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위 출처로 기반으로한 재구성하였을 먼저 밝힙니다.
식민지 근대화가 한국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긴 합니다. 그 이유는 경로의존의법칙이라고 하는데 한국가가 망하고 새로운 국가가 세워진다고 한들 이전 국가의 정책, 구조 등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한국의 경우 생각보다 꽤나 크게 영향을 미치는 데 대부분의 관리가 일제강점기 관료 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긍정적으로 미쳤나 이것을 따져볼 필요가 있죠. 먼저 새마을 운동이 한국의 독자적 정책이라고 알고 계신분이 많을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논문 등을 살펴보면 새마을 운동 또한 경로의존의 법칙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운동과 새마을 운동 조직표입니다. 아래는 제가 과제발표하느라 정리해둔 ppt 일부입니다.
보면 이름만 바뀌었을 뿐 전반적 조직구성은 별반 다를게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모범청년, 새마을 지도자를 뽑는 것도 똑같죠.
빨간선 기준 왼쪽은 진흥운동에 필요한 모범청년에 관한 기사 오른쪽은 새마을운동 지도자에 관한 기사입니다. 이걸 보면 별반 농촌진흥운동과 다를게 없어보입니다. 그리고 위 두 정책은 극심한 불황시기에(30년대 세계적 경제불황, 70년대 한국농촌빈곤화심화) 이루어졌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내용이 있지만 글이 길어지므로 결과를 살펴본다면...
위는 농촌진흥운동의 결과이고 밑은 새마을운동에 관한 결과내용입니다.
결과만 본다면 두 정책은 어느 정도 실효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으나 그 목적성을 살펴보자면 일제는 내선의 융화, 악한 사상의 시정과 같은 정신적인 부분도 강조하였고 새마을 운동은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정신적인 면을 강조함과 동시에 일시적으로 농가 불만을 잠재움으로써 국가기반을 다지려는 사업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정신적인 면을 강조한다라... 이것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덧붙여 조선총독부의 기록관리 관행 또한 이름만 바뀐채 1961년 미국식 사무관리 제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한국정부는 그대로 답습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일제 강점기시절 기록관리관행은 은폐, 왜곡, 소각 등이 빈번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당시 기록관리의 특징은 공개나 이용의 관점이 배제되어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식민지 근대화가 한국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보아야할 문제입니다.
출처 |
양영환, 1930년대 조선총독부의 농촌진흥운동
박섭, 1930년대 초반의 농업 불황과 농촌 진흥 운동
김경아, 마을운동 해외전수 활성화를 위한 과제에 관한 연구
왕연 풍덕마을 새마을운동의 추진주체와 조직기반
기록관리론, 한국기록관리학회
http://blog.naver.com/ochacure/701305326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