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십일월 초순쯤 이었다. 학교는 지금 난리가 났다. 빼배로데이라는 국가적(?) 대행사일에 맞추어 아이들은 빼배로데이의 기대감에 들떠 수업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떠들썩하니?" "곧 뺴배로데이니까요!" "그래...그렇구나.. 빼배로데이는 뭐하는 날이지?" "빼배로를 사서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나눠줘요!" "누가 그러라고 시키던?" "?? 그냥 빼배로데이니까요!" "왜 빼배로를 사서 먹는거니?" "11월 11일이 빼배로데이예요 선생님 그거 아시면서 일부러 물어보는거죠?" "누가 그런 날을 만들었니?" "몰라요" "너희들이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조금은 이해해 주길 바란다." 나는 뒤돌아서 칠판에 크게 8자를 두 개 그렸다. "선생님이 생각하기엔 8월 8일이 꽈배기 과자처럼 생겨서 꽈배기의 날로 정하고 싶구나. 우리 반은 모두 8월 8일에 친구들에게 꽈배기를 사서 나눠주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왜 저희가 그래야 하죠?" "왜긴, 선생님은 8과 꽈배기의 모양이 닮았다고 생각하니까." "선생님, 그건 억지예요. 8과 꽈배기는 닮은 점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8월8일을 그렇게 마음대로 정하는건 말이 안돼요" 나는 겨우 웃음을 참고 그 친구에게 되물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11월11일이 말이 되는지 자세하게 설명해 줄래?" "....???" 두꺼운 검은 안경테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제가 말하겠습니다. 빼배로를 만든 '꼼데' 라는 회사는 크고 영향력있는 주식회사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들의 말에 수긍할 수 있겟지만, 선생님께서는 그냥 한명의 개인 의견을 말한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들은 그 회사와 친하니?" "친하다니요??" "서로 알고 , 선물도 주고받고, 뭐 이야기도 하는 그런 관계 말이야" "..그런 건 아니예요." "그런데 너희들은 너희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런 회사를 위하여 너희들의 소중한 용돈을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니?" "빼배로가 맛있으니까요!" "제 취향이니까요. 제 용돈 쓰는 데 선생님이 간섭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래 , 그렇지. 그런데 너희들은 어떤 과자를 좋아하니? 나는 과자 중에서 빼배로가 가장 좋다, 가장 맛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한번 들어볼래?" 놀랍게도 한 명도 손을들지 않았다. "이건 조금 놀랍구나. 단 한 명도... 근데 왜 굳이 빼배로를 사는 걸까?" "빼배로 데이라는 말이 있어서 그런거 같아요." "그러게...근데 마음을 표현하는데 꼭 빼배로가 필요한건 아닌것 같아." "차라리 다른 과자를 사주는 게 좋지 않을까?"사실 빼배로는 금방 질린다고 생각해." "그래요, 선생님이 말하고 싶은 것은, 빼배로데이에만 마음을 정하라는법도 없고, 이날빼배로만 선물해야한다는 법도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선물과 함께 전달하고 싶다면, 그 친구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부터 알아야 되지 않겠어요? 내 마음은 다른 친구들과 다른데 그 마음을 전할 때 남들처럼 똑같은 과자만 내준다고 하면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일일까요...?" "그렇네요....!" "거기다가 여러분이 알고 있는 빼배로데이는 하이트데이, 빌린타이데이와 같이 일본의 회사에서 먼저 기획하고 일본시장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친후, 여러분에게까지 퍼진 것이죠.." 말을 이으려는 순간, 일제강점기의 단편마저 뇌리에 존재하지 않을, 21세기에 태어난 어린 학생들이 일본이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분개하기 시작했다. 왜 이 아이들이 일본을 싫어하는지 이성적으로는 판단할 수가 없었지만, 가슴 속으로는 아주 조금 나의 피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을 이용하여 나는 조금 더 깊게 파고들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은 일본을 따라하고 있는 겁니다." "헐~!" 정확하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선생님은 여러분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 굳이 그 회사의 제품이 필요한지 여러분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빼배로데이라곤 하지만 굳이 빼배로를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내가 만들어서 주거나, 친구가 좋아하는 과자를 골라서 주는게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좋습니다. 선생님의 의견을 경청해줘서 고마워요. 이야기는 여기가지 하고, 수업합시다." "선생님!!!!" 가장 똘망한 눈을 가진 남자아이 한명이 손을 곧게 들었다. "저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이미 사 놓은 빼배로가 있는데 이건 제게 필요없을 것 같아요.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건.... 알아서 친구끼리 나눠 먹으렴. 하지만 다음 11월 11일이 되면, 여러분은 오늘이 "빼배로데이"일 뿐만 아니라, 끔찍한 비극이었던 제 1차 세계대전의 종전일이었다는 사실도, 농업인의 날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줬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항상 유행이라고 해서, 주류라고 해서 따라다닐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내가 단풍잎처럼 물살을 따라야 할것인지, 연어처럼 거슬러 뛰어올라가야 할 것인지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수업은 재개되었다. 그 일이 있은지 십수 일 후, 나는 작은 읍의 학생들에게 꼼데라는 회사를 비방하고 불매운동을 하였다는 이유로 영업방해의 죄를 지고 재판장 앞에 서게 되었다. 법원의 위용은 실로 대단하고 암담했다. 법 없이 살아왔던, 아이들밖에 몰랐던 힘없는 개인 앞에서 거대 회사와 검찰의 권력은 압도적이었으며, 나는 그저 좀도둑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옷을 깨끗하게 다려입었지만 옷깃이 조금 누르스름했던, 얇은 눈썹에 기름기 있는, 두턱진 얼굴의 검사는 나를 보더니 먹이를 발견한 맹금처럼, 찢어진 눈으로 나를 좌우로 요리조리 훑어보더니 8절지만한 종이쪼가리를 들고 작은 글씨를 보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학생들에게 이런저러한 이유로 빼배로데이라는 회사의 마케팅을 기만하고 빼배로를 사지 말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사실입니까? "저는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증인이 있고 녹취된 자료들이 있습니다. 피고는 꼼데제과에 대하여 앙심을 품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꼼데라는 회사와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까? " 그저 그 회사의 껌이나 가끔 사먹었을 뿐, 특별하게 회사와 직접적으로 좋은 기억이라던가 나쁜 기억을 가질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별 일도 없었는데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회사를 비방하고 아이들에게 좋은 칼로리 공급원이 되는 빼배로를 먹지 말라고 하셨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먹지 말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대해 악감정 또한 없습니다." "그렇다면 직접 애기를 해보시지요. 왜 이런 일을 하였습니까? 당신에겐 어떠한 이익도 없는 일을 왜 굳이 하셨습니까?" "저는..." 나는 가슴이 타는 것 같은 갑갑증을 느끼며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겨우 말을 이었다. "저는 한번도 빼배로데이에 빼배로를 받아본적이 없었습니다. 발렌타인데이에도 물론이고요. 그래서 빼배로가 싫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학생들마저 그날에는 끼리끼리 짝을 이루어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검사도 울고 재판장도 울고 나도 울고 오유인도 울었다. <모든 내용은 허구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