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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누수 (2)
게시물ID : freeboard_20339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노일만
추천 : 0
조회수 : 47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10/19 12: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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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일만 단편선: 누수 (3)


산 넘고 강을 건너, 들판을 가로 지르고 깎아지른 듯한 암벽을 오르고 내리며 규태는 열심히 볼을 모았다. 4성구, 3성구, 7성구…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볼이 하나씩 규태의 손에 들어왔다.

드래곤볼의 위치는 다크웹을 통해 수집했다. 과연 다크웹에는 없는 게 없었다.

-2성구 정보입니다. 확인된 것임.

-4성구 좌표. 미 달러 1,000. 네고 불가.

-볼 2개 현재 소유주 정보입니다.

‘이 사람들은 왜 직접 볼을 모으지 않고 정보만 파는 걸까?’

궁금했지만 규태가 알 바 아니었다.

볼을 찾는 모험을 하면서 때로는 전투에도 임해야 했다. 규태는 모험을 하면서도 매일 아침 팔굽혀펴기를 해가며 전투력을 올렸다. 매일 아침 팔굽혀펴기를 한다는 건 말로는 쉬워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는 사람이 지구상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는데, 과연 실제로 해보니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근육이 뭉치고 팔이 떨리는 건 차치하고, 그냥 너무나 하기가 싫었다.

그러나 규태는 볼을 모아야했다. 하기 싫다는 마음을 매번 이겨내며, 그는 수련에 임했다. 과연 그의 파워는 날이 갈수록 강해졌다.

꾸준한 훈련 덕분이었을까.

5성구는 요술을 부리는 늙은 뱀의 손에 있었고 1성구는 슈퍼혈청을 맞은 돌연변이 반달곰의 손에 있었는데, 규태는 뛰어난 체술과 치밀한 전략으로 둘을 물리치고 누적 다섯 개의 볼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정상에서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락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 규태의 피부는 온통 벗겨지고 그을린 상태였다. 온몸의 근육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입술은 완전히 부르터, 뜨거운 목욕과 치맥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이제 두 개 남았을뿐이었다. 볼을 두 개만 더 모으면, 그토록 바라는 누수 탈출이 가능했다.


모락산 정상에 신선이 산다는 소문은 예전부터 들어왔다. 신선은 구름을 타고 다니면서 가끔 등산객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고도 알려져 있는데, 산 정상에 그가 가진 2성구가 있다는 게 익히 알려진 전설이었다. 문제는 신선으로부터 2성구를 빼앗아 오는 방법이었다. 신선은 드래곤볼을 찾아 산 정상까지 온 모험가들에게 퀴즈를 내어, 맞히면 볼을 주고 틀리면 평생 불구로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어떤 퀴즈를 내는지까지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과연 무슨 퀴즈를 낼 것인가?’

규태는 머리를 굴렸다.

‘가보면 알겠지.’

도저히 짐작가는 바가 없어, 일단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규태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정상까지는 무려 나흘이나 소요되었다.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마지막 돌계단을 지나 정상에 오르니 구름이 손에 닿을 듯 가까웠다. 과연 전설의 모락산! 저 멀리 아직 석양빛이 남아 있었으므로 풍경을 대충 내려다볼 수도 있었는데, 과연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절경이었다. 멀리 규태가 사는 도시부터, 산맥을 따라 구불구불 펼쳐진 대자연의 장관이 위엄있게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에헴.”

규태는 헛기침을 했다. 여기 살고 있을 신선에게 건네는 일종의 노크 같은 거였다.

“에헴!”

반응이 없어 한번 더 헛기침을 하자, 쉬익- 하는 소리가 들리며 구름이 산으로 내려와 규태 주변을 감쌌다.

“드래곤볼을 찾으러 온 용사님이신가?”

하늘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치켜들고 보니 근두운을 타고 한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중이었다. 규태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외쳤다.

