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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기록의 진실은? (上) - 출생
게시물ID : history_216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윤연우
추천 : 6
조회수 : 666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5/06/21 04:14:56
생산적인 글을 쓰고 싶어 역게에 들른
그냥 오유 과객입니다


사학과는 아니고 국문과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나 공부 좀 했다요!!!" 할 수준은 진짜진짜 못 됩니다 ㅋㅋㅋ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ㅋㅋ
그냥 흥미거리 위주로 작성해봤습니다 ㅎㅎ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46379697721146ee6c2e3c644f08e233.jpg
(이미지 출처= http://www.cntv.co.kr/hwangjiny )

우리가 알고 있는 황진이는 보통 위와 같은 이미지일 겁니다

몇 마디로 일축하자면

색기 넘치고
남자를 잘 홀리며
시가를 잘 짓는 등 악가무에 능한
요염한

여인입니다
여자다앗!


그러나 결론부터 내리자면
이런 모습은 황진이 사후 기록된 전승들이 섞인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덧붙여서 현대적 변용 또한 거쳤죠

무서운 것은...

그녀의 성씨조차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ㅎㅎ



1163142989152.jpg
(이미지 출처= http://luxury.designhouse.co.kr/in_magazine/sub.html?at=view&info_id=39092&c_id=00010001 )

그렇다면 황진이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가?

그러기 위해 우리는 황진이라는 존재가 쓰여진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황진이라는 인물이 존재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다양한 기록이 남을 리도 없으니까요 환단고기 그런 거랑 엮으면 큰일

황진이는 아마 개성을 주름잡았던 기생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
여기서 잠깐 ! 우리는 기생에 대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게 분들은 모두 아시겠지만... 그래도 일반인 분들이 많이 보니까 설명하자면
조선의 기생은 창녀가 아니었습니다




기생은 조선시대에는 비록 천민 신분이었지만

사대부와 밀접관 관련을 맺는 특수한 신분으로,

그들의 사상을 흡수하고 사대부와 천민 중간에 있는 특수한 계급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생=창녀의 공식은 일제시대부터 나온 말입니다




근대 가족 제도가 확립되고

유곽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본디 기생과 유녀를 확실히 구분했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기생=창녀=매춘부라는 공식이 서서히 자리잡게 됩니다

크기변환_로쎄티 작품(1902년의 조선 한양 기생) (1).jpg
조선 후기 기생의 모습.
(출처=http://slrgg.co.kr/?mid=free&document_srl=2645099&rnd=882219)


"기생과 창기와 작부*는 악마같은 요물,
* 작부 : 잔치에서 술따라주는 것을 업으로 삼은 여자

"조선 전도"에 몸과 노래를 팔아서 남자의 지갑을 상대로 생계를 세우는 기생, 창부 등 화류계의 식구"
(1927년, 동아일보) 



라는 말이 1920년대 신문 칼럼에 실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심지어 1923년에는 기생 강명화가 자살하는 사건도 일어납니다
기생이 천시받는다는 까닭에 
강력한 결혼 반대에 부딛쳐서 
결국엔 자살하고 만 거죠

그전까진 기생이 굉장히 알아주는 공무원 같은 직업이었습니다





아무튼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ㅋㅋ

다시 황진이 얘기로 돌아갑시다



1. 그녀의 출생


GC003P9065_l.jpg
(출처 = http://m.grandculture.net/contents.aspx?use=&ct=A&ctid=A00008&contid=GC00302085&mode=3 )
성소부부고. 허균의 책.




위의 책은 허균이 쓴 성소부부고라는 책으로,
황진이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 나타난 책인데
대략 1613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서경덕과의 일화로 미뤄 추정컨대
황진이는 아마 조선 중기, 그 중에서도 15~16세기의 사람으로 추정됩니다.

무려 100년이나 지나서 기록이 시작된 거죠 ㅋㅋ
아마 그 과정에서 구전되던 이야기들이 적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 출생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시죠
...인데 원래 원문을 다 기재했다가 너무 길어져서 ㅠㅠ
그냥 요약했습니다. 재밌는 것만 딱 실었어요.



