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이 유명한 질문은 아마도 '역사'를 공부하는 모든 사람이라면 안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질문일 것이다. 여기에는 수도 없이 많은 답이 있음에 이견이 없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은 특정한 '틀'에 기준해서 '역사'를 인식하곤 한다. 그 틀은 너무나도 세련되고 합리적인 틀들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곤 한다. 제작자들의 이름은 듣기만 해도 쟁쟁한 이름들 뿐이다. 랑케, 마르크스, E.H 카, 하이데거, 헤겔, 쿤 등등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20세기를 살다간, 우리가 잘 모르는 또다른 '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라인하르트 코젤렉이라는 독일의 한 역사가가 만든 '개념사'이다.
개념사(Conceptual History). 너무 새로운 디자인이라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개념을 통해서 역사를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여태까지 틀을 만들어왔던 사람들의 에티켓과 사교성을 묻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의 '개념'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찾는 개념은 '역사'라는 단어, 그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그 특정할 수 없는 뜻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뜻을 내포한 단어와 그 뜻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면서 역사에 영향을 끼치는 지, 그때 그 사람들의 의식(mentalite) 안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그렇다. 마르크스가 딱 싫어하는 디자인의 제품을 우리는 찾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힐끔보고 지나친다면 현명한 소비자가 아니다.
19세기를 전후해서 랑케의 실증사학에 실증이 난 사학자들이 '문화'의 측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때 '문화'는 교양인이 향유하던 그런 '예술'작품들에 의존해서 당대 사람들이 마음(mentalite)을 이해하고자 했던 호이징거나 부르크하르트 등의 학자들에 의해서 진행된다.(사실 현재 부흥의 '문화사' 파트도 이 사람들과 비슷한 것을 쏟아내고 있다. 문화-예술 이라고 통칭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문화'의 의미를 사용한다.) 20세기가 되면서 좀 더 까다로운 학자들은 기존에 문화사가 제공하는 인식의 '틀'이 너무나도 갑갑하게 느끼게 되었다. 문화라는 것은 '예술적'이고 '고급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야기, 우리가 생활하는 방식 그 자체로써 삶의 총체였다.(민속촌의 문화체험관 같은 곳에서의 '문화'는 이러한 의미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발달한 것이 바로 '신 문화사(New Cultural History)'이다. 그야말로 2G에서 3G로의 개혁이었다. 근본적인 의미에서부터 새롭게 문화를 재조명하면서 신 문화사는 새롭게 거듭났다.
그러나 세계는 한가롭게 민속체험이나 즐길 여유가 없었다. 신문화사가 들에는 미안하지만 격정의 세계에서 문화사는 언제나 비주류였다. 새로 거듭난 신문화사는 더더욱 소수 역사 취향자(That's gay)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사의 계보를 더 집중적으로 바라본 사람이 있었다. 바로 라인하르트 코젤렉이었다.
그는 역사를 움직이는 '의식적' 동인에서 좀 더 심층적으로 파고 들어가서 그 '의식'을 구성하는 '개념'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했다. 베버(M. Webber)에 따르면 '문화'는 '의미의 그물망(Network of meaning)'이라고 했다. 문화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의미가 다른 의미와 어떤 관계에서 상호작용을 하면서 현실의 차이를 나타내는 지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눈을 깜빡이는 소년 A,B, C가 찍힌 사진이 있다. 겉보기에는 모두 눈을 깜빡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A와 B가 서로 밀담을 하는 사진을 본 후에 다시 원래 사진을 들여다보자. A와 B는 모종의 약속의 증표로써 눈을 깜빡이고 있음을 알 수 잇다. 그러면 C는? C는 왕따일지도 모른다. 친구가 하니까 따라한 슬픈 영혼일지도 모른다.(학교 폭력을 추방합시다.) 그러나 또 다른 사진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 인사를 하면서 눈을 깜빡이고 있다. 놀랍게도 C는 그 두 사람과 같은 옷을 입고 있다. C는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원래 사진을 바라보자. 그것은 그냥 윙크를 하고 있는 세명의 소년일 뿐이다.(어때! 마르크스 한방 먹었지-코젤렉. 뭐래 부르주아새끼가-마르크스)
하나의 의미는 복합적으로 다른 의미들과 상호작용을 하고 이를 통해 '문화', 즉 우리의 삶을 구성해나간다.이러한 '의미'는 결코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정의되거나 함축될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은 사진 속의 소년은 모두 "윙크를 하고 있을 뿐이다." 라고 말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들은 약속을 하고 있고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어떤 문맥(Context)에 따라서 같은 '윙크'도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결국 '윙크' 그 자체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윙크'를 가리켜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개념은 복합적이여야하고 다양한 의미를 가지면서 모호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모호하다고 해서, 복합적이라고 해서,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고 해서 그 개념이 사회 구성원들로 부터 거부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 구성원들은 그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에, 복합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더더욱 많이, 자주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개념은 사회에서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서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또 바뀐 현실로부터 영향을 받아 그 의미에 또다른 의미를 추가하면서 지속적으로 사회와 상호작용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란 바로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