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막부를 토벌하고 유신을 일으켜 근대화에 진입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양무운동과 변법자강에도 실패하고 신해혁명에 이르러서야
국체를 바꾸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조선은 이와 같은 코스를 걷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합니다만 <명분>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일본의 경우, 정치와 사회의 불안, 그리고 무능의 책임을 도쿠가와 막부에 뒤집어 씌우고 <천황제>로 <돌아가자>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어서 구체제를 타파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의 연속성과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로 무능과 실패를 '만주족'에게 뒤집어 씌우고 <한족>의 국가로
<돌아가자>는 명분으로 구체제를 타파하고 정치를 개혁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유학자(국학자)들은 막부가 정권을 휘두르는 게 비합리적이고 정통성이 없다는 논리를
나름 설득력 있게 주장하였고 초슈와 사쓰마는 이들의 주장을 명분으로 삼아서 봉건제를 타파하고
개혁을 위한 중앙집권(폐번치현)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목표는 근대 관료제였지만 이를 포장하기 위한 '언어'는 고대 '율령제'였죠.
중국 또한 중국인들의 불행과 빈곤 그리고 외세의 침략이 모두 '만청'으로 비롯되었다면서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이들로부터 권력을 빼앗고 구체제를 소멸시켜버렸습니다.
반대로 조선은 이와 같은 <퇴로>가 없었던 것 같아요. 구체제를 타파하면서도 정치적 안정과 사회의 연속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를 납득시킬 수 있는 <명분>이 없었던 것이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급진적 개혁은 필히 이전 체제가 부정하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아 진행이 되는데
500년된 조선왕조가, 또는 당시 조선의 기득권 층이 비합법적인 집단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조선 입장에서 근대화로 가는 길이 유독 어려웠던 것은 바로 이러한 차이로 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