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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냉대에 결국... 사할린 '잔혹사'는 현재형
게시물ID : history_208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ckk
추천 : 7
조회수 : 79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5/18 08:00:50
강제 이주와 고된 노동...이분들이 착취당한 임금은 일본 우정성이 확인한 액수만 1억8300만 엔으로, 
현재가치로 따지면 약 4조4506억 원...

일본의 패색이 짙던 당시,한인들 상대로 당시 거주 인구절반이 살육된  일본넘들의  사할린의 '가미시스카 학살사건'과 '미즈호 학살사건'...

해방이 된 지 70년이고 소련의 국경이 열린 지도 25년이 흘렀는데 대한민국정부에선
영주귀국사업이랍시며 본인만 해당되고 자식은 못 데려가게 하는  비인도적인 사업 만 하는 현실... 

안타까운데 현재 한국에선 해결책이 계속 없을듯하네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06787&CMPT_CD=SEARCH

이승만의 냉대에 결국... 사할린 '잔혹사'는 현재형


기사 관련 사진
▲  브이코프 탄광마을에서 일하던 한인 노동자들.


...(중략)...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조선인에 대하여서는 일본 당국이 조선인들을 일본 공민으로 간주하지 말 것을 공식 요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조선인은 무국적자로 소련에 영주하게 되었습니다." - 소련 적십자사 총재, <사할린>에서 재인용

나서야 할 한국 정부는 시간이 지나도 미적거렸다. 이승만 정권은 재외동포 전체에게 상당히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반공주의를 국시로 삼은 이승만 대통령은 재외동포의 본국 출입과 국내 정치 참여를 극히 제한했다. 그러다가 일본은 1951년, 사할린 한인들의 일본 국적을 박탈해버렸다.

그렇게 그들의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이 다시 시작됐다. 그 후로 이런저런 논의가 진행됐지만 어느 것 하나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었다. 최근 수년간 징용 1시대의 영구 귀국이 추진됐지만, 사할린 현지에 남은 후손과 생이별을 견딜 수 없어 결국 다시 돌아가거나, 귀국을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또다시 이산가족이 될 수는 없잖은가...(생략)..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06787&CMPT_CD=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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