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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군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
게시물ID : history_209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1
조회수 : 169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5/24 17:32:25
로마군은 요세푸스의 공격에 화가 치밀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온갖 만행을 자행하였다. 그들은 평지의 마을들을 방화하고 들판에 있는 가축들을 잡아가는가 하면, 전쟁이 능력이 있는 유대인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고 약한 자들은 포로로 잡아갔다. 이에 전 갈릴리 지역은 온통 피바다와 불바다가 되고 말았다. 갈릴리에서는 저질러지지 않은 불행과 비극이 없을 정도로 온갖 불행과 비극이 만연했다. 그리하여 갈릴리인들이 피할 피신처라고는 요세푸스가 성벽을 쌓아 요새화한 도시들밖에 없었다. (302 페이지)
 
 
 
 
 
베스파시안은 가다라에 입성하자마자 모든 젊은이들을 하나도 남겨 놓지 않고, 모조리 학살하였다. 로마인들은 유대국에 원한을 품고 있었고 특히 케스티우스의 참패로 인한 적개심이 한창 불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연령에 관계 없이 닥치는 대로 학살한 것이었다. 베스파시안은 가다라뿐 아니라 시 주위의 마을들과 촌락들을 모두 불살랐다. 이들 마을 중 일부 마을은 주민들이 없었으나 일부 마을에는 주민들이 있었다. 베스파시안은 이들 주민들을 생포하여 전쟁 포로로 잡아갔다. (311 페이지)
 
 
베스파시안은 타리케아 원주민들과 외부인들을 구별하기 위해, 타리케아에 재판정을 설치하였다. 전쟁을 일으킨 것은 외부인들이 주동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베스파시안은 부관들과 함께 타리케아의 원주민들을 살려줄 것인가의 여부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관들은 이같이 그들의 의견을 개진하였다. "그들을 살려주는 것은 장군께 하등의 유익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을 해방시키면 아마 그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적당한 거주지조차 박탈당한 그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들은 도주한 자들을 선동해 로마에 다시 반기를 들 것입니다."
이에 베스파시안은 그들을 석방시키면 오히려 반기를 들고 대항해 올 것이라는 부관들의 말에 수긍을 하고 그들을 살려주지 않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러나 베스파시안은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죽여야 할지 걱정이었다. 베스파시안은 이들을 살해할 경우 유대인들이 모두 적으로 돌아설까 두려웠다. 살려 달라고 애원한 자들을 무참히 살해한다면 온건한 유대인들도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신변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고 공적으로 약속을 해놓고서는 이제 와서 약속을 번복하자니 베스파시안의 마음도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베스파시안의 측근들은 그야말로 막무가내였다. "유대인들을 해하는 것은 그 어떤 행위라도 불경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당위와 이익이 상충될 때는 이익을 앞세우셔야 할 것입니다." 이에 베스파시안은 측근들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막연하게 허락하였다. 그 후 베스파시안은 측근들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막연하게 허락하였다.
그 후 베스파시안은 유대인 포로들에게 티베리아스로 이르는 길로만 가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그들은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줄로만 생각하고 재산을 챙겨서 허락된 길로만 나아갔다. 로마군은 티베리아스로 이르는 도로를 장악하고 철저히 감시하여 유대인 포로들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는 유대인 포로들을 티베리아스에 완전히 가두었다. 그후 베스파시안이 티베리아스로 왔다. 베스파시안은 유대인 포로들을 경기장에 모이게 한 다음 병사들을 시켜 노인들과 쓸모없는 자들을 살해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1200명이나 되는 노인들과 쓸모없는 자들이 로마군에게 살해되었다. 베스파시안은 건장한 청년들 가운데서 튼튼하게 생긴 자들만 6천 명을 골라 네로 황제에게 보내 굴착 공사의 인부로 쓰게 했다. 베스파시안은 네로 황제에게 보낸 인부와 아그립바 왕에게 선물로 준 청년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30400명의 청년들은 노예로 팔았다. (363~365 페이지)
 
(주: 비록 베스파시안이 마지못해 유대인을 학살하기는 했으나 베스파시안의 이 행동은 유대와 로마와의 전쟁 중 그가 취한 행동 가운데 가장 잔인하고 야만스러운 행동이었다. 포로의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공적으로 약속까지 했으며 이 포로들은 로마에 반기를 든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선량한 백성들임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무참한 짓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티투스는 자신의 부재 중에 로마군이 당한 패배에 분노하여 정예 기병 200명과 약간의 보병들을 선발하여 소리없이 시내로 진입하였다.
성채로 피신하다가 제지당한 많은 주민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로마 병사들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이에 중상을 당한 이들의 신음 소리가 곳곳에서 크게 들렸으며, 피가 도시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하수구처럼 흘러내렸다. (378 페이지)
 
 
로마군은 유대인이 채 수비할 겨를도 주지 않고 공격을 가해 그들을 살해했으며, 투항하려고 하는 자들까지도 닥치는 대로 죽였다. 그 전에 일차 진입에서 당한 패배를 생각하고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에 대해 더욱 분개심을 가지고 마구 학살하였다. 이에  사방으로 포위를 당한 유대인들은 달아날 생각을 버리고 처자식들을 먼저 절벽 아래 계곡으로 밀어 던진 다음, 자신도 그 아래로 몸을 던졌다. 결국 아그립바 왕의 군대 장관이었던 유력 인사 아키무스의 아들인 필립과 그의 두 딸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이 그나마 목숨을 건진 것은 로마군이 시를 함락시킬 때, 로마군의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로마군은 이들을 제외하고는 어린 아이들까지도 살려두지 않았다. 로마군은 심지어 일부 어린 아이들은 성채 밖으로 집어 던져 살해하기까지 하였다. (379 페이지)
 
 
 
한 시리아계 탈주자가 유대인들의 배설물에서 금화를 찾아내다가 잡힌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로마 진영에는 유대인 탈주자들이 금화를 잔뜩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게 되었다. 이에 시리아인들과 아라비아인들은 살려달라고 투항하러 온 유대인 탈주자들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단 하룻밤 사이에 무려 2천 명의 유대인 탈주자들이 죽음을 당하였다.
티투스는 일부 로마 병사들도 이같은 사악한 행동을 저질렀다는 보고를 받고 분노한 것이었다. 그러나 티투스가 중형에 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음에도 탈주자들의 배를 가르는 일은 은밀하게 자행되었다. 그리하여 탈주했던 많은 유대인들도 이같은 만행에 겁을 집어먹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에 이르렀다. (538~540 페이지) 
출처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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