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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암군 & 폭군 열전 - 7. 다나카 가쿠에이(feat.2mb)
게시물ID : history_203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프로여행러
추천 : 6
조회수 : 2202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5/04/14 23:44:00
요새 바빠서... 라는 핑계로

쓰는게 왔다갔다 하네요;;;;

오늘의 쓰레기(암군,폭군은 아닙니다)은 일본의 전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입니다.

1. 다나카 가쿠에이
200px-Tanaka_Cropped.jpg
요렇게 생긴 아저씹니다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 일본어: 田中 角栄たなか かくえい문화어: 다나까 가꾸에이, 1918년 5월 4일 ~ 1993년 12월 16일)는 16번 중의원 의원에 뽑히고, 64·65번째 내각 총리 대신을 지낸 일본의 정치인이다. 니가타 현에서 태어나 총리 재임중이던 1972년에 일본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교를 수립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총리 사임 후록히드 사건으로 복역했다. 장녀인 다나카 마키코는 자유민주당 소속 중의원 의원이다.

인생사를 조금 더 쓰면 자수성가형 정치인입니다.

어렸을 때 농사꾼 집안이었고, 가세가 기울어서 고등학교 졸업 후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 뒤에 다나카 토건공업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이화학연구소라는 화학부문을 맡으면서 급성장하게 됩니다.

그 뒤에 주변의 권유로 정계에 진출하게 되고, 진보당으로 나섰다가 낙선하고 당적을 바꿔 민주당 공천을 바꿔 총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정계진출을 하게 됩니다.

왠지 모르게 누구 이야기 같은데 각색한게 아니라 실제 저 아저씨 이야깁니다.
2. 총리 부임 전

보통 악행스토리를 가야되는게 맞지만 이 아저씨는 그 전에 저질러 놓은 짓들때문에...

이건 순서대로 정렬하는게 맞는데.... 이 아저씨의 가장 큰 문제는 '뇌물'입니다(사실 오늘 주제선정 이유이기도...)

우선 정계 진출부터 이야기 해야하는데, 정계 진출 초반부터 뇌물 수수사건에 연류됩니다

법무차관으로 관료 첫 경력을 시작했지만, 불과 2달도 안돼서 터진 "탄광국 뇌물수수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가타야마 데츠 총리가 탄광 국유화를 발표하자 탄광주들이 로비를 위해 자금을 살포한 사건이었지만 재판부는 이건 "뇌물이 아니라 정치헌금(즉 돈은 받았는데 뇌물은 아니다...)"이라면서 정치인들에게는 무죄를 선고한다.(엔하위키미러)

더 웃긴건, 옥살이를 하는동안 중의원 선거에 출마했는데 당선이 되었다는 점입니다(남의 나라 얘기가 아닌거 같아...)

이때 자유당의 부간사장이었던 사토 에이사쿠를 알면서 그에게 충성을 바치면서 출세를 도모한다.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보수대연합 자유민주당이 탄생하고 1957년, 기시 노부스케 내각이 출범하면서 우정장관으로 취임했다. 현재의 일본 방송체제, 즉 신문사가 방송사도 운영하는 체제는 다나카가 이시기 우정장관으로 있으면서 강력하게 추진했던 정책으로 이를 통해 다나카는 매스컴을 틀어쥐는데 성공했다. 특히나 방송국의 설립과 면허 유지 권한을 틀어쥔것은 후에 다나카가 총리가 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한다.

즉, 언론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고(권력을 통해서) 정권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뭐 그리고 사소한 이야기들 끝에 결국 총리에 올라가게 됩니다.

3. 총리 부임

총리 부임하고 70%의 높은 지지율을 안고 시작한 다나카 내각은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하는등 중미 관계가 개선되자(데탕트) 이를 따라하기 위해 72년 9월, 중국을 전격 방문했습니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를 만나 정상회담을 가지고 중화민국과의 국교 단절을 선언했습니다(응????). 

즉,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에서 뒤통수를 때려버린 아름다운 외교 만행을 저지릅니다(아무리 냉전시대라도 그렇지;;;)

이 사건에 대해서 일화가 있는데, 저우언라이가 다나카 총리에게 건넨 색종이에는 논어의 한구절인 "언필신행필과(言必信行必果)"가 적혀있었는데 그 뜻인즉 "말한것은 반드시 신의가 있어야 하고, 해야할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라는 뜻이었다고. 

나머지는 엔하위키 자료입니다.

어쨌든 그해에 총선이 열렸지만 자민당의 의석수가 감소하고[5] 일본 공산당이 약진하는 사태[6]가 발생했다. 이듬해인 1973년에는 다나카가 강력하게 밀어붙이던 열도개조론(즉 토건정책)의 영향으로 물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의 문제가 대두하기 시작했는데 다나카는 이 와중에 소선거구와 비례대표 중복출마 제도를 시행하려고 했다가 야당의 강력한 반발에 무산되고 말았다.

