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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안 족보로 생각해 보는 우리 나라 역사..
게시물ID : history_214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진지중독자
추천 : 0/5
조회수 : 1101회
댓글수 : 42개
등록시간 : 2015/06/19 05: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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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안 족보에 의하면
저희 집안은 적제 축융의 후손이라 되어 있습니다.

적제 축융이 이 갈천을 대신해 환국(桓國)의 제(帝)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가 서기 947년에서 5188년 전이니 대략 기원 전 4200전 쯤 됩니다.
족보에 의하면, 이때에 이미 음악이 있었고, 문자가 존재했다고 합니다. 

새의 소리를 듣고 음악을 만들었고, 까마귀의 발자국을 보고 현문(玄文)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현문(玄文)은 통일 신라 시대에 까지 존재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희 집안의 족보가 이 현문(玄文)으로 편찬되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런 내용으로 미뤄 추측을 해 볼 때, 한국 고대사의 연도는 더욱 고대로 올라가야 하고
중국의 동북 공정이 어떻게 되든
우리나라와 중국의 민족적 연관성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지네요.

그리고 족보에는 익숙한 국가명도 언급이 되는데, 
바로 동숙신과 서숙신입니다. 바로 "쥬신"이죠, 숙신, 쥬신, 조선, 구려, 한이 모두 연관이 있는 단어라는 사실은 아시겠죠?

대조영에서도 자주 나오지만, 고구려의 왕을 중국에서는 조선의 왕이라는 칭호로도 자주 부릅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대조영이 매우 고증이 잘된 드라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즉 환국, 숙신, 쥬신등의 국가 또한 완전 허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저러한 사정을 따져보았을 때, 동 아시아에 국가의 형태가 들어선 것은 이미 기원전 5000년 전정도라고 보아도
크게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때의 국가 형태는 신석기 문화를 기반한 한 부족 국가라고 보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모계 중신의 중국과 구별이 되지 않는 문화권으로 섞여서 살고 있다가 청동기 시대에 와서 서로의 힘이 갈리기 시작하면서, 
중국과 고조선이 갈리시 시작하지 않았는가 하는 추측을 해보게 되네요.. 

적제 축융으로부토 나온 성시는, 강, 희, 소, 기 씨등입니다.
그러니 이 성씨를 갖고 계신 분들의 족보에도 동일한 이야기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아.. 마무리가 안되네요.. ^^;;

네.. 그냥 그렇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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