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사가 용산 대통령실 근처에 도착한 시간은 12월 3일 저녁 8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다. 용산에 간다는 손님을 내려다주고 임기사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용산 대통령실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택시를 몰고 갔다. 삼각지 공원 화장실은 24시간 개방되어 있어서 임기사가 가끔 이용하는 곳이다. 이 곳에서 볼 일을 보고 이태원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 곳의 풍경은 평소와 다른 바가 없었다. 대통령실을 지키는 경호인력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택시를 운전하고 있는 임기사를 딱히 경계하지는 않았다. 임기사 말고도 다른 택시기사들도 종종 이용하는 화장실이기에 임기사의 택시 말고도 다른 택시들이 근처에 세워져 있었다. 잠시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는 기사들도 보였다. 임기사도 화장실에서의 볼 일을 마치고 잠시 택시 안에서 쉬다가 가기로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누가 알았으랴. 몇 시간 후 이 곳에서 이토록 무섭고도 참담한 일이 일어날 지.
휴대폰으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글들을 보고 있던 임기사에게 콜이 들어온 것은 8시 30분 쯤 이었다. 바로 근처인 삼각지 역에서 청계산 역까지 가는 손님이었다. 요즘처럼 불경기에 제법 멀리까지 가는 손님이 반가웠던 임기사는 얼른 손님이 있는 삼각지 역으로 택시를 운전했다. 택시에 탄 손님은 젊은 남자였다. 임기사와 손님은 별다른 대화없이 목적지까지 갔다. 손님을 내려다 준 후 임기사는 근처 해장국 집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밤 9시 30분 경이었다. 식당 안에 틀어 놓은 티비에서는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임기사는 10시 쯤 다시 택시운행을 시작했다.
양재역에서 과천까지 가는 손님을 태워주고, 과천에서 사당으로 넘어와서 강남 쪽으로 접어들 무렵 김포로 가는 콜이 들어왔다. 김포까지 손님을 태워다 준 후 임기사의 택시가 강서구 쪽으로 넘어 왔을 때의 시간은 밤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 때 여의도로 가는 콜이 들어왔다. 손님의 위치로 가니 젊은 남자 손님이 임기사의 택시에 탑승했다. 임기사가 택시를 출발시키자 손님이 임기사에게 물었다.
"기사님, 혹시 뉴스 보셨어요?"
지금까지 택시 운행을 하느라 뉴스를 보지 못 했던 임기사가 손님에게 말했다.
"뉴스요? 아뇨, 못 봤는데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계엄령이 선포됐어요. 미친 거 아니예요?"
손님의 말에 임기사는 놀라서 되물었다.
"계엄령이요? 지금이요?"
"10시 반 쯤에 갑자기 윤성열이 티비에 나와서 그러더라고요."
임기사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허 참, 어이가 없네. 지금이 어느 땐데 계엄령이야?"
"그러니까요. 저도 보면서 어이가 없더라고요."
임기사의 말에 손님도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는 휴대폰으로 뉴스 속보들을 보면서 임기사에게 알려줬다.
"서울 시내에 장갑차가 목격됐고요. 국회 상공에 헬기 여러 대가 나타나서 국회에 착륙했대요. 그리고 국회에 계엄군이 들이닥쳤다는대요?"
"아니, 서울의 봄도 아니고 지가 무슨 전두환이야? 술 취해서 정신줄 놓은 거 아닐까요?"
"이미 인터넷에서는 '취했나 봄'이라는 짤이 돌고 있네요."
임기사가 손님과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택시를 운행하다가 내비에 표시된 손님의 목적지를 보니 국회의사당으로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임기사는 깜짝 놀라며 손님에게 물었다.
"근데, 지금 국회의사당으로 가시는 거예요? 왜요?"
"아, 제가 한국혁신당 당직자라서요. 지금 비상소집이 내려져서 저희 당 국회의원과 당직자들 모두 국회에 모이는 중이예요."
임기사는 국회에 계엄군이 들이닥쳤다는 소식에 걱정이 돼서 물었다.
"그럼, 한국 대표님도 지금 국회에 계시나요?"
"그렇곘죠. 저도 좀 전에 연락을 받아서 가는 중이거든요."
"계엄군이 국회에 들이닥쳤다면서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국회의원 과반수 이상이 동의하면 계엄을 해제할 수 있대요. 그래서 다른 국회의원들도 국회로 오고 있다고 하네요."
