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하실 때는 단정적인 표현은 피하시기를
사람들이 너무 역사를 만만하게 생각합니다. 사료 한 줄 읽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역사를 논합니다. 역사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닌데, 단순한 편견이나 단편적인 지식으로 어설프게 단정을 짓는게 문제입니다.
역사 전공자로서 가장 큰 불만이 의학이나 물리학, 생물학 같은 학문은 전공자들의 견해가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도대체 아무나 다 아는 척을 합니다. 전공자가 한마디 해도 씨알도 안먹힙니다.
미안하지만 역사는 절대로 쉬운 학문이 아닙니다. 막연하게 이런게 아닐까, 기존 학설에서 이렇게 배웠는데 했던 부분들이 실제 사료로 들어가면 그런 선입견이 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과서에서야 장기추세를 뽑아서 간략하게 몇줄로 줄여 놓으니까 시험공부하는 식으로 "무슨 시대에는 무슨 일이 있었다" 식으로 단순하게 기억을 하고 있죠. 그런데 사료를 정밀하게 살피다 보면 장기추세에 반하는 개별 사건, 흐름들이 얼마든지 관찰이 됩니다.
논문 쓸때 일종의 기술로써 교육을 받는게 절대로 확정적으로 서술하지 말라는 겁니다. "~경향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라든지 "~으로 판단한다" 같은 표현을 써야지, "~임에 틀림없다", "~이었을 것이다" 같은 확정적 표현은 너무나 토론자에게 공격 당하기 좋다는 것이죠. 알면 알수록 뭔가 확고하게 말하기가 조심스러운데 어떻게 사료 한 줄 안 읽어 본 사람들이 그렇게 아는 척은 잘하고 그렇게 쉽게 결론을 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과거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너무나 쉽게 단죄를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래서 잘못했어, 참 한심해 이런 이야기 참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거 진짜 어설픈 생각입니다. 물줄기가 흘러갈때 이쪽으로 갈 수도 있고, 저쪽으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지금 우리가 보는 물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죠. 그 물줄기가 그런 모양이 된데는 다 굽이굽이 이유가 있는 겁니다. 역사도 마찬기지입니다.
역사를 보다 보면 어떤 순간에는 책을 덮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탄식이 우러나오는 순간이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옛사람들이 정말 끔찍하게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고 해도 그렇게 된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로를 짚어가다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이해가 된다는 말은 잘 했다는 말도 아니고, 비판을 안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당시 사람들이 잘못했고, 비판도 해야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가 갖고 있는 불완전함을 이해한다는 겁니다. 그들이 저질렀던 잘못을 우리도 충분히 저지를 수 있고, 혹은 이미 저지르고 있다는 겁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사상적으로 경직되었다고요? 상복 논쟁이나 하고 있으니까 나라가 망했다고요? 후세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던 색깔론은 뭐라고 평가할 것 같습니까? 지금 여야 정치싸움이 다 민생을 위한 생산적인 논쟁입니까? 제가 진짜 같잖게 생각하는게 조갑제 같은 극우들이 조선이 성리학만 숭상하다 망했다고 까는 겁니다. 그런 인간들이 사상의 자유는 그렇게 싫어하죠. 조선이 세도정치로 망했다는 인간들이 지방대학에 대해서는 서슴없이 지잡대라는 표현을 쓰죠. 조선의 세도정치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이른바 '경향분기'-요즘으로 치면 수도권 집중현상-가 있었습니다.
저는 게시판에서 과거 인물이나 과거 왕조들을 너무나 쉽게 단죄해버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철렁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를 포함한 대한민국 사람들이 과거 우리 조상보다 더 현명한지, 우리 시대가 과거보다 더 위대한 시대인지 저는 어떠한 확신도 가질 수가 없는데 말이죠. 과거 왕조들의 업적을 논하는 것도 그렇게 따지자면 대한민국은 뭐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쌓았나요? 물론 대한민국은 아직도 건국 초기에 해당하니 몇백년짜리 과거 왕조들이랑 직접적인 비교는 힘듭니다만.
흔히 19세기 조선을 붕괴의 시기로 봅니다. 민란, 세도정치, 외세의 침입, 전통 시스템의 혼란. 분명히 많은 문제가 있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 시대를 그냥 단순히 혼란과 붕괴의 시기로 넘겨 버리기에는 그 이면에 그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 시대를 극복하려고 노력한 수많은 인물들의 고민과 눈물이 존재합니다. 최제우에 대해 교과서에는 그냥 짧게 넘어가죠. 그런데 최제우는 자그마치 자기집 여종 둘을 하나는 맏며느리로 삼고, 하나는 수양딸로 삼습니다. 자유와 평등을 헌법정신으로 하는 민주주의공화국 대한민국에서도 엄연히 계급이란게 있고, 출신배경을 따지는데 19세기 사람이 저런 실천을 했습니다. 동학의 개벽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상가 중에 강증산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도를 아십니까" 대순진리회가 그쪽 계열입니다. 강증산이 좀 허황된 주장을 한게 많습니다만, 그런 사람도 만민평등과 여성해방을 이야기합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도 반말을 하지 말도록 제자들에게 가르쳤고, 앞으로 남성에게 억눌려온 여성들이 한을 풀고 귀한 대접을 받게 될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과거 신분제의 영향이 미미한 것은 멀리는 조선시대 후기부터 점진적으로 이뤄진 신분제의 이완과 가장 가까이로는 6.25의 영향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선각자들의 노력이 지금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것들을 이루는데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최소한 여기 불펜에서만이라도 역사를 논할 때에는 좀 더 신중하게, 좀 더 겸손한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단죄할 수 있다면, 미래도 우리를 단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가 올 미래에 얼마나 떳떳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