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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의 여황제, 문가황제(文佳皇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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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3
조회수 : 141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5/11 11:26:09
중국역사상 유일한 여황제는 무측천(측천무후)라는데 역사학자들은 이의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반란군지도자로서 스스로 황제를 칭했던 여인에 대한 기록이 있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바로 당고종때 농민반란을 이끌었던 진석진(陳碩眞)이라는 여자인데, 그녀는 스스로 문가황제로 칭했다. 아쉽게도 그녀가 일으킨 농민반란은 1개월만에 진압되었다.
 
진석진(? - 653년). 여자. 목주치산현 사람. 653년 10월, 진석진은 정식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관부에 대항한다. 그녀는 당나라의 관료제도를 본떠 정권을 수립하는데, 장숙윤을 복야(僕射)에 임명하고, 각종 업무를 담당하게 한다. 그녀는 스스로 "문가황제"로 칭한다. 중국역사상 농민반란에 참여한 여자는 적지 않지만 스스로 영수가 되고, 스스로 황제를 칭했던 여자는 진석진 한 명이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매력이 있다.
 
진석진은 반란을 일으킨 후, 현지 농민의 지지를 받고, 청계사람인 장보는 무리를 이끌고 가담한다. 짧은 시간내에 반란군은 수만명에 이르렀다. 당나라 조정은 매우 조급해져서 급히 소탕하고자 하며 반란이 일어난 지역을 봉쇄하였다.
 
진석진의 반란군은 목주의 여러개 현을 점령하는데, 동로, 우잠등지이다. 이후 진석진은 병사를 이끌고 안휘성 경내로 들어가서 흠주를 공격한다. 당군이 완강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함락시키지 못하고 물러난다.
 
흠주에서 물러난 후, 진석진은 전략을 바꾸어, 병사를 나누어 유격전을 펼친다. 진석진은 동문보에게 4천의 병사를 이끌고 무주를 치도록 한다. 동문보가 무주에 들어간 후 관군에 발각된다. 이 때 무주자사를 맡고 있던 인물은 최의현인데, 그는 수나라 말기부터 활약한 인물로 먼저 이밀에게 의탁했으나 중용받지 못하자 다시 이연에게 의탁하여 당나라를 건립하는데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에 의하여 동문보의 부대는 무주에서 곤란을 겪자, 진석진은 농민군 수만명을 이끌고 무주로 간다. 농민군은 수적으로는 우세하였으나 반란을 일으킨지 겨우 1개월밖에 되지 않아 제대로 훈련이 되었을 리 없고, 전투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후 쌍방의 대치중에 양주자사인 방인유의 부대가 지원을 옴에 따라 진석진의 부대는 1만명이 포로가 되는 외에 나머지는 모두 전사하고 만다. 진석진과 장숙윤은 전투중에 포로가 되어 나중에 처결당한다.
 
그녀의 반라는 비록 수만명에 이르렀지만, 점령한 지역은 절서, 환남의 일부지방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녀가 미친 영향은 지대하였다. 첫째, 그녀는 황제는 '진명천자'라는 미신을 깨버렸고, 용감하게 당나라 이씨정권에 대항하여 스스로 황제를 칭하였다. 둘째는 그녀는 여성해방의 기치를 내걸고 여자들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라를 다스리는데 참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진석진은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라고도 볼 수 있다.
출처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4dwc&articleno=8517244&maxNo=10377694&minNo=5966668&maxDt=20061103203553&minDt=20051229201745&maxListNo=13265696&minListNo=10709963&maxListDt=20071102184201&minListDt=20061213023209&currentPage=9&beforePage=8&categoryId=347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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