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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와 세월호, 그리고 1426년 한성 화재.
게시물ID : history_211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광필
추천 : 7
조회수 : 60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6/05 12:13:14
태평성대만 같았던 세종대왕 시대에도 여러 변고가 많았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변고중에 하나가 세종 8년 (1426년) 2월에 도성에서 난 화재입니다.

1426년 2월 15일 기사에 따르면 "한성부의 남쪽에 사는 인순부의 종[奴] 장룡(長龍)의 집에서 먼저 불이 일어나 경시서(京市署) 및 북쪽의 행랑 1백 6간과 중부(中部)의 인가 1천 6백 30호와 남부의 3백 50호와 동부의 1백 90호가 연소되었고, 인명의 피해는 남자 9명, 여자가 23명인데, 어린아이와 늙고 병든 사람으로서, 타죽어 재로 화해버린 사람은 그 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고 합니다.

당시 세종은 강원도에 있었습니다. 2월 13일 기사에 따르면 강원도 횡성에서 강무(군사훈련을 겸한 사냥이죠)을 하고 계셨죠.

화재 다음날인 16일, 화재 소식을 들은 세종은 강무를 중단하고 바로 환궁하겠다고 합니다. 그와 동시에 명을 내려 "궁으로 돌아갈 때에 의장을 갖추지 말 것과 세자가 교외에까지 마중을 나오지 말게 하고, 각 관청에서는 문밖에 나와 마중하지 말고 다만 조방(朝房)에 모여 있게 하였다"고 하시고 "화재를 당한 여러 집과 가산이 모두 타서 식량이 떨어진 자들의 인구를 조사하여 식량을 공급하고, 화상을 입은 자는 의원으로 하여금 치료하게 하고, 사망한 자는 한 사람에 대하여 쌀 1석과 종이와 거적 등의 물품을 주어 매장하게 하고, 그 중에 친족이 없는 자는 관청에서 장사에 쓸 기구를 주어 한성부로 하여금 사람을 시켜서 장사지내게 하라" 고 예조에 지시하십니다.

이어 19일 신시에 환궁한 세종은 의정부에 “화재를 당한 집 수와 인구를 장년과 어린이로 나누어 힘써 구제하여, 굶주리며 곤란을 당하는 사람이 없게 하라.” 하고, 병조에 “화재를 당한 사람들의 집을 지을 재목으로 말라 죽은 소나무를 베어 주라.”고 명 하시죠

20일에는 내자시에 명해 “화재를 당하여 식량이 없는 사람에게 묵은 장(醬) 3백 석을 나누어 주게 하라.” 하시고 또 “서울의 행랑(行廊)에 방화장(防火墻)을 쌓고, 성내의 도로를 넓게 사방으로 통하게 만들고, 궁성이나 전곡(錢穀)이 있는 각 관청과 가까이 붙어 있는 가옥은 적당히 철거하며, 행랑은 10간마다, 개인 집은 5간마다 우물 하나씩을 파고, 각 관청 안에는 우물 두 개씩을 파서 물을 저장하여 두고, 종묘와 대궐 안과 종루의 누문(樓門)에는 불을 끄는 기계를 만들어서 비치하였다가, 화재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 곧 쫓아가서 끄게 하며, 군인과 노비가 있는 각 관청에도 불을 끄는 모든 시설을 갖추었다가,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 각각 그 소속 부하를 거느리고 가서 끄게 하라.”며 화재 대비책까지 내리십니다.

21일에는 전지하시어 “화재를 당한 각 집에서 도형이나 유형을 당하여 군대에 보충된 자가 있으면 상세히 조사하여 보고하고, 또한 화재를 당한 각방(各坊)에 거주하는 삼군의 갑사와 방패 근장대장(防牌近仗隊長)과 대부(隊副)로서 자원하여 당직을 중지하려는 자는 이를 허가하고, 그대로 머물러 있는 자에게는 2개월 간의 휴가를 주어 집을 짓게 하며, 사복시·충호위·사옹원·상의 원의 여러 관원과 군기감의 별군관과 각 관청의 조예(皂隷)·나장(螺匠)·도부외(都府外)·소유(所由)·갈도(喝道)·장수(杖首)·보충군(補充軍) 등은 올곡식[早穀]이 성숙되고, 가옥을 새로 지을 때까지 7개월간 휴가를 주고, 지방 사람으로 서울에 와서 직무에 복무하면서 세로 들어있던 집을 소실당한 사람 중 이달에 당번이 된 사람은 모두 돌려 보내고, 여러 종류의 장인(匠人)으로 어쩔 수 없이 일을 시켜야 될 사람에게는 그 처자의 급료까지 지급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화재에 걱정하시며 대책을 마련하면서 "내가 부덕해 음양의 조화를 잃었다. 대신들이 도와주면 극복할수도 있을 것이다"(2월 28일) 며 한탄하시다가  

29일에는 "불탄 가옥의 보수를 위해 별요를 설치하여 싼 값으로 기와를 보급하게 하라"는 호조의 요청을 받아들이십니다.

말 그대로 이재민 긴급 구호와 화재 재발 예방, 이재민들의 재활대책까지 총체적으로 지시하시면서도 화재가 "내가 부덕한 탓"이라 하신거죠...

만약 요새 이런 일이 발생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황상은 강원도에서 환궁하긴 커녕 내친김에 중국황실을 방문하고 서울에서는 "장룡은 종북 빨갱이, 노무현때 종이된 사람, 전라도 태생"이라는 말이 돌아다니고 "한성판윤(서울시장)의 잘못이다"는 주장이 나올 것이며 집과 가족을 잃은 이재민들에게 엄청난 보상금이 주어진다는 말이 나오면 "그거면 된거 아니냐, 왜 화재가 번진 이유를 따지냐, 가족과 집을 팔아 한몫 챙기려는거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질거 같다.....고 말한다면 기우일까요?
출처 세종실록 8년 2월 13일부터 29일까지 기사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Tree=0&id=k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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