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법률게시판의 현재 소개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법게시판입니다. 법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곳 법률게시판에 올라오는 게시물의 대부분은 실제 사건에 대한 질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법률게시판의 취지에 맞게 실제 사건 뿐 아니라 법률 전반에 대한 다양한 토론이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새벽에 올라온 『배민에 양적다는 리뷰달았더니 제 주소를 적은 사장ㅋㅋ 신고성립되나요?』의 경우도 배달음식점 사장이 금지된 행위를 한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사회상규에 위배되는 행위인가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단,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에 상담해보라는 의견을 드렸습다만 쉽지 않은 문제인 듯 합니다.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의 해석이 있다면 나중에 그것을 이곳에도 올려주셨으면 좋겠네요.
그 전에, 혹시 저처럼 이 문제가 어떤 성격을 가지는가 관심이 있을 법률게시판 이용자를 위해『박민우, “개인정보 보호법상 불확정 개념에 있어 형법의 보장적 기능을 확인해주는 해석과 사회상규의 역할”, 형사정책연구 제28권 제1호(통권 제109호), 2017.3, 79-114』의 내용 일부를 소개합니다. 전체 내용은 앞의 링크를 클릭해서 볼 수 있습니다. 아래의 강조표시는 원문의 것이 아니라 제가 표시한 것 입니다.
전화번호・이메일・주소는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개인을 식별해준다. 사용자가 속한 직장이나 학교를 알면 전화번호・이메일로 개인을 특정할 수 있다. 해당 집단에 속한 아무에게나 물어보면 된다. 주소를 알면 해당 주소지의 우편함을 살펴보면 된다. 우편함에는 거주자 앞으로 된 수많은 고지서와 안내문이 있다. 등기부를열람하면 제한적이나마 일정한 등기명의자 정보도 알 수 있다. 이들 정보는 「개인정보 보호법」이 적용되는 영역에 존재함이 분명하다. 한편, 전화번호・이메일・주소는 공개정보와 비공개정보의 연속선상에서 ‘공개정보에 가까운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를 논증하는데 있어서는 전화번호・이메일・주소가 개인과 공동체를 연결시켜주는 정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개인의 전화번호와 이메일은 정보주체 스스로가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생성한 정보로, 주된 목적이 공동체와의 교류다.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변경한 사람은 대부분 바뀐 정보를 주변에 알려준다. 전화번호와 이메일이 공개를 전제로 정보주체인 특정 개인을 일정한 공동체 속에 연결시켜주고, 그안에서 사회적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해주고 있음을 방증한다. 주소의 경우에는 타인과의 교류만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정보는 아니다. 오히려 국가행정의 효율이 그 앞에 있을 수도 있다. 정보주체로서는 필요한 경우 이외에는 공개를 바라지 않는정보라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는 이상 누구나 수도없이 타인으로부터 주소의 공개를 요구받고, 이를 당연시 여기며 기꺼이 공개한다.직장, 학교 같이 정보주체가 공식적으로 속해있는 공동체에서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 만나는 사이에서도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으레 집은 어디인지(정확한 주소까지 묻지는 않겠지만),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문답이 오고간다. 웬만해서는어디 사느냐는 질문이 실례가 되지 않는다. 주소가 어느 정도 공개를 전제로 하는정보라는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상을 종합하면 전화번호・이메일・주소는 개인을 식별케 하는 정보이자 일반적으로 비공개 보다는 공개정보에 가까운 성격을 지니고 있는 정보임을 알 수 있다.
타인의 전화번호・이메일・주소를 자유롭게 유통시키고 이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의 확인이 필요하다. 공개정보에 가깝다고 해서 정보주체 의사와 관계없이 유통시킬 수 있는지, 만약 유통이 가능하다면 그 요건은 무엇인지다. 전자를 설명하지 않은 채 후자를 들여다볼 수는 없다. 먼저 전자를 살펴보기로 한다. 문명사회에 진입하기 이전부터 인류는 군집생활을 해왔다. 문명사를획기적으로 뒤바꾼 말과 글자, 인쇄술의 시작은 공동체 생활에서 정보의 유통이 가지는 효용을 깨달은 인류가 이룩한 성취다. 타인에 대해 알고 싶고, 이를 바탕으로연대와 소통을 하려는 욕구는 인간의 본성이자 인류를 발전시켜 온 원동력이었다. 인류가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는 이상 전화번호・이메일・주소같이 공동체 구성원 간소통과 교류에 도움을 주는 정보는 통제보다는 이용과 유통이 가지는 사회적 효용에 더 방점을 두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정보주체 의사와 관계없이 자유로운 유통을허용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바람직하다.
