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란 무엇일까요.
여기 여러분들이 싫어하는 조중동 중 중앙-조선 일보를 거친 정치부 기자분의 이야기를 한편 가져왔습니다.
너무 선입견 가지지 마시고...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참고로 저도, 조중동 정말 싫어합니다만, 많은 분들이 중립적으로 조중동을, 그리고 주진우 기자의 눈 찢어진 아이 이야기를 바라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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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정계복귀 '밤섬 프로젝트'
[정치부기자 23년의 기억들] <9> DJ 정계복귀와 나
2006-04-24 08:10:15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1630 1993년 여름이었다. DJ가 영국에서 돌아왔다. 세상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정계를 은퇴한 그였다. 설마 다시 정치를 할까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DJ가 정치를 할 걸로 봤다. 대선에 나설 걸로 봤다. DJ 귀국 직후 나는 김현철씨와 내기를 했다. DJ의 정치재개를 두고 말이다. 모든 정보를 쥐고있던 현철씨였다. 그는 DJ가 절대로 정치를 안 할 거라 했다. 명분이 없다는 거였다. 그것은 YS의 생각이라고 했다. YS만큼 DJ를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말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렇게 봤다. 심지어 동교동 사람들도 그랬다. 그래서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얼마 후 DJ가 아태 평화재단을 만들었을 때도 그랬다. 정치를 안 할 생각이기에 그걸 만들었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저 정치 언저리에서 거드는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대통령선거에 출마할거라 보는 사람은 적었다. 그래서 동교동 사람들도 머뭇거렸다. 그런 상태로 꽤나 시간이 지났다.
어느 날이었다.
DJ의 비서 장성민이 전화를 걸어왔다.
“형, 나 신한국당 당사 앞 다방인데 잠시 얼굴 좀 봅시다.”
“나 기사 써야 되는데...나중에 보면 안 될까.”
좀 귀찮았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다.
“아니야. 급히 좀 만나야 돼. 그리고 시간을 넉넉히 가지고 나와.....”
“중요한 얘기가 있냐? .......알았다. 지금 나가께.”
당사 바로 앞의 허름한 다방이었다. 장비서는 다방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가지마. 기자들 있더라. 나 따라와. 어디 좀 가야 돼.”
“어딜?”
“글쎄 따라오라니까.”
장 비서는 나를 버스 정류장으로 데려갔다. 무작정 아무 버스에 나를 태웠다. 얼핏 보니 종로 행 버스였다.
“야, 뭐하는 짓이야. 종로로 가는 거냐? 왜 버스를 태우는 거야. 너 미쳤냐?”
“내 말 잘 들어. 길게는 얘기하지 않겠어. DJ가 형을 기다리고 계셔.”
“뭐?”
장성민의 설명은 간결했다. 요지인즉 이랬다.
‘DJ와 자기 단 둘이서 동교동 사람들도 모르게 모종의 작업을 진행 중이다. ’밤섬‘이라 불리는 비밀 아지트에서 작업 중이다. 그 곳에 DJ가 지금 있다.’
얼핏 들어도 정계복귀 작업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지금 밤섬이라는 곳으로 가는 거냐?”
“응.”
우리는 종로2가에서 내렸다. 그리곤 길을 건넜다. 그런데 다시 마포행 버스로 갈아 타는 거 아닌가. 좀 화가 났다.
“좀 심하다. 여의도에서 그냥 마포로 가면 되지 굳이 종로까지 왔다가 다시 갈 건 뭐냐.”
“미행이 있을지 몰라서 그래. YS가 이만 저만 감시가 심한 게 아니야. 철저히 숨겨야 돼. ”
마포 가든호텔 앞에서 내린 우리는 길을 건넜다.
여의도 쪽으로 걸었다. 마포대교 앞 한신 오피스텔이었다. 1층 로비로 가려하자 장비서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거기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낫다고 했다. 그래야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정확히 몇 층인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어느 방엔가 들어갔다.