오일쇼크가 터지자 이스라엘 지지에서 아랍권 지지로 돌려서 석유확보를 하려했다. 이듬해인 1974년 참의원 선거에선 헬기를 타고 일본 46개 현중에서 토치키현을 제외한 모든 현을 돌아다니며 선거유세를 했지만 결과는 패배.[7] 이것도 닉슨 닮았네 1950년대 이후 처음으로 참의원에서 자민당과 야당의 백중세가 되었다. 선거 패배로 인해 당내 내분이 일어나면서 내각에 참여했던 정적인 미키 다케오후쿠다 다케오가 장관직을 사임했다.

그리고 전설적인 록히드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https://mirror.enha.kr/wiki/%EB%A1%9D%ED%9E%88%EB%93%9C%20%EC%82%AC%EA%B1%B4
경과나 결과 등은 엔하위키미러에 잘 나와있으니 간략하게 설명하면

미국 록히드항공사가 전일본공수와의 계약을 위해서 24억 엔을 지불한 사건입니다. 이 중 5억 엔이 총리에게 돌아갔으며, 1억 6000만 엔이 전일본공수(일본 항공사) 관리들에게 돌아갔고, 17억 엔이 고다마(CIA요원)에게 돌아갔습니다. 

즉, 항공기 판매를 위해 일본 항공사는 물론 총리에게까지 돈을 뿌린 사건입니다.

당연히 총리가 구속이 되는 일본에서도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고, 결국 총리직을 사퇴하게 됩니다.

4. 총리 사퇴 후
참... 이렇게 사퇴가 되고 구속되고 철컹철컹 했으면 해피엔딩일텐데

이 인간은 그래놓고도 중의원 직을 내려놓지 않겠다고 버팁니다. 

다나카 가쿠에이는 록히드 사건의 유죄판결에도 불구하고 의원직을 유지하며 버텼고 다나카 판결 해산 이후에 치뤄진 제37회 중의원 선거에서도 자신의 지역구인 니가타 3구에서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되고 타케시타 노보루에 대한 일본 우익세력의 공격에 배후로 지목되는 등 위세를 떨쳤다.

간단하게 말하면, 국가적인 뇌물 사건의 용의자가 국회의원 직도 지키고 재선까지 성공하는 초유의 일들이(우리나라 보면 아닌가?) 벌어집니다.

그러면서 다나카는 본인의 파벌로 정치를 농단하기 시작합니다. 총리는 허울뿐이고, 얼마나 이런 세력이 심했는지 자기가 마음대로 총리를 바꾸기도 하고(스즈키 -> 나카소네), 오죽하면 별명이 어둠의 쇼군이었을정도라니...

이런 상황이다 보니 야당은 물론이고 국민들까지 분노하게 되어서(본인 지역구인 니가타 제외) 나카소네 총리가 '다나카의 정치적 영향을 배제하겠다'라는 발언을 할정도 였습니다만... 이건 박모씨가 이모씨의 정치적 영향을 배제하겠다라는 급의 말도안되는 이야기라...

결국 이후에도 온갖 정치적으로 추잡한 짓거리를 하다가(너무 많아서 정리가 안됩니다;;) 늙어서도 정치에 계속 몸담다가 본인의 지역구 마저도 딸에게 넘겨주고(이런게 되나...아 되는구나...) 사망하게 됩니다.

5. 정리

이 인간은 총리를 2년 반만 했지만, 정치생활은 평생 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의 정치적 파벌을 지휘하며 말 그대로 국정을 농단했습니다.

즉, 국가경제나 국가운영에 총리로써 미친 영향은 적을지 몰라도
정치적인 문제로 일본의 지금의 정치문제들을 누적시키는데 아주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6. 그 외....

처음에 록히드 사건 때문에 쓰기 시작했는데

쓰면 쓸수록 누가 자꾸 생각나서 좀 당황스러웠네요(심지어 인생사까지 비슷...)

참고로 니가타 지역구를 이어받은 딸마저도 총 5번(...) 중의원에 당선됩니다.(2012년에서야 낙선 ㄷㄷ)

더 황당한건, 최근에 와서 다나카 총리에 대한 재평가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는데 비록 비리는 저질렀어도 추진력과 결단력은 존경할만하다라는 재평가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비리 저지른 놈이 무슨놈의...) 이런 재평가의 배경은 삽질만 거듭하는 일본 자민당과 민주당에 질려버린 국민들이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상황하에서 나오는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비리로 일본 국민들의 혈압을 올리는데 공헌했던 그가 결단력있는 지도자로 재평가받는걸 보니 참......일본의 미래도 밝은건 아닌거 같습니다.(남얘기 할게 아닌가...)

출처: 엔하위키미러, 위키백과

역사란 현재와 과거 간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E.H. Ca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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