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남원소경)입니다.
조선시대 남원읍성도 표시되어 있는데 남원소경이 훨씬 큽니다.
충주(국원소경)입니다.
바깥부분이 통일신라이고, 안쪽이 조선입니다.
하지만 성 자체는 고려시대에 축성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상주입니다.
조선시대 상주와 비교해도 통일신라의 상주가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해 고읍성입니다. 금관소경이라 불렸고,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축성한 것입니다. 바깥쪽이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축성한 것이고, 안쪽이 조선시대에 축성한 것입니다. 대략 7배 차이가 납니다.
김해(금관소경)입니다.
조선시대 고지도에 표시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 큰지 감이 잡히지 않으시겠지만 7배의 차이가 납니다.
전주입니다.
읍성으로만 본다면 통일신라가 더 크지만 조선시대의 경우 읍성바깥으로도
넓게 도시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크기 자체는 비슷할 것으로 보입니다.
진주입니다.
진주의 경우 조선시대에 읍성바깥으로도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통일신라의 진주가 더 큽니다.
통일신라의 경우 지방을 9주 5소경으로 나눴습니다. 5소경이나 9주의 치소나 크기는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고려의 서경(평양)과 같은 수도에 비견되는 지방의 대도시는 없지만 그래도 상당한 규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통일신라의 9주 5소경은 중요한 고을로 남아있었지만 도시의 규모는 줄어드는 모습을 보입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인구를 추정할 때에는 다소 작게 추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9주 5소경이 중요한 곳이라지만 합치면 14개나 되는 지방도시들입니다.
그런데도 이들 도시의 크기는 중세 후기 파리나 런던보다 더 큽니다.
전근대사회의 도시라는 것은 그 사회의 결과물적인 특성이 강합니다.
도시가 크다는 것은 도시의 인구뿐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인구가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통일신라의 경우 기존의 추정을 보면 수백만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데
조선시대 경상도와 전라도 두 곳의 인구만 합쳐도 600만이 넘습니다.
과연 당시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통일신라의 도시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재작년에 흥미로운 고고학 발굴이 있었습니다. 모량리에서 서라벌(경주)의 대규모 도시유적이 발견된 것인데요.
반월성에서 10km가까이 떨어진 곳에서 바둑판 계획도시가 발견되었습니다.
1360방이냐 360방이냐, 17만8936호냐 17만8936명이냐의 논쟁에서 전자일 가능성이 높아졌죠.
개경만 하더라도 한양보다 도성의 크기가 훨씬 큽니다.
삼국 중에 하나일 뿐인 백제의 사비성이 한양만 합니다.
그들은 외계인도 아니고 당시의 문명이 미스테리문명도 아닙니다.
역사를 볼 때는 보고싶은 것이 아니라 타당성이 중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