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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평생 살겠다고 결심한 계기 : 산불땜에 대피한 썰
게시물ID : emigration_20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Kimchibutt
추천 : 19
조회수 : 2291회
댓글수 : 34개
등록시간 : 2016/09/23 13:25:01
1.jpg

< 당시 실제 산불 사진 >



처음 캐나다 입국하는 순간부터 캐나다가 좋았고 이곳에서 계속 살고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평생 살겠다고 완전히 100% 마음 먹은 계기는 따로 있음.


본인은 당시 휴가를 맞아 여자친구랑 여친 부모님 집에 방문하고 있던 중이였는데

여긴 여름에 굉장히 건조한 도시임. 그래서 매년 산불이 나는데 나도 그 산불을 피해갈수 없었음


밤 10시쯤 엑스박스를 즐기고 있던 중이였는데 밖에서 바람이 엄청 많이 부는거였음

날씨가 왜이러나 싶었는데 갑자기 정전. 우리집만 그런게 아니라 밖을 보니 옆집도 다 정전인듯 했음.

공유기도 꺼져서 와이파이도 안되고 심심해서 촛불 켜놓고 강아지랑 노는데 강아지가 자꾸 낑낑거리면서 뒷마당을 향해 짖고 문을 긁는거임

뒷마당에다가 배변을 하라고 훈련이 돼서 똥오줌 마려우면 하는 행동인데 똥오줌은 이미 20분전에 다 쌌음

문열어주기도 귀찮고 해서 냅두고 잠이나 자라고 하고 나도 그냥 자려고 방에 올라가서 누워 눈을 감고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엄청 큰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거임 싸이렌 불빛도 창문을 막 때림


걍 아 뭔일이 났구나 했는데 2분 이따가 또 다른 사이렌 소리가 남ㅋㅋ

평소에 들리던 사이렌 소리랑 좀 다른거 같기도 하고 해서 뭔가 무서워지는데 강아지가 사이렌 소리 때문에 막 왈왈댐

갑자기 좀 전에 강아지가 문 긁던거 생각나면서 뭔가 불길한 느낌이 싹 남

거실 나가서 창문으로 밖을 보니까 진짜 하늘이 새빨갛고 까만 연기가 자욱함. 얼마나 가까운지 불꽃을 볼수 있을정도였음.



2.jpg

< 당시 본인이 찍은 사진 >



일단 대피해야겠다 싶어서 자고있던 여자친구랑 여친 동생이랑 부모님 다 깨우고 있는데

누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쾅쾅쾅 두드림. 대답이 늦으니까 후레쉬를 창문으로 쏘면서 문을 부술기세로 두드림.

문 열어보니까 소방관.


'옆에 xx공원에 불이 났으니 중요한 물건만 챙겨서 최대한 빨리 대피해라 (evacuate) pet도 깜빡하지 말고 다 데려가라'

'<- 이쪽은 불이 났으니 당연히 못나가고 -> 이쪽으로 가야 한다. xx리조트 알지? 거기로 가면 된다'

'리조트 지나서 xx시 방향으로는 못나간다. 나무가 쓰러져서 길이 막혔다 리조트에서 대기하고 그쪽에서 이후 상황을 알려주겠다"


진짜 무서울정도로 단호하게 대피하라고 함. 그리고 소방관은 바로 뛰어서 다음집으로 이동.

xx공원은 집에서 길따라 걸어서 5분거리에 있는 공원으로 만약 거기에 불이 났다면 우리집까지 위험한 상황임.

암튼 우리는 갖고온 물건들 전부 캐리어에 담아서 차에 싣고

여친 아버님이 트레일러 (한국에서 캠핑카라고 부르는 그것)에 트럭을 연결하는것을 도와드렸음.



3.jpg

< 설명을 돕기 위한 사진 >



저렇게 생겼는데 이걸 평소엔 연결을 안해놓음. 글고 고리를 제대로 맞춰야해서 다른사람이 도와줘야됨.

트레일러 연결이 끝나고 각자 자기 차 타고 출발함. 리조트까지 거리는 15분


나중에 알고보니 대피하는것도 단계가 있는데 불난곳과의 거리, 위험성을 따져서

'30분안에 나가라', '5분줄테니 중요한 것만 챙겨서 대피해라', '당장 몸만 나와라' 이렇게 대피 강도가 있다고 함.


우리는 5분짜리 경고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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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조트 가는 길, 본인이 찍은 사진 >



사진에서 보듯이 차선이 하나인 길이고 길따라 있는 집들 전부가 대피하느라 차가 엄청 막혔음.

