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쉬워하는 부분이 미 24군단이 한반도 입성하기 이전에 '점령군'이 아닌 '해방군'으로 입성 선포하고, 한반도의 정세를 좀 사전에 파악해둔 상태에서 건국준비위원회(이 시기에 서울에서 건국준비위원회는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재건파의 내부 분탕질로 말이 많았지만, 서울제외한 지방 곳곳에서의 건국준비위원회는 분위기가 아예 달랐어요. 좌,우파 이런걸로 갈등하기보다 이념 상관없이 지역에서 인지도 높은 유지, 어른들이 직접 나서서 치안,행정 역할 맡았죠.(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85638&cid=40942&categoryId=31691) 그래서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건국준비위원회-인민위원회에 대한 지지가 굉장히 높았습니다. -이는 군정청에서 직접 조사한 여러 여론조사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참조-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37305723 )를 승인하고 이를 치안 유지에 지원해주고, '직접통치'가 아닌 일본 GHQ처럼 '간접통치'방식으로 했으면 적어도 최소한.. 친일경찰 출신들에 의해 사회적인 부정적 영향끼치는 일 같은것은 없었을거라 확신합니다.(그리고 덤으로 한민당 역시 마찬가지로 이들을 배제해버렸으면..)
저는 친일경찰 출신들이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소리에 대해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해방정국 시기 치안은 오히려 혼란스러웠다고 보고있거든요.(대구 10.1 사건의 1차적 원인이 친일경찰이 매우 컸다는것이 단적인 사례죠. 실제로 대구 10.1 사건 당시 분노한 군중들이 발견하는대로 때려죽이고 그랬던 집단 no.1이 경찰과 한민당 세력이었습니다. 기록에는 이들에 대한 죽이는 정도가 매우 잔인했을정도라고 하더군요. 그만큼 원망의 대상이었죠.) 이들 친일경찰 출신자들은 '행정적인 능력','경찰로서 지녀야할 수사 능력'보다는 '고문','조작'에 능한 '기술자'들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