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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지만, 정신병에 걸렸다.
게시물ID : gomin_2133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루루링
추천 : 7
조회수 : 871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1/09/30 01:00:28
장문의 글입니다.




28살.

키 178cm, 몸무게 72kg

10대 대기업 기획실 재직 중

연봉 3,700만원 + a


내가 나 자신을 보기에도 너무나도 멀쩡한 한 남자로 보인다.
가끔씩 꾸지람을 듣기는 하지만... 회사에서도 나름대로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얼굴은 언제나 웃는 얼굴...
쾌활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누구와 서슴없이 친해진다고 
나 자신을 평가한다.

하지만 내 속은 이미 썩어 문드러졌으며...
그걸 반짝반짝한 포장지로 꽁꽁 묶어 놓았을 뿐...

-----------------------


난 태어날 때부터 불행 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집은 아버지는 전라남도... 어머니는 경상남도 출신이며,
게다가 어머니가 2살정도 연상이셨고, 결혼도 30살 넘어서 한 것으로 알 고 있다.

덕분에 집안의 반대는 당연했으며, 할머니께서는 ‘집안 말아 먹을X'이라는 소리까지 서슴치 않았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덕분에 이미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 상태였기에, 
집안의 축하 속에 결혼한 다는 것은 그 두분에게는 꿈에 불과했었다.

아버지는 의절에 거의 비슷한 행동을 하며 신혼 살림을 시작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튼 그 가운데에 난 태어났다.
산꼭대기... 찾아가기도 힘든 빈민촌 단칸방에서...


난 어릴 때 병을 달고 살았기에, 아버지께서는 내 병원비와 약 값을 대기 위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트럭을 운전했고, 내가 철이 들 때까지 3일에 한번... 그것도 저녁 한 때만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보게 된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상습적인 폭력...
어머니의 울부짖음.

둘이 있을 때면 어머니는 언제나 어린 내손을 잡고... 펑펑 우셨고... ‘너는 잘돼야 한다. 너 하나밖에 없다.’ 라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아주 가끔씩은 나에게도 조금의 스트레스를 푸시는 것도...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이다.


난 몸이 너무나도 약해서, 밖에 나가서 노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단칸 방 구석에 앉아서 이웃집 누나가 준 인형 놀이나...
어머니가 얻어 온 책을 읽는 것 외에는 하지 않았다.

내 인생 중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어릴 적 읽었던 책들이 내 인생을 살아가게 해 주는 큰 버팀목이 되 주었다는 것이다.


뭐... 이것도 단칸방이 화재에 휩싸였을 때 다 날아가 버렸지만...


초등학생이 되었다.
몸 약한 것은 달라 진 것도 없었지만, 어머니께서는 조금이라도 나를 일찍 공부시키기 위해서, 12월생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1년 더 빨리 다니게 하셨다. 지금이야 불가능하지만, 당시에는 어찌어찌 가능했었나 보다.

또래 아이들보다 1년 정도 그것도 1~2월 생이 아닌 12월 생.
성장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내 유년기때 형성되는 마인드를 처참하게 뭉게 버리며... 지금까지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단 한 번의 선택이 되었다.


성선설... 성악설...
난 인간의 본성은 성악설이라고 본다.
수 많은 학급 아이들 중에서... 내가 구석에서 쳐 맞고 있어도, 손 하나 내밀어 주는 애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마 그 네들에게는 손쉽고 반응 하는 장난감 이였을 것이다.

TV에서 본 것을 실험 해 본다고 수업이 모두 끝난 후 같은 반 모든 학생들을 이끌고 가 내가 쳐 맞는 모습을 보여 줬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우리집이 너무나도 거지라서 돈 달라는 애들은 없었다는 점이다.
그냥 기분 나쁘면, 쳐다보면 한 대씩 패고 가는 그런 아이.

그냥 아침에 눈 뜨면 무서웠다.
내일은 그 녀석들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도 초등학교 6년을 어떻게 살아 왔는지... 아찔하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 챙기려고, 없는 살림에 그 선생에게 촌지를 꽂아 줬었지...


트라우마 1
내가 만약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게 되면...
혹여나 나 같은 어린 시절을 겪게 되면 어떻게 하지?


중학교 때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 딱 하나 달라 진거...
내 얼굴에는 잔인할 만큼 심한 여드름이 생기기 시작한 것.