다음으로 자유로운 유통이 가능한 경우가 언제인지를 살펴본다. 생각건대 다음의 몇 가지 요건을 갖추면 업무상 알게 된 전화번호・이메일・주소(이하 ‘대상정보’)를타인에게 알려주더라도 사회상규에 따른 행위라고 평가해야 한다. 첫째, 1차 수집과정에서 대상정보가 전적으로 업무상의 목적만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사교의 목적도 함께 가지고 있었어야 한다. 범죄 신고자가 경찰관과 업무 외적인 목적으로 연락하고 싶을 리 없다. 보험설계사와 사적인 연락을 하고 싶은 고객도 없다. 배달음식점에서 주문 말고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면 불쾌하다. 반면 학생과 교사, 교수간의 관계는 다르다. 거래처 직원 사이 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분명 업무 때문에 타인의 개인정보를 알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업무와 관계없이 대상정보를 사용한다고 해서, 즉 사교의 목적으로 연락하거나 방문한다 해서 정보주체가 당황하지 않는다. 사교의 목적을 요구하는 이유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대상정보가 본래 공개정보에 가까운 성격을 지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고정불변의 성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보주체의 명시적 의사에 따라 완전한 공개정보가 될 수도있고, 반대로 비공개정보가 될 수도 있다. 만약 대상정보를 주고받는데 사교의 목적이 함께 있었다면, 대상정보가 가지는 공개정보로서의 성격을 강화시켜주거나 적어도 약화시키지는 않겠다는 정보주체의 내심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완전한 공개정보는 아니라도 대상정보가 가지는 공개정보에 가까운 성격이 훼손되지 않았다면,대상정보는 사회상규 논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공개정보에 가깝다는 성격을 확인해 주는 게 바로 사교의 목적이다.
둘째, 재산상 손해, 법적 불이익, 해악이나 공포 등 정보주체에 불리한 결과가 초래돼선 안 된다. 「개인정보 보호법」의 취지는 통제받지 않는 개인정보 유통이 정보주체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사생활의 평온을 비롯한 정보주체의 권리가 침해됐다면 사회상규에 해당할 수 없다. 다만 불쾌감과 같이 지극히 주관적인요소는 배제하고, 대신 사후통제로 보호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보주체의 내심이 형벌을 좌우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추상적인 권리도 마찬가지다.
셋째, 사회적 비난가능성이 없어야 한다. 헌법재판소 2015. 2. 26. 자 2009헌마17결정(간통죄 위헌소원)에서 일부 재판관의 반대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사회적으로 비난가능성이 없는 간통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로 볼 여지가 있다.” 이는 사회적 비난가능성이 사회상규의 판단요소 중 하나임을 지지해준다. 만약 고등학교 담임교사가 특정 대학에 담당 학생들의 수능성적과 연락처를 알려주고,이를 바탕으로 대학이 학생들에게 대입 홍보를 한다면 부정적인 사회적 평가가 뒤따를 것이다. 교사가 학생이 아닌 대학을 위해 입시지도 하는 게 아니냐는 비난이다. 이렇게 사회적 비난가능성이 있는 행위는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도, 사회질서의 범위 안에 있을 수도 없어 사회상규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여기서 확인해야 하는 점은 관행이라고 일컫는 일상생활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행위가 가지는 사회적 비난가능성이다. 관행과 사회적 비난가능성의 상관관계 문제다. 분명 관행이라면 사회적 비난가능성이 없거나 낮은 게 일반적일 것이다. 실제로도 관행을 이유로 사회상규를 주장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하지만 관행과 사회적 비난가능성은 논리필연적인 관계가 없다. 예컨대 관행이었다는 이유로 사회적 비난가능성을 더 크게 본판결도 있다. 사회적 비난가능성을 사회상규와 동일하게 생각하는 잘못을 범해서도 안 된다. 사회적 비난가능성이 없다고 해서 곧바로 사회상규에 해당하는 것은아니다. 사회적 비난가능성은 일반인이 가지는 일종의 법 감정이다. 법 감정이 법적평가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대중의 법 감정상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사회적 비난이 향하는 경우에도 법원은 사회상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사회적 비난가능성이 없거나 적다는 사실은 사회상규에 해당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업무상 알게 된 타인의 전화번호・이메일・주소라도 이상의 세 가지 요건을 갖추었다면,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일상생활에서의 악의 없는 전달이 허락되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법」이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억압하고 국민의 일상생활을 감시하는 법이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