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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요전쟁 - 2. 강조의 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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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Lemonade
추천 : 14
조회수 : 124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5/25 1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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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요전쟁, 특히 2차 침공은 참 힘들고 어려운 전쟁이었고 전반적으로 좋게 좋게만은 볼 수 없지만, 그냥 좋게 좋게 봅시다. (...) 어차피 다음에 얘기할 두 개의 전쟁은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전쟁들이니까요.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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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별이 지다
다음 해, 소손녕은 다시 사자를 보내 양국의 국경을 확고히 합니다. 얼렁 강동 6주 드시고 성 쌓아서 고려 땅으로 하라는 거였죠. 물론 거란에 사신을 보내 황제국으로 모시라는 것도 잊지 않았구요. 이에 성종은 거란의 연호를 써 주면서 송에 몰래 거란을 협공할 것을 청합니다. 하지만 요를 칠 기운이 없었던 송은 거절하고 단지 사신을 잘 대접해줘서 보냅니다. 이에 대한 고려의 반응은...

국교를 끊는 거였죠. -_-; (조선이 쓴) 고려사에서도 살짝 기가 찼는지 "우대해서 돌려 보냈거늘 송과 절교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려와 조선은 사정이 마~이 다르죠.

성종은 그 후에 고려의 지방 체제를 확립하고, 강동 6주에 많은 성을 쌓습니다. 이를 총괄한 사람은 역시 서희. 하지만 997년, 성종은 겨우 38살의 나이로 죽습니다. 묘하게 조선 성종과 죽을 때의 나이가 같죠. 유교를 잘 살린 것도 같고, 죽은 후에 나라가 막장이 된 것조차도 같습니다. (...) 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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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반 년 후인 998년, 여요전쟁의 영웅 서희도 세상을 뜹니다. 향년 58세, 이후에 우리 역사에 이만한 외교관이 또 누가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이후 양규, 강감찬 등의 전쟁 영웅이 나옵니다만, 진정한 주인공은 서희입니다. 그가 없었다면 이후의 일들은 전혀 달라졌을 겁니다.

2. 목종
성종은 아들이 없었고, 그 뒤를 이은 것은 경종의 아들 목종이었습니다. 경종의 동생 성종에게는 조카가 되죠. 경종이 죽었을 때 목종이 아직 어려서 왕위에 올랐는데, 유교를 중시한 왕이었던 점 등에서 일부러 경종의 적통 목종을 위해 아들을 가지지 않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 진실이야 저 너머에 있었겠지만, 성종은 목종을 확실히 자기 후계로 두었습니다. 헌데 문제는 그 목종의 어미였죠.

헌애왕후, 경종의 비였던 그녀는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서 정덕 왕태후로 칭해집니다. 문제는 목종의 나이가 18세임에도 불구하고 섭정을 했다는 것이죠. -_-; 그녀는 천추전에 거처해서 세상에 "천추 태후"라는 명칭으로 불립니다. 네, 그 천추 태후입니다.

목종도 크게 보이진 않지만 성종이 하던 일을 꾸준히 추진합니다. 강동 6주의 우주방어는 계속됐고, 전시과를 손 보고 과거제가 제대로 확립되죠. 지방 체제도 다시 정비했구요. 여기에 요 몰래 송에 사신을 보내 요 뒷담화를 신나게 합니다. (...) 이렇게 송과의 연결이 재개되죠. 이렇게 성종의 유산이 무사히 이었고, 딱히 막장은 아니었던 거죠. 이게 목종의 공인지 천추태후의 공인지는 많이 애매한 문제지만요. 그 때문에 드라마 천추태후에서 "고려사 지은 놈들은 게으르다"는 개드립이 나온 거겠지만요.

글쎄요. 여기서 현종까지 가는 기간이 참 이상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무조건 피해자라고 보는 건 이상하죠. 그리고 그걸 넘어서 아예 그녀가 숨겨진 영웅이라고 하는 것도요 (...) 무엇보다 그게 다 천추태후의 공이라 해도 정치 잘 하는 거랑 정치적 야심은 별개입니다. 굳이 여자를 고르라면 당의 측천무후가 그랬고, 그냥 보자면 조선의 세조도 잘 한 건 많아요 (...)