“소인,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어 이곳까지 힘겹게 찾아왔나이다. 부디 2성구를 손에 넣을 기회를 주소서!”

“좋소. 관례대로 퀴즈를 내어, 맞히면 용사님께서 가져가시게. 볼은 여기에 있소이다.”

신선은 소맷춤에서 2성구를 꺼냈다. 지금까지 숱하게 봐온 드래곤볼이었지만, 신선의 손에 있어서인지 2성구는 유독 빛나 보였다.

“좋습니다!”

“단, 틀리면 그에 따르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걸 알고 있소?”

신선이 말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시지요!”

“좋소. 문제는 총 7개! 시작하겠소!”

신선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외쳤고, 규태는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하나라도 틀리면 평생 불구! 다 맞히면 2성구 획득이었다.

“왕이 넘어지면?”

신선이 외쳤다. 이런 거였구나! 다행히 규태가 준비한 예상질문에 있는 거였다.
“킹콩!”

규태가 힘차게 답하자 신선이 아랑곳 하지 않고 바로 다음 퀴즈를 내었다.

“푸우가 넘어지면?”

“쿵푸!”

그렇게 치열한 퀴즈 대결이 이어졌다.

“다리미가 좋아하는 음식은?”

“피자!”

“뽑으면 우는 식물은?”

“우엉!”

“광부가 가장 많은 나라는?”

“케냐!”


허억허억. 신선이 근두운 위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숨이 가쁜 것은 규태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두 남자의 진검승부! 볼이냐 불구냐. 두 존재는 사력을 다해 인류의 운명을 건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지금까지는 규태가 잘 방어했다. 그러나 퀴즈는 두 개나 남아 있었다. 신선이 갑자기 안광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 빛이 얼마나 밝은지, 규태는 순간 눈을 감아버릴 뻔했다. 그러나 정신을 집중하고 두 눈을 똑바로 치켜 떴다. 밝은 빛에 눈물이 흘러 나왔지만, 조금도 주눅 든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고 본능이 속삭였다.


“바람이 귀엽게 부는 곳은?”

“분당!”

“제기랄, 마지막이다! ‘널 골랐더니 정말 쉬웠어’를 영어로 하면?!!!”

신선이 일갈했다.

‘젠장!’

규태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으어어 하는 신음이 나왔다. 모르는 문제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들판을 가로질러, 늙은 뱀의 목을 따고  반달곰의 가슴에 창을 찔러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널 골랐더니 정말 쉬웠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5초 주겠네. 오! 사!”

‘널 골랐더니 쉬웠어…?’

“삼!”

‘쉽다를 영어로 하면…?’

“이!”

‘정말 쉽다는 영어로 하면…?’

“일!”

그 순간이었다. 눈 감은 규태의 머릿속에 웬 백인 남자의 얼굴이 슥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기다란 타원형 얼굴, 드넓게 벗겨진 이마, 못생긴 것 같은데 어딘가 지쳐보이는 기색이라 함부로 놀리기도 어려운, 저 얼굴은 그래, 니콜… 니콜라스…

“니골라스 개이지!”

규태가 큰 목소리로 외치자 신선이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외쳤다. 

“젠장!”

규태는 직감했다.

‘정답이구나!’

잠깐 동안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규태는 신선을 똑바로 응시했다. 미간을 찌푸린 신선과 근두운의 형체가 점점 옅어졌다. 동시에 2성구가 신선의 품에서 규태를 향해 천천히 내려왔다. 

‘땡큐, 니콜라스!’

규태는 눈앞까지 다가온 2성구를 낚아챘다. 하늘을 보니 신선은 사라진 후였다. 잠시 후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규태는 차가운 모락산 정상에 대자로 누웠다. 

“하하하!”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니골라스 개이지… 쉽진 않았지만 해냈어…

규태는 자신의 성과를 머릿속으로 점검해봤다.

신선을 상대로 이겼고, 볼을 6개나 모았다. 

 

이제 모험이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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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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