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일때문에 싱가폴이 와 있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넉넉하여 창이 공항 안에서 식사도 하고 차한잔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문득 이곳 창이가 우리 민족에게 참으로 이해할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 일어났던 장소라는게 생각이 났습니다.
일본의 대동아 전쟁 당시 동남아 쪽으로 군대를 포함하여 징병 되어온 조선의 20~40대의 젊은이가 많았었죠.
모두가 아는바와 같이 결과는 일본이 패망 하였죠. 그리고 우리는 독립을 하였고요
그런데, 일본의 최대 피해자인 우리에게 전범들이 있었다는거 아십니까?
전체 전범 숫자 5,700여명 중 조선인 전범은 148명이나 됩니다
이중 129명이 포로 감시원 (군인과는 구별이 됩니다) 이고 이중 23명이 B,C 전범으로 사형 당합니다. 그것도 선고후 한달여만에 그장소가 바로 제가 있는 이곳 싱가폴의 창이 라는 곳입니다. 세계적인 허브 공항으로 유명한 곳이죠.
콰이강의 다리 라는 영화 아십니까? 아마도 40대 중반은 되어야 알만한 영화기는 한데, 그 영화의 역사적 배경이 그시대 포로 수용서 이죠.
영국과 호주 군 포로를 일본이 제네바 협상을 무시하고 강제로 노역을 시키며 많은 사상자를 내었었죠
그 포로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들은 감독 하는 역활을 징변되어온 조선인들이 맡았던건데
당시 의 포로 들이게는 그 조선인들이 가장 공포의 대상 이었다고 합니다.
매일 폭력을 가하고 강제 노동을 시키고 심지어 사망에 이르는 이들까지 있었으니 그럴만도 하지요
그런데 전범으로 몰린 그 무시무시한 조선인들은 똑같은 과정을 일본에게 당하고 강요당하여 본인들이 살려고 명령에 의해 저질러진 일임을 재판에서 호소 하지만, 애당초 말도 통하지 않던 재판에서는 일방적으로 사형이 선고 되고 시행 됩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에 태어나 강제로 징용되어 악마가 되어 머나먼 타국에서 일본인으로 23명의 젊은이가 사형 되었던 장소에서 ...
갑자기 먹먹해 지내요. 참 긴 이야기 핸드폰으로 하레니 힘겹기도 하고 요기 까지 하겠습니다.
역사를 돌아 보는것은 좋은일은 더 발전 시키고 나쁜은 다신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