임기사의 택시가 국회 근처에 다다르자 국회를 둘러싸고 있는 경찰들과 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손님이 임기사에게 말했다.
"국회 쪽은 혼잡해 보이니까 근처 횡단보도 앞에 세워주세요."
임기사가 택시를 세우자 손님은 택시비를 계산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임기사는 택시에서 내리려는 손님에게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부디 몸 조심 하세요."
"고맙습니다. 기사님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임기사는 손님을 내려준 뒤 근처에 정차를 하고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려고 했지만 인터넷이 잘 되지 않았다. 길 건너 국회 앞에서는 문을 막고 있는 경찰들에게 항의를 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때 임기사의 휴대폰이 울리면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임기사가 전화를 받으니 아내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소식 들었어?"
"응, 나도 방금 전에 손님이 말해줘서야 알았어."
"애들 재우고 집안일 좀 하느라고 몰랐는데 나도 좀 전에 티비 틀었다가 알게 됐어. 오늘 아무래도 불안하니까 일찍 들어와요."
"알았어,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얼른 자. 스트레스 받으면 뱃속의 아이한테도 안 좋아."
아내와의 통화가 끝나고 임기사는 잠시 망설였다.
'무슨 일이 생길 것에 대비해서 국회 근처에 대기하고 있어야 하나?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래서 나에게도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아내와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임기사는 우선 인터넷이 되는 곳으로 가서 뉴스를 보면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임기사는 국회에서 조금 떨어진 양평동 쪽으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서 뉴스들을 보고 있을 때 홍대쪽에서 콜이 들어왔다. 밤 12시 30분 경이었다. 보통 때라면 양평동에 있는 임기사에게까지 홍대에서 콜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홍대입구역 근처에는 항상 택시들이 많기 때문에 홍대근처에서 콜을 받아도 빨리 수락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다른 택시들이 콜을 채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양평동까지 콜이 오고 그 콜이 한동안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며 임기사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금 계엄상황이라 홍대에 택시가 없나? 이 사람들도 무서워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택시가 없어서 못 가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임기사는 얼른 콜 수락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양화대교를 건너 홍대 쪽으로 택시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양화대교를 건너 합정역에 다다르자 역 근처에 택시들이 많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거리에 사람들의 모습도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다. 양평동에서 홍대까지는 차로도 10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보통 택시를 부르는 사람들은 10분 이상 걸리는 차가 배차가 되면 콜을 취소하고 다른 택시를 부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콜을 취소도 하지 않고 임기사의 택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이 있는 홍대입구역 근처에 가니 보통 때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역 근처에 줄을 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들도 많고 놀러 나온 젊은 사람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지금 비상 계엄령이 선포된 것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임기사의 택시에 탄 손님들은 외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임기사의 택시에 타서 자기네 나라 언어로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에서 불안감이나 공포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손님을 목적지에 내려준 후 임기사는 근처 한적한 곳에 택시를 세워놓고 라디오로 뉴스를 듣기 시작했다. 잠시 후 국회에서 계엄해제 동의안이 가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제서야 임기사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내에게 전화해서 거리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고 방금 계엄해제가 국회에서 통과됐다고 하니 운행을 계속 하다가 들어갈테니 걱정하지 말고 먼저 자라고 말한 임기사는 다시 택시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택시 운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용의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앞에 택시를 세우니 젊은 여자 두 명이 임기사의 택시에 올랐다. 임기사가 목적지까지 택시를 운행하는 동안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슨 계엄이야? 미친 거 아냐?"
"티비보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계엄령을 선포한다고 하는데 어이가 없더라니까?"
"이게 다 지 마누라 잡혀갈 것 같으니까 쇼 하는 거겠지?"
"그렇겠지, 마누라한테 꽉 잡혀사는 ㅂㅅ이니까."
"이번 주에는 나도 촛불집회에 나가야겠어."
"너는 내가 그렇게 같이 가자고 해도 안 간다고 하더니 이제야 간다고 하는구나?"
"미안해~ 나도 이제부터는 촛불 집회에 나갈게. 같이 갈거지?"
임기사는 운전을 하는 동안 손님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윤성열이 자기 무덤을 제대로 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또 이렇게 촛불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탄핵당할 날이 머지 않았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