각설하고, 이 때 그녀의 입김이 커지면서 떠오른 인물이 바로 김치양입니다. 고려사를 신뢰하고 본다면, 참 막장 중의 막장이죠. 승려 출신으로 천추태후와 간통하다가 성종에게 걸려서 머어얼리 유배갔다가 성종이 죽은 후 돌아옵니다. (...)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천추태후랑 놀죠. 이를 보면 이상하긴 한데 반론으로 할 만한 것이, 천추태후가 어떻든 그녀는 적법한 계승자의 어미였고, 함부로 할 순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호족들을 마구 숙청한 광종 시절이 그리 먼 옛날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경쟁자가 있었다면 모르겠습니다만 -_-a

목종 역시 아들이 없었고, 다음 후계자로 거론되는 인물은 대량원군 왕순, 이 양반의 출신 역시 참 거시기합니다. (...) 무엇보다 후견인이 없었구요. 고려 초가 막 끝나가는 시대, 이렇게 왕건의 적통이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 경쟁자도 없는 천추태후를 숙청하는 건 어려웠다고 봅니다.

아무튼 별로 문제 없었던 목종의 치세는, 천추태후와 외척 김치양으로 인해 암운이 드리워집니다. 그들은 일단 대량원군 왕순을 승려로 만들어 버립니다. 왕위 계승 자리가 박탈된 거죠. 그들 사이에 자식이 생겼거든요. (...) 아예 후환을 끊기 위해 음식에 독약을 넣어 대량원군이 있는 신혈사에 선물인 척 줍니다. 이 때 절에 있던 승려가 대량원군을 땅굴에 숨겨놓고 없는 척 했다고 하죠. 이 음식들을 버리니 까마귀가 와서 먹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목종은 이런 움직임을 알면서도 막지 못 했다고 합니다.

잠식되어 가는 왕권, 거기다 상대는 자기의 어머니 -_-; 목종은 힘을 잃어 갑니다. 정사에 손을 놓게 되고 대신 색에 빠졌는데 이게... 남색이죠. (...) 상대는 유행간이라는 미남, 그리고 그가 소개한 발해 유민 유충정이었습니다. (...) 그렇게 막 서로 사주는 시간 동안 목종의 건강도 악화돼 가기 시작했습니다. 목종 12년, 1009년 봄에 궁궐에 불이 났는데 이를 아예 김치양이 목종을 죽이려 했다고 하기도 합니다. 목종의 총애(...)를 받은 유행간, 유충정은 그들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그들대로 참 잘 노는 상황, 목종은 한 가지 결단을 합니다. 

3. 강조
목종의 몸은 악화돼 갔고, 신하들도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그 때 그의 걱정은 하나였습니다. 측근을 다 물리친 후 채충순을 혼자 몰래 부른 목종은 두 가지 봉서를 건네줍니다. 하나는 유충정이 올린, 김치양의 세도가 극에 달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량군 왕순이 간사한 무리들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거였죠. 목종은 그에게 이렇게 말 합니다.

"짐의 병이 점차 위독해져서 머지않아 죽게 되었는데, 태조의 손자는 오직 대량군 만이 남아 있다. 경과 최항은 평소 충의를 다하고 있으니,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 대량군을 보좌하여 사직이 다른 성씨에게 옮겨 가지 않도록 하라"

죽음을 목전에 둔 목종, 필요한 건 대량군이 왕이 되는 걸 호위해 줄 힘이었습니다. 채충순, 최항 등과의 의논에서 나온 결론은 서북 도순검사 강조였습니다. 패착이었겠죠? (...)

천추태후 측은 이 사실을 알고 강조에게 가는 연락을 끊으려 했지만, 결국 성공합니다. 이에 강조는 호위를 위해 개성으로 출발하는데, 중간에 위종정과 최창증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이렇게 말 했죠.

"임금께서 병환이 위독하시어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 태후가 치양과 함께 사직을 빼앗으려 모의하고 있다. 그런데 공이 밖에 있어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있으므로 혹시 자신을 따르지 않을까 두려워 왕명을 위조하여 불러들이니, 족하는 빨리 본도로 돌아가서 크게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보호하고 자신도 보전하시오.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되오"

뒤에 보면 이들이 강조를 부추겼거나 아예 모사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때부터 강조는 "목종이 죽었다"고 간주하고 일을 벌이거든요. 강조의 아버지도 자기 종을 중으로 꾸며서 왕이 죽었다고 알리게 했습니다. 결국 강조는 5000명을 긁어모읍니다. 문제는...