Hwang01003598631.jpg
너의 이름, 진현금?
(출처 = http://ateh.egloos.com/m/2627522)



우선 허균의 성소부부고를 보면,
진이를 개성 맹인의 딸이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근데 주목할 만한 건 17세기 기록까지만 해도
<황진이>가 없었다는 것... ㅎㅎㅎ
무슨 뜻인가 궁금하시죠?


다시 말해 진이에게 <황>이라는 성씨가 붙은 건
자그만치 19세기 후반 이후라는 거예요

그 전까지만 해도 황진이는 <진이>라는 기생이라고만 기재되어 있었답니다.
황씨라는 이야기는 후대로 가면서 추가된 거예요!



그런데 20년이 흐르고...
이덕형의 송도기이(1631)에서는 내용이 좀 더 추가됩니다.

"“너도 한 번 마셔 보아라.” 하였는데,
마시고 보니 술이었다. 현금은 놀라고 이상히 여겨 그와 함께 좋아해서 드디어 진이(眞伊)를 낳았다."
- 송도기이



그러니까, 개성에 진현금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18살 때 빨래를 하는데 
멋들어진 청년이 다가오지 뭡니까 어이쿠 월척!

뀨.jpg


 계속 생각이 났는데 저녁때가 돼서 다른 아낙네들이 다 돌아가자
그 사람이 와서 물을 달라 하더니만 다시 건네 받은 물을 마시니까
그게 술로 변해있었더라는 얘기 ㅡㅡ;

그리고 기분이 짜릿해! 새로워! 늘 멋져!...라고 해서
사랑을 해서 진이를 낳았다는 얘깁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뭔가 설화틱한 느낌이 팍 나지 않나요? ㅎㅎ

----

후대로 갈수록 내용은 점점 더 불어납니다


1824년의 중경지에서는 아예 선녀가 아닐까 라고 합니다 - -;;
게다가 여기서부터 황씨라는 성이 추가가 됩니다.

"죽창야사에서는 '진의 어미 진현금이 병부교 아래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한 소년이 희롱하고 갔다.

(중략)

그 뒤 과연 임신을 해서 진이를 낳았다.
낳을 적에 이상한 향기가 집을 가득차 3일 동안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곧 선녀이니 어찌 황씨 성이 있겠는가?"


희롱을 대체 어떻게 하면 애가 생겨..?


---

1896년, 김택영은 송도인물지를 지으면서 앞의 내용을 죄다 섞어버립니다(....)
게다가 황씨 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해가 잘 안 됐는지, 아님 어디서 들었는지 몰라도
황씨성에 대한 일화를 또 추가해버립니다.

전문을 싣자면,

황진은 중종 때 사람으로 황진사의 서녀이다. 
그의 어머니 진현금(陳玄琴)이 병부다리 아래에서 물을 먹다가 감응하여 황진을 잉태했다. 
황진을 낳자 방안에 기이한 향기가 3일 동안 풍겼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성소부부고, 송도기이, 중경지의 내용 + @의 내용으로 구성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ㅋㅋㅋ


---

출생에 대한 결론을 맺자면 황진이는 출생에 대한 기록마저도 모두
진짜인지 확인이 불가능할 뿐더러 후대에 들어서 첨가된 것이 많다는 겁니다.

실제로 황씨라는 성도 19세기 후반... 그러니까 황진이가 활동하고 한 300년이 더 지나서 기록된 것을 확인할 수 있죠.
다시 말해 황진이란 존재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설화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그녀의 죽음이나 서경덕, 벽계수의 일화에서도 확인 할 수 있는...데요....



....너무 졸려서 일단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ㅜㅜ


중간일화는 나중에 소개하고
죽음까지 쓰려 했는데 안되겠어요 ㅜㅜ
--

오류가 있다면 필히 말씀해주세요

--
졸려서 다시 읽지 않고 그대로 썼습니다 ㅜㅜ
오타나 비문이 있어도 이해 부탁드려요


--
나중에 시간나면 다음편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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