얼굴에 있는 여드름이 다 터질 정도로 얻어 맞았고... 빵과 음료수를 퍼 날랐다.

집안 환경은 더 심해져서... (마침 IMF가 터졌었다.)
어느 날 잠을 자다가 눈을 뜨니, TV의 찌찌찍 되는 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으며...
집에는 나와 어린 동생 밖에는 없을 때... 그런 적막함.

오늘 준비물 사게 천원만 주세요.
어머니는 무심하게 내 말을 못 듣고 계속 전화만 하고 계셨다.

나중에 말씀해 주시더라. 그 때 천원이 없어서 일부러 전화 받는 척 하고 계셨다고...


그리고 어느 날 어머니께서 서류 한 장을 나에게 주었다.
급식비 지원 요청서류.
간신히 초등학교를 졸업하신 어머니의 삐뚤삐뚤한 글씨가 깨알 같이 써져 있는 그 종이.
난 그 종이를 가지고 동사무소로 갔다.

그 종이를 창구에 앉아 있는 9급 여자 공무원 나부랭이에게 주자... 
그 공무원‘님’께서는 
‘아 진짜!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애들이 많이 와!’ 라고 날카롭게 소리 지르며 그 서류를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 자리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닌...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태에서 당하니... 
난 너무나 창피해서...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 바닥에 웅크려 있었다.

‘허허허... 오늘 일이 많나보네. 그렇다고 애들 앞에서...’라고 뒤에서 (아마 그 공무원의 상사이지 않았을까?‘) 라는 소리가 들리며, 그 공무원’님‘을 대신 내일을 처리 해 주던 뚱뚱한 아저씨...

나중에 그 여자 공무원‘님’께서는 여전히 ㅆㄱㅈ 없게 확인 서류를 휙 던져 주셨다.
또 울컥하는 것을 참고, 고개를 돌렸을 때...

“어디 아프니?”라고 묻던 그 공무원‘님’...

정말 지금 뭐하는 지 보고 싶다.


트라우마 2

가난...


중학교 마칠 때 쯤에...

내 성적은 바닥중에 바닥을 기고 있었고, 개 ㅈㅗㅈ 밥에...
얼굴은 여드름투성이.
돈도 없고... 선생들도 포기한 나.
오로지 내 재미는 아버지께서 가져온 구형 컴퓨터로 방구석에서 게임을 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집에서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포기했다.
단칸방, 24시간 걸려오는 빚 독촉 전화.
(아직도 전화 벨소리에 컴플렉스가 있어... 핸드폰 벨소리는 전혀 없고, 회사에서 들려오는 전화는 누구보다도 빨리 받는다. 받을 수밖에 없다.)
중 3. 마지막 시험은 내 뒤에 2~3명 밖에 없었다.

공고를 가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대체 인문계, 즉 인문계 갈 실력은 안 되지만... 인문계 가고 싶은 애들이 가는 특수 인문계(맞나? 정확한 명칭이 기억이...)를 가게 되었다.

중학교 때의 마지막 조롱.

‘큭... 역시...’
‘저러니깐 그런 학교 가지...’

어릴 적이 같이 놀던 초등학교 친구(남자든 여자든 간에...)들은 날 피해 다니기 바빴다. 아니지... 무시하길 바빴다고 해야 하나?




고등학교 올라가서 하나 다행인 점은...

다른 친구들 보다 거의 2년 가까이 학교를 빨리간 덕분에 느렸던 내 성장속도가
이제 따라잡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옆집 살던 운동 잘하던 친구가 우연히 나에게 권유한 헬스가 그 속도를 더 빠르게 했다는 것 덕분에 힘으로는 밀리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어릴 적에 생각 강박관념으로 인하여 누군가가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해도 바로 싸움으로 진행되 버리는 그런 것이 반복되었으며...

새롭게 생긴 별명.
배틀맨.
하루에 한 명씩 누군가와 시비가 붙었고, 나중에는 학교에서 일진이라고 깝치는 애들 수십명에게 두들겨 맞어 며칠 간 들어 누운 적도 있었다.

오로지 깡만 남아 버린 그 때... 그리고 반에서 왕따이던 그 때...


내 인생을 바꾸게 해 준 하나의 사건
아주 단순한... 고2때 처음 본 전국 모의고사.
이제까지 살면서 공부는 어릴 적에 어머니가 해 주신 공부와 방구석에서 틀어박혀 있던
나에게 빛이 되 준 수 많은 어려운 책들.