게다가 캐나다는 대도시 밖의 대부분 집이 1인 1차. 더 심한 상황.

우리만해도 한집에서 차 4대가 나왔고 못갖고나온 1대는 집에서 불탈지도 모른채 있었음ㅋㅋ

근데 놀라웠던게 다들 날카로울텐데 그 와중에 안전거리 칼같이 유지하고 (사진 보면 알겠지만) 경적 한번 안울림.

교통 정리하던 경찰이나 소방관도 없었음.


리조트에 도착하니까 11시쯤 됐는데 리조트 사장이 나와서 직접 주차정리 하고있음. ㅋㅋㅋㅋㅋ

주차하면 연회장으로 가라, 거기서 안내 다 하겠다 라는 말에 차 대고 연회장으로 감.

연회장 가니까 리조트 직원들은 전부 자다가 나와가지고 머리 까치집 하고 일하고 있음


직원들도 솔직히 짜증날법 한데 묵묵히 일함.

디저트류랑 과일류, 음료수 준비해서 바에 놔두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함.

사람뿐아니라 개, 고양이 음식까지 따로 준비해서 개, 고양이들 나눠줌. 심지어 이 리조트는 동물 허용 안하는 리조트였음.

애기들이 겁에 질려있을까봐 색칠공부 인쇄해서 할수있게 색연필이랑 같이 놔두기까지 하고 티비도 지역 채널 맞춰서 상황 볼수있게끔 해줌.

이러니까 그 수많은 사람들이 침착하고 조용하게 있음.. 자기 집이 불탈 상황인데도 고성내는 사람 한명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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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조트에서 제공한 포니 색칠 공부.. >



여기서 엄청 감동 받음. 아무리 리조트가 나중에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다 해도

자기가 처한 일인 마냥 그렇게 정성스럽게 챙겨주고 심지어 개 고양이까지 챙겨주는게 말이 됨??

시민의식도 진짜 멋있었음. 산불이 자기 뒷꽁무니를 쫓아오고 있는데 차간 안전거리 유지하고 경적도 안울림

자기 세간이 불타게 생겼는데도 소리한번 안지르고 침착함. 개 있는 사람들은 다들 목줄 짧게 꽉 잡고 개 관리함.


곧 경찰이 와서 상황을 전달함.

'산불 원인은 아직 추정중이고 공원이 홀라당 탔다. 불이 집쪽으로 번지진 않았지만 아직 위험하므로 집에는 못돌아 간다'

'<-이쪽길은 산불이 완벽히 진화될때까지 닫을 예정이고 쓰러진 나무 때문에 막혔던 -> 길은 이제 열렸으니 xx시로 나갈 사람은 나가도 된다'

'시내로 가고 싶으면 xx시쪽으로 해서 돌아가면 된다. 지낼곳이 있으면 그쪽으로 나가서 지내면 된다'

'이 홀에서 자고 싶으면 담요를 이따 제공할테니 그걸 써라.'

'리조트에서 지내고 싶다면 방을 예약해라. 단 방 정원을 남기면 안된다 꽉채워야한다. 노인이나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우선권을 갖는다.'

'보상 및 구제 절차는 아침에 리조트로 Emergency Social Services가 와서 진행 한다. 그러니 아침에는 리조트에 와야한다.'

'리조트에서 무료 아침식사 제공한다'


정말 이보다 깔끔한 대처가 있을수 있겠음??

저게 12시 30분쯤이였음.. 

길이 열렸으니 여친 아버지가 먼저 가서 적당한 공터에 트레일러를 세웠고 우리도 가서 트레일러에서 하룻밤을 지냄.

자는둥 마는둥 하면서 아침 7시가 됐고 우리는 트레일러는 두고 리조트에 감.


리조트에 가서 조식 먹고 나니까 Emergency Social Services에서 직원이 몇명 나와서 대략적인 상황 설명과 함께 자기들이 할 일을 말해줬음

'몇명의 사람이 어떤 이유로 집에 있었고 대피 과정에서 짐을 얼마나 챙겨나왔는지를 자세히 말해달라. 그럼 우리가 피해비용 산출해서 구제금을 지급한다.'

이게 대략적인 내용 이였음.


우리는 여친어머니가 대표로 가서

'거주자2, 방문자3, 개2 전부 대피해 나왔고 트레일러 델고 나와서 잘곳은 걱정없다. 차 1대는 못갖고나왔고 대충 옷가지만 챙겨 나왔다.'

