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동의 분열된 정치사회문화에 대해 나름대로 해답을 내리는 책을 읽고 있는데요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대 중동의 탄생>
원제는 "The fall of the Ottoman Empire: the making of the Modern Middle East" 인데요 상당히 재미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의 몰락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간의 치열한 음모와 투쟁이 현대 중동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닌데, 이 책이 신선한 이유는 각 주체 - 가령 영국이라든지, 또는 오스만 제국이라든지- 가 어떤 일관된 전략을 가진 단일한 '주체'가 아니라 그 안에 수많은 행위자들이 매우 역동적으로 그리고 복합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영국 안에서도 인도 총독, 이집트 총독 그리고 해군과 외무성의 이해관계가 서로 달랐고 이들은 서로 각기 상반되고 모순되는 전략을 추구했고
오스만 제국도 마찬가지로 그 안에 여러 세력이(궁중세력, 군부세력, 지방 호족들 등) 전후협상의 이익을 바라보며 서로 상충되는 목표를 추구했습니다.
다른 한편 후세인 왕가(현대 요르단 왕가의 시조)는 존재하지 않는 아랍인 비밀결사대의 위세를 주장하며 영국으로부터 참전 및 전후 협상을 요구했고
반대로 영국의 외무성은 현대 사우디 아라바이의 시조가 되는 이븐 알 사우드 세력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 유대인 시오니스트와 이들의 국제적인 영향력을 과대평가했던 밸푸어 경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국제 유대 금융의 도움이 필요했다고 판단, 당시 아무도 생각치 않았던 유대인들의 국가에 대한 선언을 하기도 하고요.
이 책의 주장은 요약하자면
오스만 제국의 관료, 군인들... 아랍인 영주들... 영국의 해군성, 외무성, 각 식민지의 총독들, 프랑스의 식민주의자들, 그리고 러시아의 아시아주의자들(중앙아시아 및 중동을 의미)이 모두 서로 1차 세계대전이라는 다급한 상황에서 서로 지키지 못할 또는 책임지지 못할 약속들을 하게 되면서 현대 중동 분쟁의 씨앗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다급한 상황에서 중동이라는 지역에 연루된 각 개인들이 (본국 정부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벌이는 근시안적인 - 또는 멍청한 - 전술과 협상을 보는 것이 또 다른 재미입니다.
현대 중동을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책인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