순간 난 너무 놀랐다. 그 초라함 때문이었다. 5평이나 됐을까? 도배도 칠도 하지 않은 누추하기 이를 데 없는 방이었다. 문 앞엔 빈 설렁탕 그릇 대 여섯 개 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DJ와 장비서가 먹은 듯한 그릇이었다. 방구석엔 조그만 책상이 있었다. 칠도 베껴진 낡은 책상이었다. 그 뒤에 DJ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책상위엔 A4용지 묶음이 있었고 그 옆엔 잘 깎여진 연필 다섯 자루가 있었다.
나는 다소 의아했다. 정계복귀를 준비 중이라 치자. 그렇다고 이렇게 허름한 곳에서 숨어서 해야 되나 싶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DJ가 먼저 말을 걸었다.
“이 차장 오랜만입니다. ”
“예, 안녕하십니까......건강은 괜찮으신가요?”
“괜찮소. 오늘 나랑 얘기 좀 합시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 좀 듣고 싶어서 보자고 했소. 시간 내주어서 고맙소.”
“제가 뭐 아는 게 있습니까. 그저 여기저기 주워들은 얘기지요. 총재님이 궁금하신 걸 물어보시면 제가 아는 것은 있는 그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나는 적당히 시간만 때우고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DJ의 모습을 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패자였다. 선거에서 진다는 게 이런 건가...그럼에도 이렇게 다시 일어나보려 하는 건가....도대체 권력이 뭐길래....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생각이 스쳤다.
뭔가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나는 DJ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던 기자가 아니었다. 조평사태, 서경원 사건 등에서 나는 언제나 DJ쪽과 각을 세우는 위치에 있었다. 그때까지 기사를 통해 가장 많이 그를 비판했던 기자 중 하나였다. 그 때문에 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항상 그걸 풀고자 하는 마음도 함께 있었다. 속으로 잘됐다 생각했다. 이번이 기회라 여겼다. 그래서 성실히 답했다. 하나를 물어보면 열을 답했다.
DJ는 메모광이다. 종이위에 질문과 답을 나눠서 빼곡히 적었다.
한 세 시간은 걸렸던 거 같다. 요즘 YS 근황은 어떤가 하는 질문이 있었다. 최근에 김현철씨를 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도 있었다. 만났더니 뭐라 하더냐고 물었다.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것 같냐고도 물어봤다. 이원종 정무수석의 위상이 어떠하냐는 얘기도 있었다. 신한국당 대권판도가 어떻게 될 걸로 보느냐는 말도 있었다. 여하튼 한 20개가 넘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지금으로서는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뭐라 답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성실히 답했다. DJ는 거의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적기만 했다.
“이 정도면 됐습니까? 저로선 아는 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참고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소.”
“그나저나 이 말씀은 안 드리려 했는데.... 총재님이 오늘 이런 곳에서 이렇게 계시는 걸 보니 마음이 아픕니다. 그 화려했던 모습은 어디로 갔나요. 부디 총재님께서 무엇을 하시려는지 모르겠으나 좋은 일만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제가 평민당 시절부터 총재님께는 불편했던 기자입니다. 혹 오해하시는 게 있으시거나 기분 나쁘셨던 거 있으셨다면 모두 풀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니오. 오늘 정말 좋은 얘기 많이 들었소. 나로선 중요한 얘기들이오.”
문을 나서는 나를 장 비서가 잡았다.
“오늘 만남은 당분간 비밀로 해줘. 밤섬의 존재가 알려져선 안 돼. 동교동 사람들도 모르는 사실이야.”
“난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런데 정계복귀하시려는 거냐?”
“지금은 뭐라고 말할 수 없어. 그럴 단계도 아니고. 진전이 되면 내가 형한테 제일 먼저 얘기해주께...”
“누구한테도 말 안할게. 다만 뭔가 결정이 나서 남에게 알릴 시점이 되면 내가 제일 먼저다.”
나는 약속을 지켜주었다. 이후에도 나는 DJ를 그런 식으로 두어 번인가 만났다. 힐튼 호텔 방에서였던 거 같다. 그러나 장 비서는 나에게 진전된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 DJ의 정계복귀는 그 준비의 치밀함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나도 그만 특종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DJ정계 복귀 직후였다. 나는 장성민 비서를 만났다. 특종을 놓친 게 아까왔다. 그래서 뒷 얘기나 들으려고 그를 만났던 거다. 그런데 묻기도 전에 장비서가 말을 꺼냈다.
