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 쉬게 해준다고 남편이 이제 곧 네살되는 딸내미 데리고 둘이서만 자동차로 한시간쯤 가면 있는 친구집에 놀러갔다 왔어요.
정말 고마운 일이지요.
그런데 오전 열한시쯤 나가서 여섯시쯤 되어 들어온 딸이 울면서 들어오는 거예요.
뭔가 했더니 아빠가 지 간식을 다 먹었다는 거에요.
이 간식으로 말씀드릴것 같으면,
5대 영양소를 모두 갖춘 초호화 버라이어티 유기농 간식으로 이것 저것 조금씩해서 총12가지가 들어가고,
만드는데만 20분이 걸리는 도시락 스타일 간식이예요. 거기다 우유 한팩 더하면 점심이 좀 부실해도 애가 배 고플 일이 없거든요.
아빠랑 밖에 나가서 먹으면 입짧은 딸내미 점심이 아무래도 부실할 수 밖에 없어요.
아니나 다를까 점심땐 밥만 몇숫갈 먹고 브로콜리 두어개 두부 두어 조각 먹었다네요.
간식을 세시 반쯤 주라고 했는데, 깜박 잊고 다섯시에 준것 까진 그럴 수 있다치고...
그런데 애가 먹는 간식을 본인이 다 먹어버리다니요!!!
애도 아니고 배고프면 잠깐 내려 뭘 사다 먹어도 되고, 곧 저녁시간인데 참을수도 있잖아요!!! 어른이잖아!!! 아빠잖아!!!!!!!!!!
남편왈, 애가 돌아오는 길에 과일 두어개 집어 먹다 잠들었길래 자기가 나머지를 다 먹었다는 거에요.
애는 자다 깨서 간식 찾고, 그 때부터 배고프다고 서럽게 울면서 온거예요.
남편은 저한테 전화해서 본인이 애 간식 다 먹었단 얘긴 쏙 빼고 애가 배가 많이 고프니까 빨리 밥 준비하라고.
오늘 넘 고마워서 남편 저녁으로 버터 마늘 통닭 오븐에서 두시간 구워서 준비했는데 갑자기 열이 뽝!!!
아무리 배고파도 그렇지, 네살짜리 딸내미 간식을 다 먹어버리는게 어딨어 ㅠㅠ
나이 서른 아홉에 회사에서 일할때는 카리스마 넘치는 분이, 집에선 네살짜리 딸내미랑 간식 배틀 뜨는 나이 많은 아들이 되어버리는 이 괴리감...
배고프다는 딸내미부터 부리나케 밥을 차려주고
이글이글 불타는 화를 꾹꾹 누르며 나는 부처님 가운데토막이다 되뇌며 통닭을 꺼내서 살을 바르고 있는데,
앞으론 이런 일 없게 놀러갈때 자기도 간식 챙겨달라기에,
그런건 니네 엄마한테 가서 달라고해!
라고 빽 소리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오늘 총 일곱시간 오롯이 혼자 보낼 수 있게 해준것 땜에 참았어요.
아 진짜! 나는 우리 딸 좋아하는 음식은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거라도 손 못대겠던데,
애기 잘 크라고 주는 간식을 뺏어먹는 정신머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이거 우리 남편만 이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