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남편과 결혼한 지 8년차, 일본생활 13년차 여자사람입니다.
한국에서는 오늘이 수능일이었고,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이고, 일본에서는 근로감사의 날입니다.
결혼 후, 매년 크리스마스는 스페셜 디너를 준비했는데, 추수감사절은 따로 챙기지 않았습니다. 귀찮으니까요.
하지만, 내년 출산을 계기로 서로의 명절을 좀 더 챙기는 가풍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올해부터 추수감사절도 스페셜 디너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 달의 스페셜이 모두 오늘을 위한 것인가...
그리하여 정해진 올해의 스페셜 디너는 위와 같습니다.
메뉴 내용에 비해 뭔가 허전해 보이는 상차림.
집에서 스테이크를 구워본 건 처음인데, 괜찮게 나와서 다행이었습니다.
큰 덩어리가 등심(서로인), 작은 덩어리는 안심(텐더로인)입니다.
오른쪽 소스는 들깨수제비... 가 아니라 버번으로 향을 낸 스테이크 소스입니다
소스에 들어간 새송이버섯을 얹어 먹으면 맛있음.
바질페스토를 얹어먹어도 맛있음.
수제 크랜베리소스 얹어 먹어도 맛있음.
빵은, 콘브레드입니다.
옥수수가루가 미국이랑 달라서 그런지, 여러번 시도해도 납득할만한 맛이 안났는데,
오늘 드디어 평생 가져갈 콘브레드 레시피가 완성되었습니다.
촉촉하면서도 고소한 딱 원했던 콘브레드!!
샐러드, 만들긴 했는데 손도 안댔습니다.
괜찮아요. 색깔이 이쁘니까. 말하자면 테이블 장식용 꽃같은 역할이죠.
오븐에 구운 채소구이. 전 토마토 오븐에 구운 거 넘 좋아요. 달달하고 향긋함.
매쉬포테이토와 치킨그레이비.
추수감사절 하면 칠면조이지만, 올해는 칠면조를 굽지 않았기 때문에 닭고기로 그레이비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매쉬포테이토 위에 그레이비를 얹어서 먹습니다.
그레이비 저게... 하아... 보기엔 허여멀건 것이 밀가루 좀 풀어 만든 것 같지만 엄청난 시간이 들어갑니다.
닭고기와 채소들을 오븐에 구운 후, 큰 냄비에 물과 함께 넣어서 두세시간 푹 고아서 육수를 내거든요.
육수 내면서 나온 기름과 버터에 밀가루를 볶아서 루를 만든 후, 육수를 섞어서 만드는 소스입니다.
엄청난 감칠맛과 구수함이 농축된 소스입니다.
이번 스페셜 디너의 하이라이트 펌킨파이입니다.
이것도 여러번 시도해도 항상 뭔가 아쉬웠는데, 평생 갖고갈 레시피가 오늘 완성된 느낌입니다. 진짜 대박...
수제 파이 크러스트를 미리 한 번 굽고, 수제 호박퓨레로 만든 파이필링을 넣어 두번 구운 펌킨파이.
호박필링의 농도, 파이크러스트의 구워진 정도, 고소함과 달콤함의 밸런스가 제 베이킹 역사상 역대급입니다.
수제 휘핑크림에 시나몬 가루를 살짝 뿌려서 먹습니다. 배가 터질 때까지...
여기서 한 입만 더 먹으면 배가 찢어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남편이 저보고 크리스마스 디너 요청 메뉴 말해도 되냐고 하네요.
검보(GUMBO)라는 미국 남부쪽 음식이라는데, 자기도 한 번도 못먹어봤지만 언젠가 꼭 한 번 먹고싶었다고...
그러면서 유튜브에서 검보 만드는 법 영상을 찾아서 보여줍니다.
제가 음식 잘하는 외국인에게 "내가 예전부터 메밀전병이란 걸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니가 요리를 잘 하니, 유튜브 같은 것 좀 보고 만들어주련?"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인거죠....
한 달 정도 시간이 있으니 크리스마스 때까지 좀 알아봐야겠습니다. 지금은 일단 소화좀 시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