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독립후 친일파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이승만 독재에 기생하다
그후에는 5.16 쿠테타 반란세력에 빌붙어
상해임시정부로부터 계승되어온 법통을 유린한후
대한민국역사를 날조하거나 숨김으로서 많은 역사적인 사실들이 감춰지거나 모르거나
헛갈리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인게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이고
독립후에는
같은 친일파였던 수꼴 보수내에서조차
대한민국역사를 빛낼 무공과 전적을 세운 분들에 대해서도 쿠테타나 반란에 동조하지 않았다거나
다른길을 걸었다는 이유로 그분들의 과는 그렇다 치더라도 공이 묻혀있는게 대한민국 현실입니다.
그중의 하나로 장도영 장군이야기를 하고싶습니다.
보통 역사를 모르는 분들은 장도영이누구야?
이럴분들이 대다수입니다
나이좀 드시거나 역사를 좀 아는 분들은 박정희의 5.16 군사반란당시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이었다정도만 아는편입니다.
좀 더 아는 분들은 그래도 박정희가 쿠테타후 이분을
초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해서 얼굴마담으로 악용하다 제거했다 정도..
국내포털1위인 네이버를 보죠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C%9E%A5%EB%8F%84%EC%98%81&os=729786
▲ 네이버 장도영 장군 인물검색 결과 네이버 장도영 장군 인물검색 결과 | |
ⓒ 네이버 |
네이버에 나온 고 장도영 장군에 대한 것은 매우 간략하지만 이게다일까?
의문이 들게합니다. 38살에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에 국방부장관에 이런걸 맡은
인물치곤 너무나 간략합니다.
위키 백과 사전을 검색해보면
http://ko.wikipedia.org/wiki/%EC%9E%A5%EB%8F%84%EC%98%81
이것을 봐도 장도영장군은
네이버 기록보단 자세하지만 그래도
한국 전쟁 중
1950년 한국 전쟁에 참전했고, 1950년 10월 육군제9사단장, 이후 제6사단장, 1952년 1월 육군제 1훈련소장, 1952년 7월 육군 소장으로 승진했다.
이런 간략한 애기밖에없다
하지만 궁금하지않은가?
1917년생인 박정희가 5.16 쿠테타 군반란 당시 44살의 나이로 고작 소장이었을때
이렇게 간략한 애기밖에없는 분이 어떻게
당시에 나이 38살에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에 국방부장관
등을 하며 쿠테타 이후 쿠테타세력이 초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해서 얼굴마담으로 내
세웠을까? 누구였기에? 어떤 인물이었기에?
무엇이 그를 그런 위치에 있게할수있었을까? 해서 자세히 보다 보니
http://ko.wikipedia.org/wiki/%EC%9E%A5%EB%8F%84%EC%98%81
6사단장이었다.
6사단이라면 6.25전쟁 이전에 편성된 부대 가운데 유일하게 현재까지도 초창기 편제를 유지해온 유일한 부대로서 서울 수복 이후 북진하여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 대통령에게 치열한 격전지였던 압록강 물을 떠서 드린걸로 가끔 예전에 tv에서 언급되던 부대 라 기억이 되서
혹시 이때 장도영이 6사단장으로 무슨 전공을 세웠나? 해서 6사단을 중심으로 찾아보니
여러기사들이 검색됩니다
http://www.kado.net/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416824
육군 6사단이 ~(중략)~국군 1개 사단이 중공군 3개 사단(2만 여명)에 달하는 병력과 주요장비를 격멸한 전투로 6·25전쟁사상 놀라운 대승으로 기록된다..(생략)..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91600209205007&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85-09-16&officeId=00020&pageNo=5&printNo=19679&publishType=00020
예전 동아일보에 다른분 회고록에 나오는 ...사살 1만7천명 포로2천..기록들..
http://blog.daum.net/pyjwns1243/435
..(중략)..
용문산전투는 반세기 전인 1951년 5월17일부터 21일까지 6사단 용문산연대 전장병이 결사항전에 돌입해 중공군 제63군 예하 3개 사단(2만여 명)을 격멸한 전투로 미 육군사관학교 전술교범에 사주방어의 성공사례로 기록되어있다.
..(중략)..
전적비 내부에는 국내 전적비로는 유일하게 작전중 산화한 장교 8명, 사병 322명, 종군자 2명 등 332명의 호국영령들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생략)..
재밌던 것은 검색가능한 이런저런 기사들에선 장도영 장군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 없습니다.
다시위키에서 용문산 전투를 검색하니 다음과 같은 것이 나왔습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C%9A%A9%EB%AC%B8%EC%82%B0_%EC%A0%84%ED%88%AC
용문산 전투(龍門山 戰鬪)는 한국전쟁 중 1951년 5월 17일 ~ 5월 21일까지 경기도 가평군 용문산에서 중공군과 대한민국 국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중략)..