“형이 아니었으면 DJ는 정계복귀를 할 수 없었을 지 몰라....”
“무슨 소리야? 내가 무슨 역할을 했는데....”
“밤섬 기억나?”
“응. 나랑 세 시간 동안 DJ하고 얘기 나눈 거.....그렇잖아도 니가 진전된 얘기를 해주면 기사를 쓰려던 참이었는데 아깝게 놓쳤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왜 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거야. 뭔 소리야? 나하고 정계복귀가 무슨 상관인데?”
“그럴 일이 있어. 나중에 얘기해주께.”
“나는 궁금하면 잠을 못자는 사람이야. 뭔데? 내가 그때 DJ 에게 뭐 중요한 애기를 한 게 없는데....비밀스런 얘기를 한 것도 없고....”
“형은 그저 알고 있는 걸 얘기했던 거지만 당시의 DJ로서는 결정적인 게 있었어. 나중에 DJ가 집권하고 대통령직 퇴임하면 그때 가르쳐 주께. 지금은 일러.”
그 말 이후로 지금까지 약 9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기회있을 때마다 장비서에게 물었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냐고 말이다. 볼 때 마다 물었다. 어느 대답 때문에 정계 복귀가 가능했냐고 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확한 대답을 안 하고 있다. DJ가 퇴임한지 3년이 다 됐는데도... 얼마 전에도 한 술자리에서 물었다. 그랬더니 또 1,2년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저 단편적으로 대답했던 그때그때 장비서의 얘기를 종합하면 이렇다.
당시 DJ가 정계복귀를 준비하려 하자 YS쪽의 방해가 있었다는 것이다. 좋게 말해 방해지 쉽게 말해 공작이었다. 그런데 나를 만날 즈음이었다. DJ가 그 공작에 말려드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YS쪽 누군가가 DJ를 속였던 거다. 채널이 있었던 거 같다. 만일 DJ가 말려들었다면 정계복귀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얘기를 듣고 그것이 YS쪽의 ‘사기’임을 판단하게 됐다는 얘기였다. 그걸 검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 대답 속에 해답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게 지금까지 내가 아는 전부다. 그래서 나도 짐작만 할 뿐 정확히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때문에 DJ와 불편했던 관계를 청산할 수 있었다.
나를 아는 많은 사람이 의아해 했을 거다. DJ와 내가 원래 불편했는데 언제 가까워졌을까. 지난번 나의 글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대통령 당선 다음날 DJ와 함께 차를 타고 당사까지 갔었다. 모두 그 밤섬의 기억 때문이다. 그래서 DJ 시절 내가 청와대 출입기자도 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실은 DJ가 그 차속에서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나의 청와대 출입을 두고도 복잡한 일이 많았다. 아마도 DJ 쪽에서 내가 청와대 출입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여기저기 얘기했던 거 같다. 흔히 있는 일이다. 사이 나쁜 기자가 나가면 서로 불편하고 그럴 경우 취재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걸 일부에선 내가 로비를 해서 청와대 출입을 하려한다고 씹어댔다. 나도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전된 후에서야 그걸 알게 됐다. 그 때문에 엄청난 마음고생을 겪어야 했다. 그 얘기는 일단 생략한다. 많은 오해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론 내가 청와대 출입을 하게 됐다. 그러나 한참 뒤였다. DJ쪽 요청 때문이 아니었다. 회사의 순번이었다.
DJ는 내게 상당한 호감을 표시해 주었다. 악수하는 대통령의 손만 잡아도 그걸 짐작할 수 있었다. DJ는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과 악수할 땐 손을 잡자마자 뺀다. 상대가 이내 잡으려면 벌써 빠져 있을 정도로 빠르다. 그러나 호감을 표시할 땐 손을 빼지 않는다. 상대가 쥘 때까지 기다려 준다. 어떨 땐 자기가 약간 흔들어 준다. DJ는 언제나 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나 나는 동교동 실세들과의 관계개선은 실패했다. 그들은 DJ집권이후에도 예전의 나로만 나를 기억했다. 그들에게 밤섬의 기억이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나를 여전히 경계했다. 자신들의 불우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기자이기도 했다. 그러니 여러모로 불편했을 것이다.
