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빠르게 각인시키기 위해서이든 오래된 프로파간다 기법 중 하나이든, 귀에 쏙쏙 들어오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사용자의 효율적인 목적달성을 위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방궁'이 그러했고 '반값 아파트'가 그러했습니다.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상징적인 단어 선택을 위해 많은 선동가들이 고심을 거듭했었죠.
말잘하는 논쟁가들의 특징이 있다면 이런 것들을 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보에서는 진중권, 노회찬등이 단어 선택을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
이번에 진중권이 새로운 단어를 골랐죠. '너절리즘'이라는 합성어는 듣는 순간, 진중권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해됩니다. 해석할 필요없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나꼼수 열풍에서 김어준에게 많은 동의를 보냈던 사람들을 쉽게 또는 잠잠히 빡치게 만들었죠. 지금의 여론은 나꼼수보다는 진중권에게 더 많은 비판을 가하는 듯이 보입니다.
저는 진중권의 발언을 듣고 이거다 싶었습니다.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왜냐, 지금까지는 나꼼수 혼자 지도를 그리면서 싸움을 주도했다면, 진중권의 등장 덕분에 링 위 싸움이 재밌어졌거든요.
링에 나꼼수와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보수가 올라가서 싸우고 있었다면, 사람들은 진보 vs 보수의 대결로만 봤을 겁니다. 어젠다가 진보 대 보수로 설정이 되는 거죠. 하지만, 진중권이 끼어들면서 어젠다는 진보만의 것이 되었습니다.보수따위는 아웃오브안중인 거죠.
정치 싸움에서 어젠다 선점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몰아칠수가 있거든요. 눈 찢어진 아이가 누구냐. 이건,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눈 찢어진 아이를 둘러싼 주변의 개싸움이 중요하거든요. 눈이 찢어졌든 거기다 앞트임을 했든 이미 싸움의 주도권은 진보세력에게 왔습니다.
진중권과 나꼼수가 싸우고 있는 마당에 한나라당이 끼어들어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한나라당 대변인실에서는 지금까지, 아방궁이니, 주어가 없다느니, 하면서 언론이 주목할만한 입을 많이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마당에서는 저주의 굿판을 그만 벌려라 라는 식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논평만을 낼 수밖에 없죠.
아마 시기를 조율하고 있었을 겁니다. 나꼼수가 더 승승장구해 사람들이 경계하고 있을 때를요.
이럴 때일수록 더 입을 열어서 목소리를 키워서 상대방이 목소리를 낼 수 없게 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과 같은 시기에 진중권이 끼어든 것은 더워진 몸을 잠시 차갑게 만들 수도 있고, 사람들이 더 나꼼수에 주목하게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이스 타이밍이라고 봅니다.
어차피 진중권은 이 쪽 계열입니다. 진보가 분열로 망하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많은 예들이 있었지만, 그래서 스스로 그런 것들을 가장 조심하고 있구요, 그리고 지난번 교육감 사태 때 조국 교수 등을 향해 김어준이 비겁한 진보라고 비난했었지만, 곧 서로 잊고 다른 사안에서 다시 뭉치지 않았습니까.
쿨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위로 올라가서 볼 필요가 있죠. 진중권도 김어준도 옳은 소리를 했습니다. 우리는 그걸 즐기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