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인 서재필 선생님은 20살때쯤 갑신정변에 가담을 하게 됩니다 명문가의 자제로써 개화파 인물들과 친했기 때문 인데요 아무튼 정변의 실패로 개화파인물들과 일본으로 망명하지만 일본에서 냉대를 하기 때문에 다시 미국으로 망명 하게 됩니다 박영효와 서광범이 미국으로 같이 가고 국내에 있던 가족들은 음독자살, 동생은 참형, 아 들은 굶어죽게 됩니다
아무튼 서재필 이라는 인물이 정말 대단했던게 그 힘든 미국생활에서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영 어공부를 하는데 학교를 다니게 되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게 되며 지금의 조지워싱턴대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공부 를 하게 됩니다 결국 의사면허를 취업하고 병원을 차리기도 하구 요
서재필은 갑오경장이후 누명이 벗겨지게 되었고 같이 망명했던 박영효가 일찍이 돌아가 관직에 진 출 했었는데 서재필에게 미국에서 다시 돌아올것을 권유해서 한국으로 오는데요 독립신문 창간, 독립협회 결성, 독립문을 세우는 데 일조하였지만 수구파인 정부와 러시아 일본측의 추방운동으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서재필은 필라델피아에서 일을 하던 도중 3.1운동 소식을 전해듣고 나서 한국선전 활동을 전개 했는데요 한국 문제를 세계에 알리는 등등 독립운동을 후원 하기 위한 한국친우회 조직을 합니다 하지만 본인의 돈으로만 이루어 졌던 활동이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다시 의학수업과 의료활동에 복귀할 수 밖에 없었고 또한 활동할 여력이 되지 못하여 참가가 어려워졌 죠
중간에 서재필 선생은 미군 장병검사 의무관으로 자원봉사를 하며 미국회로부터 공로훈장을 받고 광복 이후에는 고국으로 돌아와서 대통령 추대 연 명을 받았지만 본인은 미국인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수 없다며 거절을 합니다 또한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이 되는걸 보며 자신으로 인해서 정치적 소용돌이를 일으킬수 없 다 판단해 한국을 떠나십니다
갑신정변으로 인하여 망명을 가게 되었지만 미국에서 의사가 되신 그 노력역시도 박수받아 마 땅하다 생각하고 본인의 사비를 다 내어놓으면서 노력하신 모습 참 감사해야 할 것 같아요 서재필 선생님도 타지에서 혼자 얼마나 많은 노력 을 하셨는지 오늘 한번 다시 느끼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