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신화학은 역사학의 하위분류가 아닙니다.
역사학에서 신화학의 연구 결과를 자주 활용하곤 합니다만,
이건 학제 간 연구로서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 서로의 연구 결과를 참고하는 의미에서 그런 겁니다.
역사학은 마찬가지로 인류학, 언어학, 문학, 종교학, 지질학, 천문학, 심리학 등의 연구 결과도 참고하지만 이들이 역사학의 하위 분류는 아니죠.
신화학은 그 연구 결과들이 가치를 증명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요새는 아예 별도의 학문으로 취급되는 경향도 있습니다만,
원래는 심리학, 그 중에서도 정신분석학의 하위 분류로서 출발한 학문이고
거기에 인류학자들과 종교학자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심리학-인류학-종교학의 학제 간 공동 연구로서 발전해 온 학문입니다.
신화학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해도 좋은 프로이드는 인간의 무의식과 리비도가 투영된 사례로서 신화에 주목하였고,
마찬가지로 정신분석학자였던 칼 융은 인류 공통 무의식의 존재를 입증하는 자료로서 신화학을 활용하였습니다.
이렇게 정신분석학에서 신화를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거리 정도로 여겨지던 신화가 학문의 영역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 바톤은 프레이져와 같은 인류학자들이 이어 받았습니다. 그들은 신화에 투영된 신화시대 인류의 생활 약식과 풍습, 문화에 주목하였죠.
그리고 여기에 종교학자들이 뛰어들어 현대적인 종교 이전의 "원초적인 종교"로서의 신화를 연구합니다.
현대 신화학의 거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들 중에서 조지프 캠벨이 대표적으로 심리학+인류학의 관점에서 신화를 연구한 사람이고,
미르치아 일리아데가 이와는 대조적으로 종교학적 관점에서 신화를 연구한 사람이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흔히 신화라고 일컫는 것들 중 일부가 역사학의 연구에 편입되는 경우들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물론 역사학자가 직접 신화를 분석하는 경우도 없는건 아닙니다만,
보통은 앞서 말한 것처럼 신화학자들이 신화를 분석한 결과를 역사학자가 다른 학문의 연구 결과를 활용하듯 활용하는 것 뿐입니다.
신화가 역사에 편입되려면 이런 과정을 거칩니다.
우선 신화학은 인류학자들의 작업에서 시작됩니다. 이들은 신화를 수집하죠.
전 세계를 떠돌고 오지를 찾아다니며 신화와 전승들을 수집합니다.
이렇게 수집된 신화를 분석하는 것은 보통 심리학자들과 종교학자들의 몫입니다.
이 신화에 반영된 인간의 심리와 신앙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죠.
신화에서 대부분의 부분은 이 단계에서 해명이 됩니다.
신화의 내용을 구성하는 상당 부분은 그저 인류의 공통 무의식이나 공통적인 체험에서 기인하거든요.
예를 들어, 전 세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홍수 설화는
초기 농경 사회에 범람원 근처에 도시를 세우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강물의 주기적 범람에 의해 도시가 침수되던 경험,
그리고 수로를 파서 물길을 제어하고 높은 건물을 세워 피신할 곳을 만드는 등 여기에 맞서 싸우던 경험이 투영된 것이라고 설명 가능하죠.
실제로 각 지역의 홍수 설화는 세부적인 부분, 특히 홍수에 대처하는 방식이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데,
여기에 각 지역의 지형적 특성이나 지질학적 특성, 문화적 특성 등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문제는 이런 일반론적 방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입니다.
상기한대로 신화의 상당 부분은 그저 인류의 공통 무의식이나 공통 체험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하지만,
가끔은 그런 방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신화소들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모든 인류에게 공통되는 것이 아닌, 해당 지역 사람들만이 경험한 어떤 강렬하고도 특별한 역사적 체험"을 가정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신화의 내용들도 있다는 것이죠.
대표적인 것이 성경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포함하는, 고대 근동의 "목동과 농부의 이야기" 유형의 신화들입니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가 왜 역사학적으로도 중요한 신화인가하면,
이게 고대 근동의 고유한 신화 유형인 "목동과 농부의 이야기"에 속하는 신화이면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목동과 농부의 이야기" 유형에 속하는 신화로서 고대 수메르의 양치기 여신과 농부 여신의 노래라든지
탐무즈의 꿈 이야기나 탐무즈신을 위한 애가, 탐무즈와 이슈타르 이야기 같은 것들이 있죠.
(굳이 이 사례를 예로 드는 것은 얼마 전 떡밥이 되었던 성경의 사료로서의 활용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신화학자들은 이 "목동과 농부의 이야기"는 단순한 일반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 놓습니다.
여기에는 그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공통 무의식이나 어느 지역에서나 똑같이 겪은 공통 경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신화학자들은 이 유형의 신화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웁니다.
"목동과 농부의 이야기" 유형의 신화에는 유목민족과 농경민족간의 물리적 충돌이 반영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수메르와 가나안에서 모두 유목신(두무지, 아벨)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유목민족들이 결국 농경민족에게 밀려 목초지를 빼앗기고 광야로 밀려나야했던 결과를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두무지(탐무즈의 원형)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애가에는 춥고 메마른 땅으로 내몰려 가축들이 죽어가는 상황을 묘사하는 구절이 많지 않은가?
