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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은 행운아인가?
게시물ID : history_212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피터버크
추천 : 0
조회수 : 75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6/10 18:06:50
김옥균은 행운아일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1. 국가는 어떻게 돌아가는가.
 뜬금없이 국가에 대해서 먼저 써보겠습니다. 국가는 어떻게 돌아갈까요? 민주주의건 왕정이건 절대 한사람의 힘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영향이 다를 뿐이지요. 국가는 다수에 의해 돌아갑니다.. 저는 지금 행정부를 말하는 거고 현재라면 공부원들이고 그중에서 선출직 공무원들과 임명직 공무원들에 의해 돌아갑니다.. 물론... 진짜 일을 하는 건 그 밑에 고위 공무원 이하들이 한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그들의 뇌의 역할을 하는게 바로 그 선출직 임명직 공무원들이지요. 그러니까 이런겁니다.. 행시 공무원들이 머리가 엄청 좋습니다. 근데 그 좋은 머리로 빨리 삽질을 할지 아니면 빨리 건설적인 일을 할지.. 잘 나라를 말아먹을지 잘 나라를 발전시킬지는 선출직 공무원과 임명직 공무원에게 달렸습니다. 왕정시대로 가보죠. 주제는 김옥균이니까요.. 왕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분들이 아시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신권이 강했습니다. 왕이 미친짓 하려고 하면 사간원에서 이런 "걸주같은 전하님아 정신차리세욥" 이라는 말부터 지방에 은거해 있는 양반까지 상소올려서 왕을 돌아버리게도 할 수 있는 나라였죠.. 붕당들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대통령을 뽑을때 저는 그 사람도 중요하지만 그 주위 사람들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보는 편입니다.. 어차피 진짜 일을 할 사람들은 그 주변에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코드인사는 나쁜게 아닙니다 일을 하려면 당연히 자기 사람들로 일을 하는게 당연한거니까요.

2. 김옥균은?
 물론 김옥균은 그 유명한 안동김씨의 양자.... 로 들어 갔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힘이 있을것도 같지만.. 문제는 그는 급진 개화 파였단 말입니다. 게다가 그 급진개화파들이 갑신정변을 일으켰을때 서재필은 19살정도로 압니다.. 아무리 예전과 현재의 나이가 다르지만 김옥균은 30대였고 20대랑 10대도 있는... 그런집단이었지요. 게다가 그의 학문적 바탕은 일본이었고... 그 유명한 나쁜X이자 게이오대학의 설립자인 후쿠자와 유키치가 그의 스승이 었고... 힘이 없었다는 증거중 하나가 갑신정변은 일본의 힘을 빌려 시작했습니다 일본군대의 힘을 통해서요.. 물론 박영효가 한성판윤이어서 일부 군대가 있긴 했다지만 주력은 일본군이 었지요. 물론 여기에는 김옥균 그리고 많이 순진했던 당시 지식인들에 대한 변명이 있긴 합니다.
- 변명 당시 일본은 그들의 야욕을 나타내기 전이 었고 서방세계에 대항할 대항마 정도로 좋은 이미지 였다.. 그래서 많은 지식인들 양반들이 속아 넘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후쿠자와 유키치는 지금은 정한론자의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후쿠자와 유키치가 흑화한게 아이러니하게도 김옥균의 죽음 이후이다.

3. 갑신정변
 일본군대가 민자영(또는 민아영)이 부른 위안스카이의 군대에 의해 밀리자 아무 기반이 없이 시작한 김옥균과 기타등등들은 일본으로 망명합니다. 

4. 만약 갑신정변이 성공했다면??
 여기서 다시 1로 돌아가보죠.. 김옥균이 어린나이에 급재한 인재라고 해봐야 혼자 못합니다. 이런 시나리오 겠죠... 당시 위안스카이의 군대를 일본군이 패퇴를 시키고... 조정과 왕실을 장악했을겁니다.. 누가? 일본군이. 그리고 그 바탕은? 급진개화파.. 김옥균의 동료들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위인들이고.. 사람들도 부족했으며.. 그럼 일본인들이 직접 도와주러 왔을 가능성도 큽니다.. 애초에 군대는 일본꺼였습니다.. 자.. 이렇게.. 개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 군대가 주둔을 하고 조선의 방어를 책임 지게 되었겠죠 김옥균이 조선군을 믿을 수도 없을테니... 그리고 일본에 사람이 후쿠자와 유키치만 있는것도 아니고 어차피 일본의 야심은 겉으로 나타났을테고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고 어어어어어어 하다가 일사늑약이 필요없이 자연스럽게 우리는 일본에 먹히게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죠. 그렇다면.. 독립은 더더욱 힘들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갑신정변이 성공했다면. 이완용의 이름을 김옥균이 대신 차지하고 있었을 수도 있지요.. 사견입니다만.. 갑신정변의 실패와 김옥균의 죽음은 김옥균에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덕에 최소한 가끔씩 감신정변 떡밥이나 김옥균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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