추격5월 21일 새벽 중공군은 서둘러 퇴각을 하였다. 하지만 공이 국군에게 있었으로 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 6사단은(2,7,19연대)곧 바로 추격을 시작하였다. 가평과 춘천을 거쳐 화천 발전소까지 60여 km를 진격하며 중공군을 격퇴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국군은 큰 손실을 입었다. 그리고 중국군은 화천호에 이르렀는데, 이로 인해 퇴로가 막혔다. 6사단은 그대로 중공군의 후미를 들이쳤고, 그 결과 대부분 화천호에 수장되거나 6사단에의해 격멸당했다.
전투 후 6사단의 피해는 전사 107명, 부상 494명, 실종 33명이었고 중국군은 3개사단 2만명의 병력이 궤멸 하였으며(간혹 용문산대첩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전투의 승리를 계기로 UN군 및 국군은 대대적인 반격작전을 실행한다. 그리고 당시 사창리전투와 현리전투로 사기가 최악으로 떨어진 대한민국 국군의 사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시발점이 되었다. 중국인민지원군의 2차 춘계 대공세로 인해 벌어진 이 전투는 대한민국 6보병사단이 중국인민지원군을 궤멸시키는 대한민국의 대승으로 마무리되었다.
기사들에 따라 전사한 적군의 수는 다양하지만
고대전투사든 현대전투사든 그것도 초강대국 중국인민군을 상대로
수만명을 사살하고 수천명을 포로로 잡은 전투는 어떤 기준으로든
대첩이나 대승아닐까요? 참고로 6.25때 미군 전사사자 공식적으로 3만명입니다
중국 측 공식 자료는 중공군의 피해를
전사 11만5000명,
부상 22만1000명,
실종·포로 2만9000명으로 밝히고 있으나,
한국 전사편찬위원회 기록으로는
중공군 전사 18만4000명,
부상 71만6000명,
포로 3만1000명,
라고 하는데 어떤 기준으로든 용문산 전투에서 장도영장군의 6사단은 6.25기간
중공군 전체 전사자의 적게잡아 1/10~1/5 를 이 한 전투에서 거둔겁니다.
오늘날 젋은 세대들이 6.25 그러면 좀 알아봤자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정도밖에모르는현실에서 6.25당시 한국군의 이런 자랑스런 승리를 모르는 사람이 많은 현실에서 이런 대첩이 아직도 잘안알려진건은 의아할정도입니다.
일반인들이 그나마 접하기 쉬운
전쟁기념관 WWW사이트의
용문산전투 전투자료동영상 페이지에는
https://www.warmemo.or.kr/new/sub06/sub06_05.jsp?txtSearch=all&txtSearchText=&mode=view¬eid=8454&cpage=1
장도영장군 이라는 이름이 없이
한국전쟁 사상 최대의 전과를 올렸던 용문산지구 전투는 한국전쟁사에 승리의 금자탑으로 영원히 빛날 것이다 라며끝납니다
https://www.warmemo.or.kr/new/sub06/sub06_01.jsp
전쟁/군사정보 검색란에는 용문산 를 넣어봐도 검색되는 3건은 엉뚱한것이 나옵니다.
장도영 용문산 이런걸로 검색하다보면
메이저 언론에서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1787
라는 기사에는 장도영 이라는 이름은 나오지만
전쟁기념관엔 용문산 전투에서 사살된 중공군이 4944명으로 나온다. 한국군은 전사 26명, 부상 294명, 실종 74명으로 기록돼 있다.
라며 나오는게 다입니다. 그것도 오히려 굉장히 축소되어있습니다.
본인이 이렇게 계속 불과 64년전 6.25 기록들을 장도영장군 관련해서 검색한결과
정리하면
장도영 장군의 6.25당시 공적은 훗날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세력들이나 빌붙은
세력들중 몇몇을 빼곤 비교할수없는 역활을 하신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가 5.16세력에 의해 제거되었기때문에 공식적인 6.25관련 대한민국사에선
그관련 기록들이 많이 지워진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김대중 노무현때 5.16당시 박정희의 반대편에있던 분들에 대한 역사정리를했다면
당시 한나라당 유력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중상모략이라는 오해를 받을수도있었을겁니다.
하지만 이제 5.16 군사반란 주동자의 딸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상황에서 아버지시대에 지금의 대한민국을 위해 활동하셨던 많은분들의 공에 대해 다시 한번 제대로 된 역사적 사실 밝히기와 알리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장도영장군의 경우 교과서에서 6.25당시 전투중에 대한민국 국군의 자랑 스런 용문산전투를 알리고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그의 이런 전공이 5.16당시 그가 대한민국 군부최고직을 차지하고있던 배경임을 알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로 고 장도영 장군을 예를 들었지만
그뿐만 아니라 5.16당시 군사반란에 다른길을 걸었던 분들이 그전에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올리신 활동들에 대한 결과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다시 기록해야 할때라고 생각합니다.
그 일환으로 대한민국 아니 한민족전투사에 큰 전공을 세우신 고 장도영장군의 공에 대해
다시한번 대중의 관심을 받을수있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