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정, '고조선 부여의 국가구조와 정치운영 - 부 및 부체제론에 관련하여-' 란 논문을 읽었습니다.
사실 내용은 별거 없는 글이긴 한데 결론이 참신하더라고요.
글의 전체적인 내용은 전반부가 기존의 과도기 국가론에 대해서 소개하는 정도이고 후반부에 가서 고조선과 부여의 부의 존재양태를 삼국의 그것과 비교합니다.
이미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별거 없는것이 전반부야 그냥 왠만한 개설서에 나올법한 내용이고 후반부도 아시는 것처럼 고조선이나 부여의 기록이 부족한 지라 그냥 겉핥기 식으로 짚고 넘어가는 경향이 짙습니다. 뭐.. 사실상 불가항력이긴 합니다만 말이죠.
그런데 결론이 좀 참신합니다.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닌데 한 10도 정도 틀어서 결론을 내렸다랄까요?
전반부는 별거 없는 관계로 생략하고 후반부를 잠시 살펴보면 저자는 고조선와 부여의 정치체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고조선의 경우 중앙정치 집단에 대해서 구체적인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삼국지"의 기록으로 봐서 왕 이외에도 상, 대부, 박사, 장군 등의 직책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相 같은 직책이 중국의 주례에 기록된 동아시아에서 유명한 정치조직에서 유래되었다고 볼때(사실상 유일한 해석이지만) 그것은 왕을 보좌하는 직책이며 이것은 왕을 중심으로하는 중앙조직의 존재를 추측하게 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대부 같은 직책은 해당 고조선의 사회 조직이 귀족과 왕을 중심으로 하는 분화된 사회였음을 추측하게 하고 장군이나 박사는 정치 조직의 세분화를 추측하게 합니다.
사실 여기 까지 와서 볼때 고조선의 사회는 다분히도 중앙에 집권된 국가조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중국과의 관계에서 고조선의 지배층은 기존의 정치모형인 '중앙집권화 국가' 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잘알려진 사건인 예군 남려 나 조선상 역계경의 사례는 고조선의 귀족집단이 굉장히 자치적이고 독립적인 민중지배를 행하고 있었음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앞서 말한 '중앙집권화 고대국가'의 사례와는 어울리지 않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번에는 부여인데, 부여는 고조선보다 상황이 조금더 낫습니다. 기록이 존재하고 구체적이기 때문이지요.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기록에 따르면 부여에는 중앙의 왕을 비롯하여 마우저구의 4개의 집단이 존재했고 이들은 각각 4개의 '출도'를 지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출도는 다분히도 중앙의 행정구역을 나눈 형태라서 사실 4출도를 마우저구 4개 집단의 부족적 지배형태라고 보는건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3세기 전반에 이미 왕위의 부자상속을 확립한 상태였고(기록의 정확성을 떠나서) 그 위세는 요동 공손도 가문의 宗女와 결혼했을 정도라고 하니 말할 것도 없지요.
물론 여기 까지 보면 또 앞서 말한 '중앙집권화 국가'로 볼 수 있지만 역시나 문제가 있습니다.
잘알려진 것처럼 부여는 전제왕권을 확립한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부여의 왕은 기후의 책임을 들어 살해당하기도 했고, 마여 왕은 서자인 관계로 諸加들에게 선출 받아 왕위에 올랐고 우가의 위거가 대사직을 맡으며 정치를 주도했습니다. 그 후계인 의려는 6세의 나이로 제가에 의하여 왕위에 오릅니다 (立以爲王)
한마디로 부여의 왕은 제가들의 위에 오른 존재에 불과했고 고조선과 마찬가지로 제가들은 상당한 독립성과 더불어서 그 위세를 가지고 있었음을 추론하게 합니다.
결론적으로 보게 되면 고조선과 부여는 중앙적인 정치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이것이 완벽한 집권화된 조직인 아니며 각 제가들이 독립적이고 자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를 과연 '부체제'국가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부체제론은 과도기 국가들을 설명할때 최근에 가장 각광받는 이론입니다만 그것은 주로 고구려나 신라의 과도기 국가론을 설명하기 위한 방책으로 소개된 관계로 그 정치 형태는 다분히도 중앙에 예속되어 있으나 반대로 독립적인 자치권을 가진 部집단의 존재를 상정합니다.
그런데 앞서본 고조선이나 부여는 이런 부체제론 아니 고구려나 신라의 초기 형태와는 조금 다른 면이 보입니다.
첫번째, 고조선이나 부여의 기록에는 고구려나 신라와 같은 部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물론 이는 고조선의 역계경이나 남려 그리고 부여의 마우저구나 압로 같은 기록으로 충분히 설명은 가능합니다만 실제로 部라는 실제적인 집단이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없으며 부여의 마우저구 같은 경우 4출도와 더불어서 행정구역 내지는 관념적인 용어로 추론되지 실제로 부를 상징하는 명칭은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저자는 마우저구나 역계경 남려 같은 부여와 고조선의 독립적 집단들이 고구려나 신라의 5부나 6부(초기에는 3성족단)의 경우처럼 세력 범위가 검출되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재밌는 부분인데 5부나 6부의 경우 주변 집단과 병합 내지는 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선출된 소수의 강한 집단임을 의미하는 관계로 이들 집단의 거주지 내지는 정치 중심지는 자연스럽게 고대 국가의 중심지가 됨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고구려는 이를 압록강 일대라고 밝히고 있고 신라는 애초에 6촌(3성족단) 이었던 관계로 경주 일대로 검출 할 수 있지요. 헌데 고조선이나 부여는 경우가 다릅니다. 당장 남려의 경우 창해군 설치 지역을 봐서 압록강 일대로 고조선의 정치 중심지인 평양과는 차이가 있고 역계경도 독립적으로 기록에 등장하는 관계로 고구려나 신라 처럼 강력한 몇개의 국가 중 하나로 보기에는 사료적인 증거가 부족합니다.