그 책들 덕분에 그 때도 반에서 꼴등하던 내가 첫 모의고사 때 언어영역과 사탐 만점.
과탐은 2개 틀린 놀라운 성적. (수리탐구나 영어는 합쳐서 6~70점 정도로 기억난다.)

워낙 학교가 꼴통이라서 나와 전교 2등과의 차이가 100점 넘게 (당시 400점 만점) 되었고...
그 때 부터 내 주위에서 싸움과 시비가 사라졌으며...
공부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 학교 성적도 점점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받는 선생님들의 관심.


그 때 여자를 처음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듯 한 그녀.
소문으로는 어머니 혼자 계시고, 학교에서는 왕따 가까운 생활을 되풀이 하던 그녀.
고백을 했고... 처음에는 친구로 시작하다가 서로 좋아하는 관계






가 되었다고 나 혼자 착각했다.
그녀는 내 주위에서 공부와 친구들을 알아갔고... 난 편안함을 얻었다.

고3... 그녀는 그렇게 오른 성적으로 그 때 처음 생긴 1학기 
수시(가족환경 전형으로)에 합격했다.
그리고 사라졌다.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고, 그녀의 집에 찾아가도... 그 당시에 핸드폰도 없었기에 연락도 되지 않았다.

한 달후... 그녀가 학교에 그녀의 어머니와 같아 나타났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그녀에게 갔을 때는 이미 변해 있었다.

그녀는 그 한 달간 교회 대학생 오빠와 같이 동거 했다는 말을 나에게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처음으로 여자의 뺨을 때렸다.


트라우마4

최악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



여전히 우리집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떻게 수능 한 달 전에도 부모님의 부부싸움은 끊이지 않았고...
집안의 집기란 집기는 남아나지 않았다.

그 때 학교에 나 처럼 특이한 종자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갑자기 성적이 오른)
우리 집 사정을 알았던 그 친구가 나에게 손을 내 밀어 줬다. (이 때가 나에게 내밀어준 처음의 손길이었다.)
자기 용돈 많이 받으니... 고시원 가서 공부하자고...
자기가 돈 다 내주겠다고...

--------------
아직까지도 연락되는 그 친구.
이번 추석 때 그 친구가 생각 나... 20만원 넘는 홍삼을 사 그 친구에게 보내 주었다.

“야... 갑자기 미쳤냐? 뭐 병 걸렸어?” 라고 전화로 말하던 그 친구.

그 때 그 친구가 내 준 몇 천원이 얼마나 고마웠었는지는 모르고 있겠지...

--------------


02년도 수능.

뭐 검색해 보시면 잘 아시겠지만... 최악의 수능 덕분에...
내 주변 사람들은 다 말아 먹은 것 같지만, 나 만 특이하게 점수가 떨어지지 않았다.

참 웃긴 게... 어머니가 그렇게 칭찬하던 그 친구. 엄친아?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 오던 ‘옆에 애는 반에서 몇등 한다더라... 어쩐다더라...’
나 고등학교 올라 갈 때 그렇게 무시하던 어릴 적 친구들... 킥킥킥  웃던 그 친구들.

그 친구들 중에 나보다 수능점수 높게 나온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난 그렇게 대학을 가게 되었다.


대학...
호불호가 너무나도 갈린다.
친구들은 쓰레기 들이 많았고... 선배들은 좋은 분들을 만났으며, 나에게 영향을 준 좋은 후배님들도 있다.

군대 가기 전에는... 사람들 만나기가 싫어 제약이 있던 고등학교와는 틀리기에 대학교는 가끔씩만 나갔다. 친구들도 보기가 싫었다.

그리고...

군대를 갔다 온 후...
난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부가 뭐 필요 있어? 어차피 돈 부터 벌어야지.

난 학교를 그만 둘 생각을 가지고 휴학계를 냈고, 좋은 돈벌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 때 한참 사회가 힘들어서... 신용정보회사에서 사람을 많이 뽑았었다.
채권추심원.

처음에는 신나서 돈 들어오는 재미로 막 했었다.
어차피 어릴 때 들은 게 욕 밖에 없어서... 욕이나 신나게 하고...
스트레스도 풀고...

사람들이 벌벌 기다가... 쫄다가...


