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때의 승려들은 미쳐 날뛰었다. 일반인의 인상속에서 승려들은 원래 고통받는 중생을 구하고 어려운 사람을 구제해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원나라때 승려들은 전혀 딴판이었다. 당시 승려들은 마음대로 술마시고 술주정부리며, 부녀을 간음하고, 싸움질하고, 물건을 빼앗는등 온갖 나쁜 짓은 가리지 않았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근거있는 말인가? 당연하다. 아래에 예를 몇 개 들어보기로 한다:
첫째, 원나라 지대원년(1308년), 한 승려가 백성의 땔감과 말먹일 풀을 강제로 빼앗아 갔다. 그래서, 백성은 상도유수인 이벽에게 고소했다. 이벽이 사건을 조사하려하자, 그 승려는 제자와 무리들을 이끌고 나무몽둥이를 들고 관청에 침입해서, 막무가내로 이벽의 머리를 붙잡아 땅바닥에 쳐박았고, 머리를 때려서 피가 줄줄 흘렀다. 그리고 그를 붙잡아가서 며칠을 가둬둔 후에야 비로소 풀어주었다. 이벽은 화를 참지못하고 황제에게 글을 올렸다. 결과는? 원나라 무종은 그저 상징적으로 그 승려를 이틀간 가둬둔 후에 풀어주라고 명했다.
둘째, 또 한번은 승려 공가등 18명이 어느 왕비와 길에서 서로 비켜주지 않아서 싸움이 벌어졌다. 그들은 왕비를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 시종들이 급히 왕비를 구해낸 후에 이들이 함부로 왕비를 구타했다고 고발하면서, 중죄로 다스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공가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황제 어르신도 자기들이 수계를 해주었는데, 자잘한 왕비 하나를 때렸다고 해서 뭐가 어쨌다는 것이냐고 말하였다. 왕비가 이렇게 체면을 구기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황제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여러날이 지나도 황제로부터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왕비가 사람을 보내어서 알아보니, 원래 원무종이 조서를 하나 내렸는데, 그 내용은 "승려를 때린 자는 손을 자르고, 승려를 욕한 자는 혓바닥을 자르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황태자가 급히 간언하여 조서를 회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셋째, 더욱 심했던 일은 원태정2년(1325년), 한 승려가 금자 원부를 차고 수행원 100여명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수행원이 너무 많아서 관부의 역참에 모두 잘 수가 없어서, 민간인의 집까지 빼앗았다. 그뿐아니라 남자들은 모두 쫓아내고 부녀들을 간음했다. 그 승려가 가진 원부(圓符)는 원래 변방의 경보를 하는데 쓰는 것이었고, 아무나 마음대로 차고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승려는 마침 서대어사인 이창과 만났다. 그리하여 이창은 이 승려의 모든 행위를 황제에게 보고하였는데, 태정황제는 보고를 받고도 그냥 묻어두었다.
원나라때의 승려들은 왜 이렇게 미쳐날뛰었는가? 원인은 복잡하다면 복잡하고, 간단하다면 아주 간단하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들이 미친듯이 날뛸 수 있었던 것은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배경은 당연히 한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최고권력자 즉 황제였다. 황제가 누구인가? 바로 하늘이다. 하늘이 감싸주는데, 이 승려들이 쥐새끼처럼 골동도자기속을 파고들든지, 여우, 호랑이와 어울려 놀든지, 누가 감히 건드리겠는가? 이것이 바로 조정에 사람이 있으면 관직을 얻기 쉽고, 큰 나무 아래는 그늘이 시원하다는 것이다.
문제의 관건은 황제가 왜 그들의 배경이 되어주었느냐는 점이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세상에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은 없다고. 황제가 권력자이고, 최고권력자이긴 하지만, 그도 너에게 공짜 밥을 주지는 않는다. 그도 원가를 따지고, 이윤을 따진다. 사장이라고 하여 손해보는 거래를 하던가? 세상에 한쪽만 원해서는 거래가 될 수 없다.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리는 알고 있다. 원나라는 말등(馬背)에 타고 건립한 제국이라는 것을. 유목민족이 중원에 들어와서 직면한 최대의 도전은 더이상 예리한 창이나 칼이 아니라, 인심의 향배였다. 바로, 천하를 얻기는 쉬우나 천하를 다스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사람의 마음을 다독거리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불교의 작용은 바로 사람들에게 선한 행동을 하라고 하는 것에 있다.
황제들이 불교를 신봉한 것은 부처에게 보우를 받기 위한 것이고, 만백성이 굴복하고, 강산이 영원히 굳건하고, 자기가 영원히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빌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태정황제 예순테무르는 매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부처에게 절만 했다. 매번 불사를 할 때마다 그냥 와서 밥먹는 승려만 수만명이었고, 그들에게 내리는 돈이 수천이었다. 승려들을 황제의 스승으로 모셨기 때문에, 황제의 스승인 승려의 아래에는 대다수가 사공, 사도, 국공이라고 불렀고, 모두 금옥인장을 차고 다녔다. 그래서 그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두려운 것이 없었으며, 못할 짓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승려들도 그냥 염불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성종제때, 한 승려가 불사를 해서 황제에게 복을 빌었다. 어떻게 빌었던가? 두 가지 방법으로 했다. 하나는 범죄자를 불러서 황제와 황후의 옷을 입히고 황소가 끄는 차에 앉게 해서 궁문안을 천천히 가게 했다. 둘째는 직접 성종제에게 죄인을 석방해달라고 청했다. 이렇게 하여야 복을 부르고 재를 소멸시킨다고 하였다. 그래서, 돈있고 세력있는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승려들에게 뇌물을 주고 목숨을 구해달라고 청했다. 그래서, 어떤 죄인이든간에, 승려들이 해주기만 하면, 감옥에 들어간지 며칠되지 않아 바로 사면이 된다. 이런 기복방법은 나중에 거의 관례가 되었다. 이런 법제는 바로 승려들로 하여금 아무 짓이나 다 하도록 만들었는데, 그들이 미친듯이 날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이 그저 사심만 있으면 멍청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한다. 황제도 예외가 아니다. 백성들의 속담이 정말 맞는 말이다. 파리는 금이 가지않은 알은 쪼지 않는다고. 바로 이런 이치이다. 만일 원나라 황제들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승려들이 그 빈틈을 뚫고 들어갔겠는가? 어찌 그들에 의하여 무지한 어린아이처럼 가지고 놀는 대상이 되었겠는가? 승려들에게는 아무리 좋은 경전이 있더라도,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결국 그 경전을 잘못 읽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원인의 표면이다. 중국의 수천년문명사의 과정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바로 황제를 없애버렸다는 점이다. 음미할만한 것은 황제는 비록 100여년전에 끌어내려졌지만, 그러나, "한사람이 발언권을 가진 조정", "그저 윗사람의 말을 순종해야 한다" "유아독존" "독단전횡"등등은 황실가족의 특산품이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시장을 가지고 있다. 6,7백년전의 원나라에서는 이런 제품의 시장가격이 얼마일지는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원나라의 승려들이 왜 그리 미친듯이 날뛰었는가? 결국 대답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