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과 정재승(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의 크로스중 발췌
0등록 2009.05.15 01:42 수정 2020.05.01 19:25
왜 도처에 카메라를 깔아놓으려 할까? 그것은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존재한다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기 때문이리라. 권력을 행사하려면, 그 대상에 대한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몰래카메라는 무엇보다도 관음증의 도구라 할 수 있다. 카메라의 둥근 렌즈는 공교롭게도 문고리에 달린 열쇠구멍을 닮았다. 그것은 공적으로 금지된 영역, 즉 ‘프라이버시’라 불리는 타인의 침실 속으로 내 시선을 들여보내는 구멍이다. 몰래카메라는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들여다보는 범법 행위를 대중이 즐기는 합법적 오락으로 바꾸어놓는다. 그것은 대중에게 타인에 대한 시야를 확보했다는 유사권력의 느낌을 선사하면서 그들의 관음증적 욕망을 충족시켜준다. ‘몰래카메라 실험’이 아니면 도저히 관찰할 수 없는 피험자들의 말과 행동(웃음, 몸동작, 눈맞춤 같은 비언어적인 소통들)을 관찰함으로써, 마음 읽기 과정과 공감 정도를 측정했다. 그의 실험은 피험자의 인권과 사생활 침해 문제, 실험 과정의 자발성과 실험자의 상황 조작 가능성 등 다양한 문제제기가 뒤따랐지만, 실험심리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획기적인 실험디자인으로 평가받았다(물론 지금은 ‘심리학 실험의 전형적인 방법’ 중 하나로 애용되고 있다). 몰래카메라의 등장은 과학자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인간공학, 인간과 로봇·컴퓨터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로보틱스(HCI·Human-Computer Interface), 시선추적장치(eyetracking techniques)를 이용해 인간의 시각주의집중을 탐구하는 인지신경과학,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문화기술학 등에서 중요한 연구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출처: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49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