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서 가장 자주 입에 오르는 인물들 중 하나를 꼽자면 단연 독일 육군 원수였던 롬멜입니다. 롬멜은 군인으로서의 능력이 긍정적으로 평가받거나 혹은 매우 가혹한 평가를 받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롬멜의 능력은 결코 떨어지지 않으며, 제 2차 세계대전 중 전역의 하나였던 북아프리카에서 연합군은 이 인물을 상대로 수 개 사단의 피와 땀을 그에게 경험치로 헌납하고 나서야 그 능력과 가치를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유능했던 군인인 롬멜은 사실 자기 어필을 매우 강하게 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대중적인 이미지와는 다르게 겸손한 군인은 아니었죠.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젊은 장교로 참전하여 매우 혁혁한 공을 세웁니다. 이탈리아 전선에서 그는 독일군 소속 뷔르템베르크 산악 대대를 지휘하여이탈리아 군이 장악하고 있던 마타주르 산을 점령합니다. 이 마타주르 산의 전략적인 가치가 매우 컸기에 당시 이탈리아 전선 한 곳을 돌파하는 임무를 맡고 있던 오토 폰 벨로우 장군은 마타주르 산을 공략하는 자에겐 독일 최고 무훈 훈장인 푸어 르 메리테(Pour le Merite)를 수여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에 여러 장교들이 자극받은 것은 물론이었고, 롬멜 또한 이 최고 무훈 훈장에 욕심났던 것은 당연합니다. 최고 무훈 훈장은 군인에게 있어서 그 실력을 입증하는 증거이자 출세도 보장하는 보증수표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는 다른 부대와 다르게 거침없이 마타주르 산을 공략하여 정복에 성공합니다. 뒤에서 명령만 내리는 것이 아닌, 병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같이 피와 땀을 흘리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그의 이 위대한 공훈은 엉뚱한 이에게 도둑맞고 맙니다. 마타주르 산과 마찬가지로 독일군의 공략 대상이었던 콜로나 산 역시 정복에 성공했는데 보고 과정에서 콜로나 산 점령이 마타주르 산 점령으로 뒤바뀌어 콜로나 산을 점령한 장교가 되려 푸어 르 메리테 훈장을 수여받은 것입니다.
이에 롬멜은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공훈을 주장하며 상부에 진정서를 제출하기까지 합니다. 이 때문에 큰 스캔들로까지 번지게 될 위험까지 갑니다. 상부로서는 난처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분명 마타주르 산 정복자는 롬멜이었는데 한끗의 보고 차이로 엉뚱한 이가 훈장을 수여받았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황제가 수여하는 최고 무훈 훈장을 취소시키기에도 난감했습니다. 결국 진정서는 독일군 최고 사령부에까지 도달되어 롬멜은 자신의 훈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자존심과 명예는 상처받을대로 받았지요.
이때의 쓰라린 경험이 있어서였을까요?
그는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로 히틀러에게 자신의 전투 기록 모음집을 전달하는 한편, 그의 오랜 동료이자 종군 기자장이었던 쿠르트 헤세에게 부탁하여 선전 보도를 위한 참모들을 참모진에 배속시킵니다. 또한 괴벨스의 선전부 국장이었던 잉에마 베른트 중위까지 참모진에 편입되어 그는 자신의 전과를 확실하게 어필할수 있게 되었죠.
괴벨스를 비롯하여 나치 독일 정권의 인물들은 이 장군의 자기 어필을 받아들이는 한편,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독일군의 신화로 만들어나갑니다. 물론 그가 전쟁에서 이룬 공적은 당연히 존재한 것이나, 그 공적은 나치 정권의 정치적인 이용을 위하여 매우 잘 이용되었지요. 롬멜의 의도와 나치 정권의 계산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 감이 없잖아 있긴 합니다.
또한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서라면 연출된 사진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롬멜은 이제 사람들에게 더 알려지고 싶어했습니다. 즉 그는 카메라맨이 와서 자신의 사진을 찍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때때로 스스로 포즈를 취하기도 했는데, 카메라맨이 그의 옆모습을 찍고 싶어 하면 그는 힘이 넘치는 자신의 턱을 보이며 사진 찍기 좋게 몇초 동안 그대로 있기도 했습니다."
-하인츠 베르너 슈미트, 롬멜의 참모부 배속 장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는 연출과 기획으로 만들어지기만 한 능력없는 장군이라고 혹평한다면 이는 조금 가혹한 처사일 겁니다. 그는 확실히 카리스마와 지도력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늘 전선에 앞장서서 전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전술을 펼쳤으니까요.
"그는 타협할 줄 모르는 완고함에 근본적으로는 냉정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을 단지 그 능력으로만 평가하려고 했고 자신의 상관이나 부하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를 쓰지도 않았다. 그는 군대를 잘 보살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인기를 끌기'위한 모든 방법은 무시했다."
-알프레드 가우제, 롬멜의 참모장
실제로 그는 병사들에게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지는 못하였고 장교들은 그의 참모로 전근되면 벌을 받는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지 전장에서 롬멜을 만나본 사람이라면 그에게서는 존경과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최전방에서 매일같이 그를 만나본 병사들은 그때문인지 버려진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의 의도된 연출과 기획이 성공적으로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연출과 기획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그 능력을 입증한 것이기에 성공한 것이 아니엇을까요?
어찌보면 사회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그저 열심히 일한 것만으로도 공적을 인정받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면 가로채이거나 무시당하기 일쑤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니 적절한 자기 어필이 필요한 것일지도요. 아 물론 능력도 없는데 화려한 자기 어필과 연출만 해대면 그 후폭풍은 감당하기가 매우 힘들지요. 능력도 없으면서 날뛰기만 하면 뭐.....
비단 롬멜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어쩌면 늘 자기 어필과 연출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p. s : 롬멜뿐만 아니라 이처럼 자기 어필을 하던 사례와 보강, 다양한 토론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