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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에 대한 몇가지 생각
게시물ID : history_208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urelius
추천 : 1
조회수 : 1373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5/17 17:33:03


프랑스 혁명 관련해서 아래와 같은 쟁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죽어 마땅했었나?

A: 아니다, 그들은 꼭 죽어야만 할 도덕적 결함이나 공분을 살만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루이 16세는 우유부단하지만 평소에는 자상하고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이었고, 마리는 오스트리아 출신임에도 루이 재위 기간 동안 전혀 정치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2. 죽음을 피할 수는 있었나?

A: 아니다, 그들은 '왕'이었고 혁명의 성공을 위해 죽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3. 프랑스 혁명은 왜 과격화되었나?

A: 공포. 


이것이 해답이 될 거 같습니다. 


혁명을 일으킨 자들, 그리고 타도의 대상이 된 자들 모두 공포에 휩싸여있었습니다. 혁명세력은 자기네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자신들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마찬가지로 왕당파 귀족과 국왕 본인은 혁명파가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혁명을 지휘하던 이들조차 자신들이 충분히 '과격해지지 않으면' 본인들이 흥분해 있는 군중들에게 맞아 죽을 것이라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특히 외국군대가 프랑스를 향해 진군하고 있었고 지방의 왕당파 세력들은 봉기를 일으키고 또 해외로 망명한 귀족들은 혁명파를 모조리 처단해야한다고 외국군주들과 프랑스에 남아있는 귀족들을 열심히 설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혁명세력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과격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라파예트(인권선언을 작성한 바로 그 사람) 같은 온건한 귀족출신 혁명가조차 그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던 것이죠. 


국왕은 흥분한 군중과 과열된 혁명열기를 보면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생각했고, 당연히 그는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파리시민들은 국왕이 도주하면 국왕이 오스트리아군과 프로이센군과 함께 자신들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혁명의 소용돌이에 빠진 프랑스, 즉 전통적인 권위가 그 어떤 기능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시 말해 완전한 무정부 상태인 프랑스에 살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더 급진적이거나 또는 더 '힘'이 있어보이는 세력을 지지했고, 특정 세력이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려면 그만큼 또 다른 이들의 피를 흐르게 해야만 했습니다. 



4. 프랑스 혁명이 온건하게 흘러갈 기회는 있었나?

A: 딱 한번. 최초 라파예트가 인간권리선언을 작성하고 국왕에게 헌법에 대한 서약 (즉, 입헌군주제에 대한 서약)을 요청했을 때, 라파예트가 국정을 완전히 장악하고 그를 중심으로 제세력이 뭉쳤었다면....


라파예트는 미국독립전쟁 당시 조지 워싱턴과 함께 싸우면서 미국 독립에 큰 공을 세우고 프랑스 국내에 돌아와서도 무훈이 대단했던 군인으로, 당대 사람들에게 두 세계의 영웅(the hero of two worlds)라고 불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귀족출신임에도 굉장히 진보적이었고,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지했지만 프랑스에서는 입헌군주제 하의 민주주의를 추구했고 혁명세력과도 기존 구체제의 귀족들들 사이에서도 영향력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단 그의 유일한 문제는 지나치게 야심이 없었다는 것과 결단력이 부족했다는 것. 


혁명이 한번 터지기 시작하면 기존의 권위는 사라지게 되고 권력의 공백상태가 초래되면서 모두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그러한 혼란기에는 민첩하고 강인한 사람이 성공하게 됩니다. 


라파예트가 해야했던 일은 루이16세를 압박해서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 이외에 군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당분간 본인이 악역을 수행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과격파의 지도자들을 은밀히 제거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국가의 법적 구조를 탄탄하게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는 이상주의자였기 때문에 눈 앞의 소요 사태를 수습하고 국왕의 서약을 받아내자마자 군권을 모조리 내려놓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그래서 과격파들이 집권했을 때 그는 체포를 피해 외국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지요. 


5. 그 엄청난 피, 학살, 그리고 혼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혁명은 왜 위대한가?


A. 역사상 처음으로 평민들에 의해 기존의 권위가 완전히 박살나고 자유와 평등 이념을 동시에 추구한 세속적 국가가 탄생했기 때문. 


비록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긴 했지만, 교회의 권위와 귀족 그리고 국왕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유럽에서 아무 지위도 없는 일반 사람들이 감히 국왕과 귀족과 교회에 대드는 사건이 발생하고 나아가 국왕의 목을 자르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영국의 찰스는 어떻게보면 귀족간의 내전으로 죽은 것이었지만, 프랑스 혁명 당시의 국민공회는 유럽 역사상 최초로 일반 시민들이 장악했던 정부였습니다. 


당대 사람들에게는 정말 믿겨지지 않고 황당한 일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그만큼 미움을 받았고 유럽의 모든 왕국들을 적으로 돌리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유럽의 다른 수많은 민족들에게 자신들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불어넣은 사건이었고, 독일의 베토벤은 이를 기리며 영웅교향곡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비록 그 희망은 곧 실망으로 변하지만..)


일반인들도 정치에 참여하고 기존의 권위가 꼭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것을 일깨워준 것 하나만으로, 역사에 엄청난 충격을 가한 사건이었죠. 


정치사에 있어서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왕과 귀족들이 통치하는 것이 당연하고 통치의 정당성은 신이 부여한 신성한 권리라는 인식이 깨지게 된 사건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은 지금도 계속 역사의 위대한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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