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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러시아가 일본에 준 충격.txt
게시물ID : history_205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urelius
추천 : 10
조회수 : 187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05/04 22:03:24

얼마 전에 메이지 유신 관련해서 정말 좋은 책을 읽어서 흥미로운 부분 몇 군데를 발췌해서 공유합니다.


(소제목은 제가 임의로 붙였습니다)



1. 매튜 페리의 흑선(쿠로후네) 이전의 대충격, 러시아의 동방진출



1780년대 북쪽에 있는 에조치(홋카이도), 즉 지금의 사할린과 홋카이도 일대에 러시아인들이 출몰하는 상황을 근거지로 삼아 오호츠크 해로 나가려 하고 있었다. 이것이 서양에 대한 위기감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어 러시아 경계론과 일본의 국방 강화와 내정 개혁을 촉구하는 지식인들의 주장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중략)


이 러시아 출현을 계기로 많은 논자들이 일본이 위기에 처해 있으며 대대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하야시 시헤이는 <해국병담>(1786년 탈고)에서 "최근 유럽의 러시아의 기세가 비할 데 없어, 멀리 달단(만주)의 북쪽을 침략하고 요즘에는 실위(연해주)의 땅을 차지하더니 동쪽 끝인 캄차카까지 점령하였다. 그런데 캄차카로부터 동쪽으로는 더 이상 차지할 땅이 없기 때문에 다시 서쪽으로 눈을 돌려 에조치의 동쪽인 지시마(쿠릴 열도)를 손에 넣으려는 조짐이 있다고 한다"라고 경계해였다. <해국병담>이 출판되던 해에 후지타 유코쿠라는 청년 지식인은 다이묘에 상서를 하여 다음과 같이 강렬한 위기의식을 호소했다. 


도쿠가와 가문이 무(武)로 나라를 세우고 오사카 여름의 전투로 전쟁이 끝난 이래, 거의 200년 동안 나라 안의 안정이 계속되어 지금은 좀도둑조차 드문 세상이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전쟁을 모르고 태평이 넘쳐 나는데, 이것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입니다. 그러는 동안 무사와 병사들은 관직을 세습하고 주지육림으로 포식하며 노래와 음악의 즐거움에 빠져 있어, 눈과 귀는 타락했고 근육은 둔해지고 말았습니다. 천하는 신분의 상하를 불문하고 밑물에 쓸리듯 취생몽사하여 전쟁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으니, 이 역시 역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북방에는 러시아라는 교활한 나라가 있어 신주(神州:일본)를 빼앗으려고 노리며 항상 남하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아, 한탄스럽게도 사람들은 작은 지혜에 우쭐대고 있어 러시아인의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합니다. 작은 새의 좁은 식견으로 대붕(봉황)이 하는 일을 비웃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장작의 비유 그대로이니, 쌓아 놓은 장작 위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서 자면서 아직 불길이 올라오지 않았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일본의 모습이 바로 이러합니다.


(중략)


박훈,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2014. p.45-46


물론 주류 사회는 이러한 위기의식을 과대망상으로 치부하고 오히려 사회혼란을 부추기는 것으로 보아 즉각 금서 처분을 내리고 관련된 인물들을 좌천시키는 등의 처분을 내립니다. 그러나 그러한 위기의식은 죽지 않고 사회 전반에 계속 확산되고 계승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위 상소를 쓴 사람의 제자 아이자와 야스시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금 세계는 모두 7웅으로 나누어져 주나라 말기의 이른바 7웅이라는 것과 약간 차이가 있지만 그 형세는 매우 비슷하다. 러시아와 튀르크는 토지가 넓고 군대가 강하며 땅을 접하고 자웅을다투는 것이 진과 초의 형세이다. 만청(청나라)은 부강하고 동방에 있으니 제와 같다. 무굴 제국과 페르시아는 그 중간에 있으나 한과 위이다. 신성로마제국은 명위가 있어 여러 나라가 존숭하기는 하지만 사실은 프랑스, 에스파냐, 영국 등 여러 나라와 백중지세이다. 큰 나라는 한, 위, 작은 것은 송, 위, 중산일뿐이다. (아이자와의 주석: 신성로마제국은 서양 국가 입장에서 보면 동주東周의 형세와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존엄함은 없다). 또한 신주(일본)가 만청의 동쪽에 있는 것은 마치 연이 제와 조에 가려져 있는 것과 같다. 