친구들에게는 이 때 번 돈을 펑펑 썼었다.
대학교 때 만난 쓰레기 친구들. 파리 종자들.

내 돈 냄새에 몰려오는 똥파리들.


그러다가 집 앞 추심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 때 나를 보았다.

집 안에서 울려 퍼지는 아이의 울음소리.
부모들이 싸우는 소리. 깨지고 부서지고... 아이는 울고...

그 때... 헛 구역질이 넘어 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집안으로 들어가 마당에서 울고 있는 4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정말 신기하더라.
난 아이의 울음을 어떻게 그쳐 야 할까 생각하며 다그치기도 하고 조용히 하라고 달래기도 하였지만... 
‘뚝!’ 이라는 말에
울음을 딱 멈추더라.

그 때... 내가 도대체 뭐하고 있는 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공무원과 내가 다른 게 무엇인가...

그 후로 내 실적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고...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다.

내 주위에 있는 파리들을 묶어 두기 위해서 멍청하게 대출을 받게 되었고...
그 빚이 점점 쌓이고 있을 때 였다.

은행, 2금융권, 대부업체.

아 돈 빌리기 쉽구나~!
어릴 적 내 마음의 트라우마를 덮기 위해서...
좋은 차를 타고... 잘 사는 사람으로 변신을 했었다.

한순간만...

!
여자가 빠질 수 없지.
그 때 한창 때라서 이런 저런 여자분을 있었는데...

너무나도 예뻤다.
게다가 그 쪽에서 먼저 고백했다.

뭐... 이런저런 상처도 많이 받고... (길게는 말하기 싫어진다.)
돈도 많이 쓰고...

결론적으로는 딴 남자에게 가더라.

이정도야 뭐...
!

6개월 쯤 백수로 지내니 이제 방세도 밀리고...
추심을 했던 내가 추심을 당하고 있었다.

글로는 쉽지만... 그 스트레스와... 빚을 못 갚은 다는 생각과...
똥 파리들은 내 돈을 다 빨아 먹었는지 어디론 가 사라진 뒤였다.

힘들다고 나에게 사정한 친구는 내가 빌려 준 500만원을 아직도 갚고 있지 않는다.
최근에 지나가면서 봤는데 여자친구도 있더라..

(곰곰히 생각해 보면 예전에 왕따의 트라우마로 인하여 그렇게 돈으로라도 친구를 묶어 두고 싶었나 보다.)

그 때... 난 집으로 내려갔다.

군대 갔다 온 후... 우리집은 안정이 되어 있었고...
예전 같은 싸움이나 그런 것은 거의 없어져 있었다.

아버지도 괜찮아 지시고... 어머니도 자그마한 가게를 하나 내신 게 어느 정도 괜찮았었다.

난... 처음으로 빌어먹을 아들이 되기로 생각했지만...

아버지... 어머니... 돈 좀 갚아 주세요.
빚이 삼천만원이에요.
이자만 천만원 이에요...

라는 말이 도저히 튀어나오지 않았다.


난... 목을 매달기로 결심하고 산으로 올랐다.

아 정말 쉽더라.
울면서 벨트를 풀고 나무에다가 벨트를 묶고

그 공간에다가 내 목을 넣고... 공간 남지 않게 한번 더 묶고...

그리고 바닥에 있는 돌맹이를 발로 쳤다.



공기가 뇌로 들어가는 게 끊기면...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아마 실제로 목을 매달면 죽을 때 까지 기억나지 않고 죽을 것이다.

난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여기는 어디지?’ 라는 생각...

그리고 아까 상황을 생각해 머리를 들어 나무를 보았다.


나무가지는 부러져 있었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아둥바둥 칠 때 내 몸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 후 난 근처의 빈 흉가에서 하루 밤을 지낸 후...
다시 나무 위로 올랐다...

그렇지만...
다시 목을 매달지는 못했다.

너무나도... 너무나도 죽는게 무서웠다.
어제의 그 고통을 다시 느끼기 싫었다.




죽는 것 보다는 빌어먹을 아들이 되는 게 더 나아 보였다.


어릴 때 잘 못하면 정말 심하게 맞았었다.
부모님에게든... 친구(라고 쓰고 개ㅅ끼 라고 읽는다.)에게든...


그런데 그 때는 때리지 않으시더라.
그냥 말 없이 우시더라.




난 다시 학교에 갔다.
수업을 야간으로 돌리고...