목종은 아직 살아 있었다는 것이죠. -_-; 개경이 그리 멀지 않은 황해도 평산, 강조는 "한참 동안 기운을 잃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체 뭔 생각을 했을지 모르는 시간 후, 그는 한 가지 결정을 합니다.

4. 정변
강조는 아무래도 반역을 저지른데다 2차 여요전쟁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에 그리 강조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2차보다 3차가 더 강조되니까 강조가 강조될 순 없죠 (...) 그래서 좀 얼렁뚱땅 넘어가는 면이 있지만, 사실 보면 잘 이해가 안 갑니다. 목종의 명령으로 호위를 위해 왔는데, 정작 그 목종을 갈아치우는 결정을 하게 되는 겁니다.

애초에 그가 목종이 죽은 걸로 잘못 알았던 건지, 애초에 목종까지도 갈아치울 생각으로 온 건지도 애매합니다. -_-; 여기에 천추태후에 대한 게 왜곡됐는가까지 따지면 정말 알 수 없죠. 뭐 그래도 여기서 이 사람을 대입시키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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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명령을 받고 왔는데 십상시고 영제고 다 갈아치웠던 동탁이죠.

추측이 가능한 건 이 정도입니다. -_-a 

아무튼 그는 김치양 세력을 축출하고 목종과 천추태후를 몰아낸 후 대량군 왕순을 왕으로 앉힙니다. 이 때 숙청된 이가 40여명밖에 안 돼서 김치양이 정말 세력이 있긴 했나 하기도 합니다. 

양국공이 되어 쫓겨난 목종은 그래도 어머니 천추태후를 위해줬고, 새 왕을 잘 모시라면서 떠납니다. 하지만 강조는 그를 쫓아가 암살했구요. 천추태후는 그래도 어찌 목숨은 부지한 모양입니다만.

여요전쟁 같이 고려의 승리로 끝나는 전쟁에서 이런 강조의 정변을 강조할 순 없었을 겁니다. 거기다 강조가 결국 패했으니 더욱이 강조할 필요가 없었겠죠. 하지만 이 정변에서 크게 강조할 부분이 있습니다. 2차 여요전쟁의 명분이 바로 이거였거든요.

5. 현종
이렇게 왕순은 왕위에 올라 현종이 됩니다.

그의 인생 역시 참 막장이었습니다. -_-; 천추태후의 동생 헌정왕후도 경종의 왕비였습니다. 에 뭐 고려시대잖아요 -_-; 그녀는 경종이 죽자 왕륜사에 머뭅니다. 헌데 꿈을 꿨는데 소변이 나라 안에 흘러 넘쳐 은銀 바다가 됐다고 하죠. (...) 점을 치니 "아들이 왕이 될 운명"이라 합니다. 어찌 과부가 아들을 낳느냐고 무시했는데, 이 때 왕건의 여덟째 아들 왕욱이 접근합니다. 후에 안종으로 추증되죠. 

성종은 이를 알고 왕욱을 멀리 유배하고 그녀도 집으로 돌아가는데, 집 앞에서 낳은 게 현종이었습니다. -_-;; 대체 이건;;; 그 직후 그녀는 죽었고, 현종은 이렇게 사생아가 되어 끈 떨어진 신세가 되었죠. 하지만 이보다 더 계승 순위가 높은 인물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그도 왕건의 직계 혈통이었으니까요. 뭐 어쩌면 천추태후가 그를 죽이려 했던 것까진 사실이었는데, 목종이 죽을 것 같자 그가 뒤에서 공작을 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출생에다 천추태후에게 목숨을 위협 받았던 삶, 강조의 정변을 통해 허수아비 임금이 된 상황까지... 딱히 좋은 임금이 나올 상황이 아니죠. 

하지만 역사는 모르는 거니까요 :D
출처 지금은 눈시BBver.3 아니 눈시BBand 시던가요? PGR21의 작성 당시에는 눈시BBver.2 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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