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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슬로건 하나, 열 정책 안 부럽다 카더라...ㅋㅋㅋㅋㅋ
게시물ID : sisa_2150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펌생펌사
추천 : 5/3
조회수 : 434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2/07/18 23:09:26

 

[표지이야기]잘 만든 슬로건 하나, 열 정책 안 부럽다

2012 07/24주간경향 985호

 

최근 직장인들의 식사자리나 술자리에서 대선후보들의 슬로건이 화제다. 특히 민주통합당 손학규 상임고문이 내세운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이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다. 술자리에서는 “과연 우리 현실에 저녁이 있는 삶은 가능할까”라는 주제로 즉석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에 대해서도 삼삼오오 모였을 때마다 한마디씩 한다. 과연 박 전 위원장이 대통령이 되면 나의 꿈을 이뤄줄까.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손학규 고문, 김두관 전 경남지사 등 유력 대선주자들이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 올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다. 이에 따라 후보들 간에 단시간에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가장 빠른 시간에 국민들 뇌리 속에 후보의 이름 석자를 각인시키는 것이 대선가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7월 10일 영등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가진 대통령후보 출마선언식에서 손을 들어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대선후보의 1단계 홍보전략은 슬로건이다. 슬로건이란 해당 후보의 삶, 가치, 정책 등을 한마디로 응축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슬로건이란 단 한 줄의 ‘카피(copy)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슬로건은 여러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정치홍보 전문가들에 따르면 슬로건을 만들기에 앞서 후보들은 공략 대상으로 삼을 주타깃(목표)을 설정한다. 주타깃은 국민 전체일 수도 있고, 2030(20·30대)세대일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중산층일 수도 있다. 주타깃이 설정되면 여론조사 또는 FGI(표적 집단면접법)를 통해 주타깃의 특성을 분석한다. 조사를 통해 주타깃의 주요 특성을 10여개 정도 찾아낸다. 이것을 갖고 전문 카피라이터가 몇 개의 슬로건을 만든다. 슬로건을 만들 때 카피라이터는 캠프의 전략기획팀, 메시지팀, 홍보팀 등과도 소통한다. 후보는 이렇게 만들어진 슬로건들 중 한 개를 최종 선택한다.

 


감성에 호소하는 고도의 정치 산물

 


슬로건을 대선시장에 내놓으면 국민들의 평가는 순식간에 이뤄진다. 슬로건이 이성보다는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슬로건은 고도의 감성정치의 산물이다. 단 한 줄의 슬로건 때문에 캠프의 홍보 담당자들에게 찬사가 쏟아질 수도,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다. 한 캠프의 홍보 전문가는 “내가 만든 슬로건이 떠야 한다고 생각하니 슬로건을 만들 때 무척 부담스러웠다”며 “대선과정에서 슬로건은 한 부분에 불과한데 각 후보들이 슬로건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위원장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슬로건을 야심차게 내놓았다. 이와 함께 ‘박근혜 캠프’는 PI(대통령 이미지)도 선보였다. PI는 박 전 위원장의 이름 초성인 ‘ㅂㄱㅎ’과 스마일 이모티콘, 말풍선이 결합돼 있다. 박 전 위원장은 7월 10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가진 대선출정식에서도 ‘국민’, ‘행복’, ‘꿈’을 수십 차례 언급하며 “국민 모두가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가 대통령이 되면 국민 개개인의 꿈을 어떻게 이뤄줄지에 대한 ‘어떻게(How)’가 빠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책 전문가는 “박근혜 전 위원장은 출정식 날부터 ‘경제민주화’를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며 “하지만 경제민주화와 내 꿈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의 슬로건과 PI는 표절 논쟁에도 휘말렸다. 시민단체인 ‘내가 꿈꾸는 나라’는 슬로건 표절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으며, 새누리당 임태희 후보 측은 이모티콘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캠프 측은 개의치 않겠다는 입장이다. 슬로건과 PI 제작에 주도적 역할을 한 변추석 미디어홍보본부장은 “‘꿈’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슬로건은 우리나라에 500개가 넘고, 사람이름 초성을 사용하는 것은 최근의 트렌드”라며 “민주통합당과 임태희 후보 측이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노이즈마케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의 PI는 자신의 최대 약점인 수도권 2030을 잡기 위한 전략에서 만들어졌다.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7월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저서 ‘저녁이 있는 삶’ 출판기념회에서 연설을 마친 뒤 손을 흔들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저녁이 있는 삶’ 보좌진의 작품

 


손학규 고문은 슬로건의 최대 수혜자다. 그의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은 많은 유권자들 속에서 입소문이 퍼질 정도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저녁이 있는 삶’은 손 고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손학규 캠프’는 ‘저녁이 있는 삶’을 중심에 놓고 정치 마케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저녁이 있는 삶’은 우여곡절 끝에 빛을 보게 됐다. 손 고문은 지난해 9월 민주당 대표 당시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노동정책 등 각 분야에서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했다. 노동정책 부문에 노동자의 정시 퇴근, 휴가 의무사용 등의 내용이 있었다. 그 후 손 고문은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이 부분을 얘기하며,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방송용 메시지를 가미시켰다. 당시 방송용 멘트가 ‘저녁이 있는 삶, 주말이 있는 삶, 휴가가 있는 삶’이었다.
 
