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을 보면 6월 22일에 유독 전쟁의 이정표가 된 사건들이 많기에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ㅋ
1. 1940 6.22 프랑스 항복
전해 일어났던 독일의 폴란드침공으로 비롯됀 2차세계대전....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선전포고만했지 이후 별다른 전투는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전에 라인라트,오스트리아,체코를 눈뜨고 내주어버려서 독일의 요새화와 무장력만 급격히 강화시켜주었고 독일견제를 위한
소련과의 연대역시 뜨끈미지근한 태도로 일관해 의심을사고 오히려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보호해줘야할 폴란드를 오히려 뒤통수치게
만들어버렸죠... 이후 폴란드는 어떻게든 막아버려 안간힘을 쓰지만 유럽제일의 양대강대국의 협공에 중과부적으로 점령당해버렸죠..
프랑스와 영국은 그사이 도와주는 대신 마지노선을 강화하는데 치중하였죠...폴란드를 점령하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을 동안 프랑스는 단지
마지노선만을 강화했을뿐이였습니다...
그리고 5월쯤에 전면적인 프랑스와의 전쟁이 시작했는데 프랑스의 예상을 뚫고 구데리안이 창안한 전격전으로 아르덴 숲을 통과해 프랑스와 영국
주력군을 포위하는 방법으로 대응하였습니다..
결국 프랑스군의 수뇌부의 삽질과 구데리안,만슈타인,롬멜등 20세기 최고의 명장들의 활약때문에 한달만에 그야말로 순식간에 프랑스를 점령시켰죠
프랑스정부는 유서깊은도시인 파리의 파괴를 막기위해 무방비도시로 선언하고 튀어버렸고 프랑스전역이 공황상태로 돌입하였죠....
결국 스페인에 있던 1차대전 베르됭 전투의 영웅 페텡을 불렀습니다..여담으로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가
'님에게 덤탱이 씌울요량임 제발 가지 마세염 ㅠㅠ' 이랬지만 페탱은 다 알고있다면서 그래도 누군가 책임져야한다면서 묵묵히 프랑스로 갔죠...
그리고 프랑스의 수장자리를 받아들이고 더이상의 프랑스의 파괴를 막기위해 정전협상(이라고 쓰고 항복협상)에 들어갑니다
어릴때 나폴레옹의 활약상을 분명히 들었을테고 가슴에 깊은 자부심을 느꼈을테고 70년전의 보불전쟁당시의 패배때 눈물을 흘렸을 소년이
다시 노인이 돼서 항복협상의 대표자가 된 기분은 남달라겠지요....
그리고 전후 나치청산의 광풍에 의해 매국노로까지 낙인이 찍혀서 사형선고까지 받고 쓸쓸히 감옥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아무튼 프랑스는 6월 22일에 항복을 하였습니다..
2. 1941.06 22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이에 자신감이 붙은 히틀러는 영국과 배틀 오브 브리튼 항공전을 펼치고 마침내 다음해 6월 22일에 지금까지도 독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대형 사고를 치고 맙니다....
바로 소련에 대대적인 침공을 감행하였습니다... 루마니아,불가리아,헝가리,이탈리아 등지에서 싹싹 긇어모은 300만이 넘는 대군으로
전면적인 침공을 감행하였습니다...원래는 2달먼저 작전을 개시하였는데 이탈리아가 그리스에 어그로를 끌고 유고슬라비아가 반독노선으로
나가자 이들을 정리하느라 2달가량을 허비하였죠....
(결과적으로 시간을 끌여주어서 모스크바 공방전에 큰도움을 주었습니다.... 무솔리니가 세계를 구했습니다)
300만명으로 북부집단군,중부집단군,남부집단군으로 나누어서 세갈래에 걸쳐서 진격을 감행하였습니다..
북부는 북쪽의 레닌그라드까지 중부는 모스크바를 남부는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를 목표로 진격하였죠....
당시 소련은 폴란드국경밖에 수년에 걸쳐 구축하였던 방어선을 스스로 무력화시키고 다시 새로얻은 폴란드영토에 방어선을 구축할려다가
미쳐 구축하기도 전에 대형 날벼락을 맞은셈이죠....거기다가 스탈린의 대규모 장교숙청으로 인해 군체계가 사실상 마비된 상황에서 세계 최강의
무기와 세계최고로 잘 조련된 대규모를 병사들을 맞이하니 인류 전쟁 역사상 최악의 참사가 벌어지고 맙니다......
수백만의 병력이 순식간에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혀버리고 만거죠....
북부는 만슈타인의 맹활약에 레닌그라드까지 순식간에 밀여붙였지만 시가전에서 큰피해를 우려하여 포위하여 고사시키는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였죠..
