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기에 몸을 의지한채 어디론가 가고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여든은 족히 넘어보였지만 분을바른듯 고운 피부라든가 또렷한 이목구비는 이 할머니가 젊었을때 상당한 미인이셨겠단 생각을 하게 하였다 지금은 주름진 얼굴에 몸뻬를입고 홀로 문밖에 나서지만 한때 누군가와 영화같은 사랑을 했고, 친구들과 몰래 학교를 빠져나와 맛있는걸 먹으러다니고, 누군가와 함께 벚꽃길 아래를 걸으며 긴 머리를 쓸어올렸을거다.
잠에서 깨어나면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양 창밖에 눈이 가득 내려있을때가 있다.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듯. 하지만 사실 내가 자는동안 눈은 밤새 열심히 거리를 채워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밤새 내렸던 눈처럼 그 할머니도 아름다운 추억과 가장 예쁘고 고왔던 청춘이 있었을것이다.
할머니의 젊은 날들은 주름 너머로 눈처럼 고이 쌓여있다. 지금은 실감나지 않겠지만 우리도 자신들만의 거리를 눈으로 채워가고 있을것이다. 내 창밖의 거리엔 벌써부터 작고 고운 눈들이 많이 쌓여있다. 좋은 기억도 힘든 기억도 모두 곱고 귀한 눈송이로 변하여 매 순간 하늘에서 내리고, 조용히 쌓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