예를 한번 들고 넘어가자. DJ 시절 꽤나 높은 자리에까지 갔던 사람이다. 누구라고 이름은 안 밝히겠다. 그 사람은 80년대 말 동교동 비서였다. DJ자택 문간방에서 숙직을 했다. 밤새 걸려오는 전화도 받고 경비도 서는 그런 역할이었다. 나는 이른 아침 동교동을 제일 먼저 찾아가는 기자였다. 그는 내가 응접실에 들어서면 문간방에서 나왔다. 인기척에 놀라 잠에서 깨는 것이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응접실 어항 물고기 밥을 줘야 했다. 그래서 방을 나서면 어항 앞에 간다. 그리곤 물고기 밥을 집는다. 그럴 때면 내가 “이미 밥 줬어요. 주지마시죠” 하곤 했다. 어떨 때는 그가 자기 눈꼽을 떼어 물고기 밥으로 주기도 했다. 우리는 그걸 보고 배꼽 잡고 웃기도 했다.
그러던 사람이 정권 실세가 됐다 생각해보자. 정국이 어떻고 나라가 어떻고를 매일 얘기한다. 모두들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다. 그런 사람이 금붕어 밥 주던 모습을 기억하는 기자를 좋아할리 있겠는가. 싫은 건 당연하다. 없어졌으면 할 게다. 결국은 그렇게 됐다.
그렇다고 그들과 굳이 관계개선을 하고 싶진 않았다.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DJ정권 실세그룹과는 거리를 뒀다. 다만 DJ의 장남 김홍일 의원만 달랐다. 그는 내게 친절을 베풀었다. DJ한테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DJ정권과 중앙일보가 전쟁을 치를 때였다. 청와대 기자실에서 기사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기자실로 한 비서관이 나를 찾아왔다.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이 차장, 좀 봅시다.”
“나 기사 쓰는 중인데 마감하고 나서 뵈면 안될까요?”
“안되오. 지금 봐야겠소.”
“......? 중요한 일인가보죠?”
“그렇소."
우리는 기자실 밖으로 잠시 나왔다.
“지금 이 차장 회사와 청와대 사이에서 마음고생이 심할 거라 생각하오. 그래서 말인데.....이차장이 원한다면 청와대에 자리를 하나 마련해주려고 합니다. 내 생각이 아닙니다. 무슨 말인지 알 겁니다. 되도록 빨리 답을 주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기사 쓰는 도중에 보자고 한 겁니다.”
순간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했다. 우선은 ‘왜’ 였다. 왜 나를 데려가려 한단 말인가. 짐작가는 부분이 있었다. 실은 그럴 일이 있었다. 내가 뭔가를 쓸지 모른다는 우려가 청와대 내에 있었다. 전쟁을 치르는 상황이니 말이다. 당시 정권 고위 인사의 사적인 문제였다. 내가 현장에 있었기에 알게 된 내용이다. 그러나 기사로 쓸 수는 없었다. 일단은 그것 때문에 오라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반대로 내가 아는 얘기를 필요로 했을지도 모르는 거다. 그런 이해관계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도 스쳤다. DJ의 나에 대한 호감도 전제됐다 여겼다. 그러나 오래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시간은 필요 없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말입니다. 그러나 안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오른쪽 귀로 듣고 왼쪽 귀로 내보냈습니다. 다만 이 말씀은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만약 제가 뭘 쓰는 거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에서 저를 부르시는 거라면 그건 마음 놓으십시오. 제가 피치 못해서 지금 걱정하고 계시는 내용을 쓰게 될 상황이 온다면 저는 그날로 기자를 그만두겠습니다. 그 점 안심하십시오. 남의 사적인 얘기를 기사화하는 걸로 기자생활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리고 오늘 제게 하신 말씀은 비밀로 해주십시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안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청와대 출입을 관뒀다. 그리고 얼마 뒤 정치부를 또 떠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