'오늘 집에 못가면 시내에 있는 시누이(Sister in law)의 집에 가서 트레일러 전기랑 물 연결해가지고 지낼거다'

'일은 오늘은 못가고 내일부터 갈생각이다. 근데 일할때 쓰는 옷이랑 신발들을 못 갖고 나왔다.'

라고 얘기함 그러니까 월마트에서 쓸수있는 300불짜리 쿠폰을 주고

'이게 어제 오늘 너가 피해보는 금액이다. 가지고 월마트 가서 당장 필요한 식료품이랑 내일 일 갈때 쓸 옷, 신발을 사라' 라고 함

그리고 '오늘 집에 못돌아가면 피해 금액 산출해서 더 줄테니 시내에 xxx로 와라.' 라고 함.

그리고 '너 시누이 집에서 지낸 기간 계산해서 나중에 신고하면 시누이한테도 보상금이 돌아간다' 라고 함.

여친 어머니는 다음날 또 가서 200불짜리 쿠폰을 더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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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제 상담은 대략 이런 분위기 >



나중에 여친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구제금액이 좀 적게 나온거 같긴 하다 함. 옛날에는 더 나왔다고..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피해금액 산출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좀 많이 받았다는 느낌을 받았음.

작업화 하나 사고 작업복이랑 속옷몇개하고 식료품 사니까 다 쓰긴 했지만..


아마 트레일러가 없었으면 숙박비도 계산해서 나왔을것 같음.

피해입은거 뻥튀기 해서 말하면 어떻게 되나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는데...

물어보진 않았지만.. 사법처리 되지 않을까 싶음ㅋㅋ


돈을 받고 여친 고모집으로 이동. 트레일러를 드라이브웨이에 주차하고 고모집에서 물이랑 전기 따서 연결하고 여친 부모님은 거기서 지냄.

나랑 여친이랑 여친동생은 고모 집 안에서 지냄.

이틀 뒤에 산불이 진화돼서 돌아 갈 수 있었는데 그동안 잔디깎기 등등 귀찮은 가사일좀 도와드리고 우린 집에 돌아왔음.

고모는 신청하면 돈 받을수 있는데 그냥 신청을 안했음. 

내가 뭐 얼마나 도와줬다고 걍 물이랑 전기 조금 쓴거고 그거 안받아도 살만한데 더 어려운 사람들 쓰게 두고 싶다'는게 이유

여친 아버님은 그걸 두고 '우리 누나가 늙어서 그런지 좀 멍청하다' 라고 평가ㅋㅋㅋㅋㅋ (남매간의 우애는 국적불문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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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불 후 실제 모습 >



산불의 원인은 강풍으로 인해 쓰러진 전봇대였음.

전봇대가 쓰러져서 정전이 난거였고 그 전봇대 때문에 불이 난거였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고 불탄 집도 없었지만 우리 옆집은 지붕이 까맣게 그을림.. 진짜 위험 할 뻔 했던 상황.


아무튼 난 이 산불로 캐나다에 엄청나게 큰 감명을 받음.

빠르고 정확한 대처로 시민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경찰과 소방관.

힘들고 짜증나는 상황에서도 질서를 지키고 남들을 배려하던 시민들의 공동체 정신

지역사회에 봉사를 마다하지 않던 리조트. 바로 몇시간 이 후 이어지는 정부의 빠른 보상과 대처.


물론 지난 수년간 수많은 여러번의 산불로 단련이 되어있는 시스템이고 처음엔 물론 어설펐을거임

근데 산불 뿐만이 아니라 캐나다 정부가 평소에 여러 분야에 걸쳐서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니 어설퍼도 시민들이 신뢰를 했던거고

정부도 그에 부응해 성장해서 이제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음.

나중에 이런 상황이 또 닥친다면 정부가 조금 어설프게 대처를 하더라도 믿고 따를수 있을것 같음.


최근 한국 지진을 보면서 나는 이 사건이 떠올렸음. 내가 시간이 지난 지금 이야기를 쓰는것도 그 이유.

한국은 지진이 자주 나는 나라가 아니고 그 때문에 지진 관리 대책이 허술할수도 있음.

다만 그 사후에 대처가 굉장히 미흡했고 전혀 바뀌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건 정부가 정말 한심한거임.

시민들이 정부를 믿고 따를면 정부가 평소에 잘해야되고 실수를 하더라도 바꾸는 모습을 보여줘야 함. 그게 가장 먼저임.


아무튼 난 이 사건으로 믿고 의지할수 있는 정부가 뭔지 알게 됐고

난 이 이후로 무슨일이 있어도 캐나다에서 평생 살겠다고 결심하게 됨.

출처 http://kimchibutt.tistory.com/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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