‘저녁이 있는 삶’은 전문 카피라이터가 아닌 보좌진(김계환 비서관)의 작품이었다. 사실 손 고문은 6월 14일 대선 출마 선언 때도 메인 슬로건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사용하지 않았다. 메인 슬로건은 ‘정의로운 민생정부, 함께 잘사는 나라’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호응이 없자 출마선언문 각론에 있던 ‘저녁이 있는 삶’을 끄집어냈다. 손 고문은 자신의 저서 제목도 <저녁이 있는 삶>으로 부랴부랴 고쳐 출판했다. 원래는 <손학규의 민생경제론>이었으나 <저녁이 있는 삶-손학규의 민생경제론>으로 바꿨다.

하지만 ‘저녁이 있는 삶’이 경제적으로 특정 계층(중산층)의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비정규직 직장인 이영철씨(가명)는 “‘저녁이 있는 삶’은 모든 사람들의 로망이지만 화이트칼라 이상 중산층이 아니고는 향후 5년 동안 실현되기 힘들 것”이라며 “손학규 고문이 수도권 중산층의 지지를 노리고 이런 슬로건을 내놓은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이 6월 18일 대선 출마 선언 후 첫 일정으로 서울 구로구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일일체험을 하고 있다. | 문재인 고문측 제공


문재인 상임고문의 경우 슬로건이 뜨지 않아 곤욕을 치렀다. 문재인 고문은 “소수특권층의 나라가 아니라 보통사람들이 주인인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출마 선언을 했다. 하지만 그의 슬로건인 ‘우리나라 대통령’은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메시지가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따라 ‘문재인 캠프’에서는 “아직 메인 슬로건이 나오지 않았다”며 급히 불을 껐다. 캠프에서는 전문 카피라이터 정철씨가 슬로건을 다시 만들었다.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의원과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정만호 메시지 팀장도 슬로건 작성에 가세했다. 문재인 고문의 경우 특전사 군복을 입고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야구 유니폼과 유도복을 입고 직접 시범을 보인 것에 대해서도 ‘이미지 정치’에 치중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평등한 국가, 내가 힘이 되는 나라’를 슬로건으로 내놨다. 하지만 슬로건이 뜨지 않아 캠프 관계자들을 애타게 하고 있다.

각 후보들이 국민의 감성을 자극하는 메시지 정치에 올인하는 것은 여야가 비슷한 어젠다를 내놓는 상황에서 정책의 차별화를 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경제민주화 실현, 영유아 완전 무상보육 등을 공언하고 있다.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최근에 여야가 내놓은 어젠다를 보면 차별성을 찾기가 어렵다”며 “각 당은 정치철학과 가치가 투여돼 있는 일관성 있는 정책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각 캠프에서는 슬로건을 홍보하기 위해서 슬로건에 맞는 정책을 급히 만드는 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슬로건용 정책’인 것이다. 원래는 슬로건과 정책공약을 함께 발표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슬로건을 먼저 내놓고 슬로건에 맞춰 구체적인 정책을 만드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통합당 대선주자인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7월 11일 서울 신길동 한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이에 따라 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도한 감성정치가 정책선거를 실종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만약 올 대선이 정책선거가 아닌 이미지 선거와 상대방의 흠집내기식 네거티브 선거로 치닫는다면 정책검증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정책검증이 뒷받침되지 않고 슬로건만으로 정권을 잡는다면 향후 새 정부가 출범해서도 국정과제를 제대로 수립할 수 없는 등 혼란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후보 당시 정책보다는 감성에 호소해 대통령이 된 대표적인 사례”라며 “노무현 정부 초기 특정 정책을 놓고, 좌클릭·우클릭 논쟁을 벌인 것은 후보 때 제대로 만든 정책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후보들이 ‘민생탐방’이라는 이름으로 특정지역을 방문해 체험활동을 하고, 정책을 하나하나씩 내놓는 것도 ‘보여주기식 정치’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즉 이 같은 행보는 쇼비즈니스의 일종으로 국민보다는 정치인 중심의 사고라는 비판이다. 한 선거캠프 관계자는 “예를 들어 후보가 자원봉사단체를 방문해서 노숙자들을 위해 밥을 퍼주는 행위를 하는 것은 사전에 치밀하게 짜여진 연출”이라며 “담당 기자들도 후보 위주의 보도를 하다보니 이런 행위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도한 감성정치, 정책선거 실종 우려

 


우리나라의 경우 후보들이 정책공약집을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늦게 발표하는 것도 문제다. 후보들이 공약집을 늦게 내놓으면 내놓을수록 검증의 시간은 줄어든다. 우리나라의 경우 각 당의 경선과정에서는 후보들이 아예 공약집을 내놓지 않고, 대선 본선에 들어가서야 공약집을 내놓는다. 심지어는 선거일이 임박해 정책공약을 내놓은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02년 노무현 후보의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과 2007년 이명박 후보의 신공항 건설 공약이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이명박 후보 측이 선거 와중에 동남권신공항이 충분한 경제성이 있다며 공약집에 포함시켰지만 2년 후에 이명박 정부의 조사 결과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선진국에서 공약을 만들고 검증하는 데 몇 년이 걸리는 것은 대선에서 완벽한 공약을 내놓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슬로건 등을 통해 국민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현재의 정치 트렌드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근에 세계 어느 나라 선거에서나 메시지 정치가 중요한 선거방법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슬로건을 통해 후보 이미지를 좋게 할 수도, 나쁘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슬로건은 한 정치인의 이미지이자 리더십”이라며 “국민들이 슬로건을 보고 지도자에 대한 호불호를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고 밝혔다.

<권순철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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