박훈 교수 말대로 부분적으로 부정확한 정보에도 불구하고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세계형세를 조망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아이자와는 다음과 같이 부연합니다.


지금 러시아는 강한 기세를 가진 오랑캐이니 반드시 청을 칠 것이다. 그러나 청은 아직 강성하여 쉽게 침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주(일본)를 돌아보고 침을 흘리는 것이다. 그 기세를 보면 신주를 점령한 후에 우리 백성을 앞세워 민절(중국 동남해 해안)을 침략할 텐데 그것은 마치 옛날의 해적, 즉 명나라 사람들이 왜구라고 부른 자들의 짓가 같을 것이다. 청의 동남쪽을 피폐하게 하고 그 틈을 타 하미(중국 서북), 만주 등의 땅을 취하고 곧바로 베이징을 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만청(청나라)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가 만청의 땅을 얻으면 곧 무굴을 뒤엎고 페르시아를 복속시키며 튀르크를 멸망시키는 것은 마른 가지를 부수는 것과 같다. 만약 동쪽이 아직 침략하기 어렵고 만청도 당장엔 무찌를 수 없다면 러시아는 우선 서쪽을 도모하려고 할 것이다. 서방에 틈이 보이면 페르시아와 함께 튀르크와 싸우고, 만약 이들을 이기면 곧바로 남하하여 무굴을 습격하고, 만청과 준가르의 고지를 다투어 단번에 청에 침략하여 이긴 다음에는, 실로 함선을 이끌고 신주에 몰려올 것이다. 이 두 가지 책략은 동쪽에서부터 서쪽을 도모하거나 아니면 서쪽에서부터 동쪽을 도모하는 것이다. 라시아는 실로 때를 보고 형세를 살피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박훈,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2014. p.48


2. 서양제국의 동방진출이 가져다 준 충격


서구열강이 본격적으로 전지구적인 범위에서 확장을 시도한 것은 산업혁명이 극에 달했던 19세기 중후반이었지만, 일본은 19세기 초부터 서양열강에 대한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막부의 관료였던 고가 도안(1788~1846)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서양의 진출로 지금 일본은 큰 위기에 빠져있다. 서양이 동남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에 서양과 일본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게 되었으며, 이미 육대주 중 오대주가 서양의 지배에 들어갔고 아시아 중에서도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지나(중국)과 본방(일본) 뿐이다.


따라서 그는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첫째. 네덜란드 통해서만은 정보가 부족하므로 서양 교역국의 수를 늘릴 것

 둘째. 일본 내에서만 교역할 것이 아니라 일본도 인도, 태국, 베트남으로 교역선을 파견하고 해군을 창설할 것. 

 셋째. 전쟁의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해 이국선을 무조쩍 쫓아내지 말것. 


막부 관료였던 그는 일본을 청, 러시아, 영국 같은 나라에는 미치지 못하나 튀르크나 페르시와는 동렬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국력을 중요시하게 여겼던 그는 약소국에게는 페이지를 할애하지 않았는데 유규왕국은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고, 조선에 대해서도 언급 빈도가 페루나 멕시코보다 적었습니다. 그는 국가간에 병존이나 지배-피지배 관계가 있을 뿐 문화적 상하관계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박훈,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2014. p.58-59


다른 한편 아편전쟁이 터진 후 일본은 해당 정보를 실시간을 접할 수 있었는데 나가사키의 상인들이 전해주는 정보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국왕으로부터 아편전쟁과 세계대세를 설명하는 특별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가사키에는 아편전쟁에서 직접 싸웠던 중국인들이 다수 들어왔고 반대로 일부 일본인들 또한 아편전쟁으로 인해 개항된 중국의 항구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 한명이 쵸슈 유신 지사이자 기병대의 창시자 '다카스기 신사쿠'인데 그는 상해에서 중국인들이 서양인들의 노예처럼 부려지는 것을 목격하고 더더욱 힘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페리 이전의 일본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19세기 초 일본 지식인(아이자와 야스시, 요시다 쇼인 등)들의 저서가 번역되지 않고 있는 게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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