결국 44년때 포위가풀릴때까지 꼼짝도 못하고 갇혀지내야만 했습니다...(물론 레닌그라드시민의 기억하고 싶지않는 참혹한 삶은 예상할수있겠죠)
중부도 모스크바앞의 스몰렌스크까지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모스크바를 눈앞에 뒀지만 소련의 주력군이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남부집단군이 지지부진
하자 식략을 비롯한 자원확보를 위해 히틀러가 중부집단군에게 남부집단군을 지원하게 하는바람에 모스크바공격이 지연되었습니다...
그리고 구데리안의 놀라운 활약에 키예프를 비롯한 우크라이나가 떨어지고 소련의 주력군은 붕괴돼고 말았죠.....이제 풍전등화의 모스크바를
노릴차례지만 시간을 너무 지체하여 가을철에 접어들었고 가을비로인해 진흙탕으로 변하는 바람에 독일군의 가장뛰어난 장점인 기동력을
상실하였습니다...그리고 바로 동장군이 오고 월동준비를 하지 않는 독일로서는 치명적이였죠....무기도 얼어붙고 청야작전으로인해 추위를 막을
시설물도 전혀없었구요...그리고 일본이 러시아에 공격의향이 없다고 판단한 스탈린은 만주와 몽고에있는 주력군을 서부로 불러와 지원케 하였습니다.
결국 혈전끝에 모스크바를 사수하고 독일로부터 한숨돌리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모스크바에 올인하여 교통 중심지민
모스크바를 점령하였다면 소련의 교통을 마비시켜서 오히려 더큰 이득이라고 하고있죠....
우크라이나자원보다 이게 더 이득이라고 하는데 판단은 여러분들에게 맡길께요....
어렸을대 소련이 2천만명의 희생자를 냈다고 했을때는 그냥 그런갑다하고 무덤덤했는데 어른이 돼고나서 다시 독소전을보다가 읽다가도
정말 숨이 막힐지경이더라구요..읽는거만으로도 소름끼치는건 이전쟁이 처음이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미친행위였죠....
3. 1944.06.22 소련의 역습 바그라티온 작전 개시
그리고 이번에는 소련이 반격할 차례죠......독소전쟁후 정확히 3년후 이번에는 스탈린이 제대로 복수를 시전합니다...
독일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작전으로 계획이 되어있었는데 5월말쯤 본격적으로 지시를 하달하였지만 극도의 기밀유지로 전파속도가 느려지자
스탈린이 3년전 바르바로사작전이 6월 22일에 실행된것에 대한 복수로 아예 6월 22일에 작전을 시작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당시 독일은 몇주전에는 서부전선에서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돼어 많은 기계화전력이 서부쪽으로 이동하여
동부전선이 이전보다 약화돼어 있었고 오랜 소모전으로 북부와 남부집단군이 약체화 되어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소련역시 이제 생산력이 급증한상태고 병사들 역시 3년간의 실전으로인해 만렙에 가까워지고 있던차였습니다....
그리고 2년전에는 스탈린그라드에서의 승리 그리고 1년전에는 처음으로 쿠르스크에서 독일의 전면공세를 전면전으로 맞붙어서 독일은 막아낸적이 있
어 자신감이 더욱 붙은 상태였죠...
이에반해 독일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생산력도 약화돼기 시작하고 숙련됀 병사들도 많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힌상태였구요...
안그래도 노르망디에서 대규모의 전선이 열리는통에 양면전선이 부활하여 전력을 반띵분산을 시켜야하는데 전전력으로 동부전선에 투입해도
소련을 막기 급급했는데 서부쪽에도 대규모 전선이 열리다니 죽을맛이였죠....
소련역시 북부집단군이나 남부집단군을 치는척 헤이크를 써서 곧바로 중부집단군을 들이쳐서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숙청돼고 없지만 그전에 미하일 투하체프스키가 수립한 교리인 종심작전으로 병력을 포위하여 각개격파하는 형식으로 진군하였죠..
종심타격작전은 그냥 소련이 세운 전격전이락 보시면 될듯합니다 -_-;
거기다가 히틀러의 대책없는 임전무퇴의 명령으로 작전상 후퇴같은 이동도 못해보고 각개격파 당하기 일쑤였죠... 이렇게 소련군이 독일군을 한꺼풀씩
벗겨내가며 전진할동안 독일내부에서는 또 대형사건이 터지고 맙니다...히틀러 암살미수사건인데 당분간 독일수뇌부자체가 마비될동안
노르망디상륙작전으로 서부전선에서 연합군이 치고올라오고 동부전선에서는 혼란에빠진 독일군을 상대로 순식간에 민스크 등지의 우크라이나와 벨로
루시등지의 소련이 잃은 영토를 모조리 수복하게 됩니다... 결국 폴란드까지가서 바르샤바앞에서 진격을 멈추고 숨고르기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작전으로 사실상 독일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게 됩니다......그리고 몇달간 전열가다듬고 독일에 사형선고를 내릴 베를린공방전에 돌입하게 돼죠...
정말 일부러 날을 잡은건지 6월 22일에 2차대전을 결정짓는 대형사건이 연달아 일어나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