴임했으면 어땠을까요?
원세개는 신해혁명을 일으킨 쑨원과 타협하여 청조를 퇴위시키고 초대 총통이라는 명예를 얻었지만 곧 혁명을 배신하고 막 시작한 중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했죠. 국회를 해산하고 군사독재를 감행했죠.
하지만 칭제는 좌절되고 그가 죽은 이후 북양정부는 원세개의 부하 장군들 사이에서 벌어진 권력투쟁 속에 형해화되어 버렸죠.
이후 남방에서 재기한 쑨원이 창건한 국민당정권은 애시당초 다당제를 허용하지 않는 일당체제를 내세웠었죠.
장개석의 국민당 역시 당내 파벌은 있어도 야당은 허용하지 않는 일당체제였죠. 구색정당은 있었습니다만, 그건 그냥 형식일 뿐이었죠.
국공내전의 결과 결국 중국공산당이 본토를 장악했지만 이 역시 일당체제입니다. 비록 신민주주의를 선포하여 여러 민주당파를 규합하기는 했지만 최종적으로 그 헤게머니를 장악한 것은 공산당이고 이들 민주당파는 구색정당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말죠.
7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대만에서 다당제가 허용됩니다. 그 과실이 바로 현 민진당이지요. 하지만 민진당이 창건 이후 상당기간 불법단체로 당국의 탄압을 받아온 걸 생각하면 대만 역시 순순히 다당제를 허용한 것도 아니엇던 거죠. 대만으로 쫓겨들어갔으면서도 국민당정권은 여전히 일당독재체제를 고수했던 겁니다. 헌데 이때 이르러서야 비로소 다당제가 대만에서 시행되기는 했지만 그 뿐이었죠. 이것이 중국 본토에 무슨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던 것이고, 이게 또 대만 독립이라는 문제와 엮이게 되면 더욱 골치아픈 이야기가 되고 말죠.
중국 본토에서 그동안 숨죽여왔던 민주화의 물결은 천안문사태로 불거졌지만 다들 아시는바와 같이 철권에 진압되고 말았죠.
언제나 되어야 민주주의의 맹아가 싹틀까요?
만약에 신해혁명으로 성립된 중화민국 초기 원세개가 딴 마음을 먹지만 않았어도 중국의 민주화는 무려 100년 앞당길 수 있었던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