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서씨의 기원은 단군시대(檀君時代) 예국(穢國) 군장(君長) 여수기(餘守己)라는 사람이 9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들에게 고을을 나누어 다스리게 한즉 선정을 베풀었다 하여, 그 공을 못 잊어 백성들이 "여러 사람이 고마움의 뜻을 표한다" 하여 중인변(衆人邊)을 부쳐 여(余)자를 서(徐)라고 고쳐 사성(賜姓)한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서국(徐國)는 단군 조선의 제후국이며 동이이다.
고대 중국은 이 서국(徐國)을 서이(徐夷)라 부른다.서언왕의 나라인데,기원전 1236년부터 기원전 512년까지 존속한 나라였다. 서언왕이 동이의 맹주가 되었고 이때 주나라는 스스로 천자국이라고 칭하기에는 부끄러운 존재에 불과하였던 것이 된다.단군 조선 21세 단군 소태(蘇台)와 23대 아홀 단군의 기록에 등장한다.
을유년 기원전 1196년 (또는1236)년 남후 검달(금달,今達)이 청구군(靑邱君)과 구려군(句麗君)과 주개(周愷)라는 곳에서 모여서 몽고리(蒙古里)의 군사와 함께 은나라를 정벌하였고 깊숙히 들어가 회대(淮岱)의 땅을 평정하였다. 제후들이 회대의 땅을 평정, 포고씨(蒲古氏)를 엄국(奄國), 영고씨(盈古氏)를 서국(徐國), 방고씨(邦古氏)를 회(淮)땅에 각각 봉하였다.
은나라 쇠퇴하였다.서국(徐國)은 기원전 1236년에 영고씨(寧古氏)를 봉한 나라로 기원전1236년부터 기원전 668년 제나라에 합병될 때까지 570년간 존속하였다. 기원전 680년경 초나라 문왕에게 한때 수도를 점령당하여 서산(徐山)으로 수많은 백성들과 피난하였다.
우리의 기억 속에 잊혀진 인물 서이족(徐夷族)의 지도자인 서언왕(徐偃王)은 중원 대륙에 진출한 동이족의 마지막 전성기를 구가했던 인물이다. 주목왕이 서이가 두려워 서언왕을 동이세력의 맹주로 인정한 것이며 서국의 제후국이 36개나 된다. [3]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따르면, 기자(箕子)의 40세 손이고 기씨조선(箕氏朝鮮)의 마지막 왕인 애왕(哀王) 기준(箕準)이 위만(衛滿)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뱃길로 남쪽으로 옮겨, 진(辰) 나라 북쪽 변방인 지금의 경기도 이천(利川) 땅인 서아성(徐阿城) 지방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지명을 따 성씨를 서씨(徐氏)라 하였다고 한다.[4]
한국의 성씨 가운데 기자(箕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성씨는 서씨 이외에도 청주 한씨(淸州韓氏)와 태원 선우씨(太原鮮于氏) 및 행주 기씨(幸州奇氏)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