그렇다면, 수메르에서 탐무즈가 대지의 여신인 이슈타르와 혼인했다고 하는 것은
수메르 지방에서는 결국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극적인 화합이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다만 탐무즈가 일년 내내 이슈타르와 있지 못하고 일년의 반은 저승에서 보내야 한다는 신화의 내용은
유목민족이 광야에도 풀이 나는 우기에는 광야에서 지내다가 건기에 한해 농경지 근처로 와서 지내는 것이 허용되는 식으로
유목민족과 농경민족 사이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을까?
신화학자들의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 바톤을 역사학자들이 이어 받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이 가설이 그럴싸하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검증에 들어가죠.
지질학의 도움으로,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며 우기에는 광범위한 목초지가 형성되던 곳임을 밝혀냅니다.
그러다가 건기가 오면 범람원과 오아시스 주변에만 목초지가 형성되고, 광야는 말라버립니다.
이러한 조건은, 제한된 목초지를 두고 농사를 지어야 하는 농경민족들과 가축들에게 풀을 먹여야 하는 유목민족들이 충돌하기에 좋은 조건입니다.
고고학의 도움으로, 고대 수메르의 도시들을 발굴한 결과
수메르에 도시를 세우고 최초의 국가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농경민족임을 밝혀냅니다.
반면 유목민족들의 흔적은 강 주변이 아니라 시나이 광야와 같은 광야에서 주로 발견된다는 점에도 주목합니다.
하지만 두 민족 간의 교류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수메르의 설형문자 점토판에는 양을 사고 팔았던 기록, 양털을 깎는데 세금을 부과했던 기록 등이 발견됩니다.
이렇게 당시의 지질학적 상황, 그리고 유물와 유적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정황들은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이 충돌하기에 좋은 환경임을 보여줍니다.
유목민족 입장에서 농경민족은 자신들의 목초지를 빼앗고 거기에 도시를 세워서 세를 불릴 뿐 아니라,
나라라는걸 세워서 멋대로 법이라는걸 만들어 놓고 자기들에게까지 적용해 양털 깎는 데에까지 세금을 부과하려는 사람들로 보일테니까요.
자, 여기에서 이러한 모습을 잘 투영하고 있는 사료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성경이죠.
(물론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사료에 성경"만" 있는 건 아닙니다. 성경을 예로 들자는 겁니다.)
성경에서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색채를 떼고 보면,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유목민족이 결국 수메르를 떠나 새로운 땅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인물이고 분명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신화적인 이야기이지만
신화로서 분석하면 유목민족이 결국 수메르 지방을 떠나 목초지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훌륭한 원형이 되죠.
고대 근동의 여러 설화들과 고대 근동의 지역적 특성, 그리고 유물 및 유적을 추론할 수 있는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충돌 이야기가
히브리 민족이라는 민족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건국 설화"로서 형성되어 전해지고 있는걸 볼 수 있는 겁니다.
이러한 근거들을 활용해, 역사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고대 수메르의 모습을 구성할 수 있는 겁니다.
1. 고대 수메르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중심으로 농경민족들이 농지인 범람원을 중심으로 정착 생활을 하면서 형성되었다.
2. 수메르의 도시들이 커지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제한된 목초지를 두고 유목민족들과의 충돌이 일어났다.
3. 이 과정에서, 인구수에서나 기술에서나 문명 수준에서나 모두 열세인 유목민족들이 패배하여 광야로 밀려났다.
4. 이들 중 일부는 광야 생활에 적응하여 완전한 유목 민족이 되었다.
5. 이들 중 일부는 목초지를 찾아 가나안이나 이집트 지역으로 흘러들어갔다.
6. 이들 중 일부는 농사를 방해하지 않고 광야에 풀이 없는 건기에만 도시 근처에서 지내는 조건으로 농경민족과 합의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제, 신화의 내용은 "역사"가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신화가 역사가 되는거죠.
이렇게 신화학의 연구가 역사학의 자료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신화에는 어쨌든 당대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두무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에는 목초지를 잃고 광야를 헤매는 유목민들의 애환과 한이 담겨 있습니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는 아무 죄도 없이 죽임당한 아벨에게 투영된 유목민들의 억울한 호소가 담겨 있습니다.
탐무즈와 이슈타르의 결혼 이야기에는, 드디어 오랜 갈등이 종식되고 극적인 합의에 이른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기쁨이 담겨 있습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신화이고 허위일지 모르나, 거기에 담긴 당대 사람들의 "감정"은 진실입니다.
자, 여기에서 신화가 역사로 편입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도출됩니다.
당대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당대인들의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CE 1970년대의 사람이 BCE 7000년~2000년대(이것도 주장하는 사람마다 다름)에 대해 지어낸 이야기는 신화가 될 수 없습니다.
그는 당대인이 아니기에 당대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낼 길이 없고,
자신이 살던 당대에 대해 쓴 것도 아니기에 설령 거기에 진솔한 무언가가 담겨있다 한들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이 세상조차 아닌 완전한 별세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 제 1차에는 직접 참전하기까지 하면서 고민한
인간의 본성과 선악의 문제에 대한 저자의 진지한 성찰과 고뇌가 담겨있는 "반지의 제왕"이 훨씬 낫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그저 소설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톨킨의 고뇌는 진솔하니까요.
*뭐 "그 책"도 거기에 담긴 "우리 민족이 이렇게 킹왕짱인 민족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망상만큼은 진솔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