부여는 이미 말한 바처럼 마우저구가 4출도라는 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도로 내지는 행정구역에 관련된 집단으로 보는 편이 합리적인 관계로 역시나 고구려나 신라와 같은 부의 존재로 설명하기에 어렵습니다.
두번째, 고조선이나 부여는 고구려 신라와 비교해서 중앙집권력의 차이가 있습니다.
고구려나 신라의 부는 병합과 통합의 과정을 거쳐서 살아남은 소수의 부족집단이 '部'라는 정치조직으로 구성원을 이루어 하나의 국가체제를 갖추기로 합의를 본 국가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부체제'라고 이야기 하지요. 부체제에서 국가의 중앙조직은 '왕'이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합의체를 갖춥니다. 유명한 화백이나 정사암 그리고 제가 회의가 그것이지요. 그리고 이 합의체는 중앙의 힘을 지방 혹은 외부의 조직에 확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마련입니다. 다르게 이야기 하자면 사실상 독립적인 소수의 부 집단이 중앙에 스스로 예속되어 국가중대사를 결정하고 중앙조직의 힘을 키우는 방향으로 합의체를 운영하는 것이 '부체제'론의 중앙집단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조선이나 부여에는 이런 합의체나 중앙의 힘이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계경, 남려 그리고 부여의 압로 들 처럼 지방의 힘이 중앙의 힘을 넘어서거나 국가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독립적이라는 것이지요.
또한 군사권의 형태를 봐도 부여는 '제가가 스스로 싸운다' 라는 "삼국지"의 기록처럼 군사면에서도 독립적이며 이는 고구려의 계루부에 의해 통솔되는 부별의 군사력이나 백제 근초고왕의 黃軍의 경우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맺음말에서 '고조선이나 부여는 부체제에는 어울리는 국가는 아니었다'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기존의 노태돈 교수가 위만조선의 관명에 대한 논문에서 고조선을 부체제국가로 이야기한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본 논문의 저자 송호정 교수는 고조선이나 부여가 다른 과도기국가론인 연맹이나 군장 귀족연합체제 등 과는 차이가 있으며 부체제적인 설명이 가장 어울린다고 이야기 합니다만 결론적으로는 그들이 고구려나 신라 처럼 부체제 단계에 이른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고조선 부여는 부체제 직전의 모습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일 듯 싶다." 라고 말이지요.
(아래 부턴 잡설입니다.)
위에서는 이 글의 결론을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니다' 라고 이야기 하긴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의 결론이 참신하다고 생각한 것은 이러한 논고의 주장에 따르게 되면 기존의 고조선 - 삼국 간의 단절적인 역사 발전 단계를 대체하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잠깐 소개했습니다만 기존의 고조선의 국가단계에 대해서는 사실 다양한 이론들이 동원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들도 완벽한 해석은 불가능 했지요. 그도 그럴것이 절대적인 사료의 양이 부족했으니 말입니다.
문제는 이런 해석들은 고조선을 연맹왕국 혹은 좀 과하게 나가서 중앙집권 고대 국가 로 까지 설명한다는데 있습니다. 이는 사료적인 해석상에도 문제가 있지만 더 나가서 후대에 등장하는 삼국들에 대한 연계성이 무너지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고조선은 연맹왕국 혹은 고대국가로 설명하는데 고구려나 신라 그리고 백제 같은 경우는 그 처음이 누가 뭐래도 소국집단이니 연맹왕국은 커녕 연맹을 이룰 타집단과의 갈등을 먼저 설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지요.
전시대의 고조선이 후시대의 삼국보다 더 발전한 국가발전단계를 밟았다고 설명하는 꼴이니 사실상 단절된 것이고 삼국과 고조선을 가르는 한사군의 한반도 지배는 마치 유럽 중세의 암흑기(중세 암흑기 설에 동의하지는 않지만)에 비견될만한 대침체기로만 해석이 제한되는 결과를 낳았던 것입니다.
최근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론이 '부체제'론인데 (사실 엄밀히 말해 이는 과도기국가론에 들어간다기 보다는 '중앙집권 고대국가'의 초기 형태를 설명하는 형태이긴 합니다. 하지만 초기 국가에 대한 설명에서 1차 사료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과 그나마 충돌이 적다는 면에서 가장 합리적이다고 인정 받습니다.) 이 이론은 특별히 단계를 설정하지는 않지만 송호정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다른 과도기국가론의 고조선과 삼국간의 단절적인 해석을 극복하게 됩니다. 고조선을 부체제의 초기단계로 그리고 삼국을 부체제를 소국단계에서 달성하여 중앙집권 고대국가로 성장한 것으로 해석하면 발전 단계적으로 자연스러우며 동시에 가운데에 낀 한사군에 대한 해석도 자유로워 집니다.
이런 차원에서 봤을때 송호정교수의 고조선과 부여에 대한 국가발전단계론은 상당히 참신하고 재밌는거 같습니다. 특별히 다른 이론을 제시한 것도 아니면서 그저 기존 이론에 대한 해석을 다르게 해서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왔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