주간에는 8시 부터 5시까지 일을 했었고...
6시 부터 10시까지는 학교 수업을 들었다.

복학 시 내 학년은 3학년이 였으나...
군대 전역 후 맞은 2학년 때는 공부에 흥미가 없어 학고 직전의 성적이였다.

결론적으로는 3년을 더 다녀야 했다.

----------

벌써 12시네... 아직 좀 더 남았는데...

-----------

깨달았다.

모든 사람은 악하다.
나 자신을 포장해라.
약점을 들키지 마라.

그리고 내가 잘 나게 변해라.


트라우마 5

돈에 대한 강박관념


트라우마 6

사람을 믿지 못하며, 앞에 있는 사람이 마음속으로는
내 조롱하며 보고 있다는 그런 느낌.


밤 10시에 끝난 후 새벽 2시까지 공부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8시에 출근했다.

이 때부터 조금씩 운이 풀렸다고 해야하나?

좋은 어른을 만나... 컴퓨터만 조금 깨작이던 나를 채용 해 주었고...
학교도 다니게 배려해 주었다.

월급 120만원.
100만원은 빚과 이자를 내는 데 썼다.

친구? 여자? 
만날 수도 없었다.

그곳에서 회계를 배웠고 경력을 쌓았다. 파워포인트를 배우고, 엑셀을 배웠다.


그리고 도서관으로의 취업. 반 알바였지만...
하루에 1시간 일하고 7시간 노는 땡보직. 시급 7000원.

그곳에서... 다시 내 친구... 책을 만났고...
난 글을 쓰게 되었다.

TV 출연과 수 많은 관심.

네이버 인물등록.

다른 학생들보다 더 많은 나이 + 경험 덕분에 대학교 4학년 (학교 8년째...;; 다닐때)
때 교내, 교외, 전국 규모의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고...
(토론, 논문, 공모전 등등)


대기업으로의 취업
과거 나를 모르던... 새로운 친구들과 후배들은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영리하고... 괜찮고...

이게 글로는 쉽지만...

예전 내 자신이 가끔씩 생각 날 때 마다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욕지거리를 참기위해서
이를 악물고 있다.
지금도...

사람과의 관계를 벌려 놓는다.
내 자신을 남에게 절대 말하지 않는다.

도중에 만나는 여자분들은... 
3개월 이상 가지를 못한다.

나 자신을 버리고 또 떠날까봐 집착의 연속.
두려움의 연속.
그리고 내 마음을 줘 버릴 까봐 너무나도 무뚝뚝한 모습에
하나씩 떠나갔다.


빚을 다 갚고...
내 손으로 학비 내고...
방송 출연, 3대 일간지 인터뷰...

이번에 또 이상한데 취업한 거 아닌가? (어머니는 내가 다단계에 끌려가 그렇게 빚을 졌다고 굳게 믿고 계신다.)라고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오신 어머니를 안심 시킬 수 있는 그런 회사.

또 운 좋게도... 나와 부모님이 앉아 있던 회사로비 커피숍에 아주 우연히 지나가다는 도중에 날 아는 척 해서 부모님을 깜짝 놀라게 해 준 TV에 많이 나온 사장님. 


이렇게 되면 해피엔딩으로 보인다.


하지만...

매일 밤마다 가끔씩 어릴 때의 악몽에 시달리며...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며...

내가 잘됐다고 갑자기 연락오는 친구들을 웃으면서 전화 받아주며, 마음속으로는 욕을 뿜어대고...

소개팅하면서도... ‘얘는 어차피 내 돈 보고 오는 거야.’ 라는 생각이 먼저 나오며...

괜찮은 사람이 있어도 절대 먼저 말하지 못하며...

혼자서 방구석에서 술을 마시며... 헤롱헤롱 있다가...

bar에 가서 돈 쓰면서... 날 사랑해 달라고 진상 피우는 그런 인간...



다음날 아침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해서 지내지만... 언제 욕지거리가 나올지 몰라 조심스러워 하며...

뭔가 실수를 하면 심하게 날 자책하며... 

그냥... 누군가가 날 와서 칼로 찔러 줬으면 좋겠어.
라는 상상을 하며 길을 걸어간다.


위에 열거해 있는 트라우마가... 과연...
언제 쯤 지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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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업이 글쟁이지만... 감정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글이 엉망입니다. 죄송합니다.

픽션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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