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키 슈조 (
青木 周藏)
메이지 시대 일본의 외무장관을 역임한 사람인데, 이력이 특이해서 한 번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그는 쵸슈의 의사집안에서 태어나 난학을 공부하였고, 나중에는 나가사키의 명륜관에서 유학을 공부합니다. 그러다가 1868년, 메이지 원년 쵸슈 번은 그를 독일로 유학을 보냈는데 그는 독일에서 본인의 주특기인 의학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등 폭넓은 분야를 공부했습니다. 당시 메이지 정부가 보내는 유학생들은 거의 모두 군사학 그리고 의학을 공부했었는데 아오키는 다양한 전공을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아오키는 유학생들의 세부 전공에 깊숙히 개입하면서 학생들의 주특기를 정해주었습니다. 예컨대 누구는 제지를 공부하라고 하고, 다른 학생은 임업을 공부시키고, 다른 이에게는 맥주제조등을 공부시킨 것이죠
5년간의 유학생활 끝에 아오키는 1873년 일본으로 돌아와 외무성에 일등서기관으로 근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다시 주독 일본공사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프로이센 귀족의 영애 엘리자벳을 만나고 나중에 1876년에는 결혼까지 골인하게 됩니다. 서구인으로부터 멸시받던 동양의 아시아인이 서양 귀족의 딸과 혼인을 한 매우 희귀한 사례입니다.
엘리자벳 폰 라테
그는 독일공사, 오스트리아-헝가리 공사, 네더란드 공사 등을 역임하고 1879년 임신한 엘리자벳과 함께 일본으로 귀국하여 당시 일본이 계획하고 있었던 서구열강과의 조약개정에 참여합니다.
그런데 1880년에 다시 주독공사로 베를린으로 부임하고 이토 히로부미의 헌법조사 연구에 동참하여 그에게 독일 베를린 대학의 교수 루돌프 폰 그나이스트, 그리고 비엔낟 대학의 교수 로렌츠 폰 슈타인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1885년에는 조약개정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어 서양열강들과의 조약개정 교섭 실무를 맡게 되었고 1886년에는 외무성 차관으로 전격 승진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사활적인 노력을 기울이던 서양열강과의 조약개정을 도맡아 처리할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오키 슈조만큼 서양문화에 밝은 사람은 당시 일본에 없었습니다. 하물며 독일귀족 딸과 결혼한 일본인은 그가 유일했습니다. 그러한 배경을 바탕으로1888년에는 장관까지 승진하게 됩니다.
제가 보기엔 유능한 외교관의 전형을 보여주는 일본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의 직접적으로 관여한 업적으로는
1891년 서구열강과의 조약개정 및 치외법권 철폐
1891년 러시아 황태자 암살미수 사건의 외교적 수습
1894년 일영통상항해조약 개정
1900년 중국 의화단 운동에 대한 외교적 개입
1906년 주미대사로 부임하여 일본인 이민 문제 논의(물론 여기선 실패하지만..)
그리고 그와 엘리자베스 사이에 태어난 외동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