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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끊었다.
벌써 3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이유였던
'금연에 성공하고 싶어서'를 드디어 해낸 것이다.
금연에 성공한 지 만 2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이제서야 금연에 성공했다고 글을 쓰는 것은
지난날 종종 흡연에 대한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금연을 결심한 날,
가지고 있던 담배를 모두 버렸다.
전자담배였으므로 기계도 버려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바로 후회했다.
아씨... 오늘까지만 피울걸.
하지만 이미 기계까지 버렸으므로 담배를 다시 피울 순 없었다.
물론 연초를 피우면 될 일이었지만
전자담배의 맛에 몇 년간 길들여져있던 터라
연초의 쾌쾌한 냄새가 별로 땡기지 않았고 칼칼한 목구녕의 느낌도 싫었기에
스스로 강제 금연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튿날부터는 확실히 흡연의 충동이 덜했다.
뚱땡이임에도 괜히 몸이 가벼운 것 같고,
평소 탁한 생각을 많이 하면서도 뇌가 맑아진 기분이 들었으니까.
두어 달쯤 흘렀을까.
고비가 찾아왔다.
별로 좋지 않은 일들 때문에 술 한 잔을 기울였는데,
한 잔이 열 잔이 될 때쯤 미친 듯이 담배가 땡기기 시작했다.
그땐 전자담배든 연초든 상관없었다.
그냥 연기나는 무엇인 가면 될 것 같았다.
바로 편의점으로 달려가 라이터와 담배를 사면 됐지만,
미칠듯한 스트레스와 슬픔보다도 귀찮음이 더 컸기에 참아낼 수 있었다.
와,, 게으른 게 이럴 땐 또 도움이 되네.
역시 쓸모없는 인간은 아니었어.
다음날 아침, 게으른 나를 칭찬하며 더욱 게으름을 피웠다.
이렇게 나의 게으름은 나의 건강을 지켜주는 좋은 성격이었다며
게으름을 합리화시키며 프로 나태러가 되었다.
그 위기를 넘기자 그렇게 큰 위기 없이 지금까지 지내올 수 있었다.
물론 한 1년 정도까지는 한 달에 한 번,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담배가 생각날 때가 있긴 했다.
하지만 담배 피우고 싶어 미치겠네의 수준이 아닌,
지금 요 타이밍에 담배 한 대 피우면 참말로 좋겠지만 안피지롱
정도의 수준으로 수위가 내려갔고,
어렵지 않게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
2년 차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아예 생각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횟수가 늘어났다.
스트레스를 술로 달래고, 기쁜 마음을 술로 축하했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그런 역할을 술과 담배가 번갈아 나눠가며 했지만
이젠 담배가 없으니 술 혼자 과도한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다시 무언가로 충원을 해야 술을 덜 마실 텐데,
담배만한 인재가 없어서 인력 충원에 실패!
차라리 술을 끊고 다시 담배를 피울까 잠깐 고민도 해봤지만
담배 냄새가 이미 너무 싫어진 상태이고,
담배를 피우러 또 왔다 갔다를 반복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프로 나태러가 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술을 선택하게 됐다.
그럼 술도 끊어버리면 되지 않겠느냐 반문할 수도 있는데
술은 끊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지롱
그렇다고 일상생활을 저해할 정도로 과음을 하거나
어차피 없는 친구지만 더 없어질 정도로 주사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적당한 선에서 먹기로 타협했다.
하지만 난 적당히를 모르는 사람이지.
일주일 내내 매일 밤 맥주를 마시다 결국 엄마에게 한소리 들었다.
"넌 맨날 그렇게 술을 마셔? 적당히 마셔야지. 적당히."
"나에겐 이게 적당히야. 내가 마음먹고 제대로 마시잖아? 그럼 한국주류산업이 갑자기 미친 듯이 급성장해서 관련 주 엄청 오를걸? 어때, 지금 있는 돈 다 털어서 주류시장 쪽에 다 투자하고 나 제대로 한 번 달려? 어? 재벌집 막내딸의 엄마 한 번 만들어줘? 원해?"
결국 등짝을 얻어맞았고, 속상한 마음에 그날 저녁에도 맥주 한 잔 때렸다.
정말 엄마는 몰라도 너무 몰라, 내 맴을.
중간에 주종을 한 번 바꿔볼까 하고 와인에 발을 담갔다가
내 지갑이 담가질 뻔해서 급히 발을 뺐다.
지갑은 얇은데 쎳바닥은 고급만 찾아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빨리 정신 안 차렸으면 이 추운 겨울 길바닥에서 자다 입 돌아갈 뻔했다.
다시 맥주로 정착하며 하루하루 소소하게 살아가는 중이다.
맥주는 절대 질리지 않는데, 설마 내가 술을 끊겠다는 결심을 하는 날도 오긴 할까.
담배는 처음 피게 된 이유가 금연에 성공하고 싶어서 였으니,
그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겠다는 동기가 있어서 끊을 수 있었지만
술은 애초에 그냥 퍼마시기 시작한 거고, 술이 좋아서 계속 마시게 된 거라
아마도 어떠한 큰 계기나 동기부여가 있지 않고선 끊겠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금연에는 성공하였으니,
이로 하여금 흡연을 하게 된 이유를 만족시켰고
나 자신과의 약속도 지킨 것이라 매우 흡족하다.
금연 10년 차 슨배님들이 본다면 아마 애송이라며 콧방귀를 방귀대장 뿡뿡이 마냥 뀌실지도 모르겠다.
금연에는 성공이란 말이 없다고, 한 평생을 참아내는 것뿐이라고.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얘기들인 터라 지금 이 성공이 완전한 성공이 아닌 절반의 성공일 수도 있지만, 완벽한 성공을 위해 계속 해낼 것이다.
아니, 근데 이러나저러나 그냥 담배 생각이 나질 않는다.
혹시 만약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된다면 그때가 금주를 하게 되는 날이 아닐까 싶다.
아, 이로써 술을 끊어야 하는 이유가 방금 생겨났다.
다시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 그때 술을 끊어야겠다.
그날이 오면 나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자욱한 담배 연기 사이로 나지막하게 말하겠지.
"내가 술을 끊은 것은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다. 후~"
그 모습을 상상하니, 마치 장국영이 환생한 것 같은 이미지다.
나란 여자, 매력이 마르지 않네. 하, 이게 바로 스타의 삶인가.
오늘도 나라는 매력에 취해 제정신으로 살지 못했네.
그래, 내가 매일 밤 취하는 것은 술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나 자신 때문인 것이다.
술은 죄가 없다.
술을 끊지 않겠다.
그럼 이만 글을 줄이며,,,
추신 - 술 마시고 쓴 글 아니고, 아침 일찍 일정이 있어서 강제 금주 중이라 스트레스로 미쳐서 그런 것이니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제정신일 때 다시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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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년전 글이다.
올해로 금연 4년차, 그럼에도 자신있게 비흡연자라 말할 수 없는 이유는
10년 차에 다시 담배에 손을 댔다는 슨배님들의 증언을 접했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온전히 금연에 성공할 수 있을까.
꾸준히 기록해볼 일이다.
담배는 백해무익하지만, 과거 흡연러로서 지금의 흡연자들을 존중하는 바이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합법적이고 건전한 행위이니께,,
다만, 길빵만은 제발 멈춰!
매너를 지키는 흡연러는 존중받아 마땅하니 서로서로 배려하였으면 좋겠쭙니다.
그럼 다음 기록을 남길 때 다시 찾아오겠사와요.
모두 굿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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