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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cook_2113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ㅂㅎ한★
추천 : 13
조회수 : 1312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7/09/19 16:04:40
술김에 위매프 앱을 켠 게 잘못이었다. 손질된 고등어 스무 팩을 만 원에 준다기에 '이렇게 쌀 때 먹을 걸 미리미리 쟁여놓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이 술김에 발동했던 것 같다. 그덕에 아직도 냉동실엔 고등어 서른 팩 가량이 남아 있다.
냉동실을 가득 채운 고등어들은 때론 양념과 함께 조림이 되고 찜기 속에서 생선찜이 되기도 했지만, 대개 프라이팬 위에서 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구이가 되곤 했다.
살짝 타서 바삭해진 고등어 껍데기를 젓가락으로 찢으면 모락모락하는 김과 함께 하얀 고등어 속살이 결을 치며 나온다. 살짝 누렇고 하얀 것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있으니 노릇노릇하다는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린다.
껍데기 중에서도 가장 바삭한 곳 한 조각을 떼서 고등어 살 한 점에 얹어 먹으면 밑간으로 뿌려둔 소금이 고등어의 두툼한 흰 살점과 퍽 어울렸다. 처음 씹을 때 '바삭'하는 소리를 내는 껍데기 역시 먹는 재미를 더했다.
한 달간은 퍽 맛있게 고등어를 먹었다.
하지만 두 달째 고등어만 먹는 날이 반복되니 이제 고등어 사진만 봐도 고등어 맛이 입을 감도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전히 맛이야 있지만 해먹기 귀찮아졌다. 고등어를 꺼낼 때마다 이젠 지겹다는 생각이 더러 들었다.
그러다 오늘은 실수로 팬에 식용유를 쏟아부었다. 고등어가 반쯤 잠길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버리기도 아깝고 이참에 고등어 튀김이나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밑간을 한 고등어 두 마리를 달군 기름 속에 넣었다.
고등어는 이내 '치이익'하는 소리를 내더니 곧 무척이나 맛있는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고등어와 함께한 지 어언 두 달, 다시금 고등어에 설렘을 느끼게 하는 냄새였다. 그 냄새는 고등어와 내가 서로 처음 만났던 그날의 그 설렘이었다.
느끼해서 맛은 없었다. 설렘은 원래 냄새만 맡는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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