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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언죄)계룡산곰돌이님 요청에 따른 미궁에 사는 몬스터 이야기 입니다.
게시물ID : freeboard_20312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식당노동자
추천 : 8
조회수 : 627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24/09/02 16:32:20

 

 

 

스켈레톤의 삶이란 보이는 것 그대로다. 좋지가 않다.

 

천 년 넘게 햇볕은 구경도 못하는 동안 내가 본 광경이라고는

나와 같은 처지의 스켈레톤들 뿐이다. 축축하고 습한 벽 만큼이나

차가운 내 뼈는 어루만져도 아무 느낌이 없다.

어디 한군데 부숴지지 않는 이상 딱히 불편한 것도 없기에

내가 의식을 가지고 있는 건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 정도이다. 고통이란 의식의 산실 그 일부가 아니던가?

 

 

"4556번, 이 봐."

 

멍하게 축축한 천장을 응시하고 있는데 멀리서 기분나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또 그 놈이다.

후드를 뒤집어 쓴 감독관 놈이다. 난 성대가 박살난 척

연기하며 천천히 고개만 돌렸다. 대답하기 조차 싫은 녀석이다.

 

 

"또 눈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네? 성대 멀쩡한거 아니까 대답좀 하자."

 

 

"애초에 동그랗게 뜰 눈도 없어."

 

 

"눈두덩이가 동그랗잖아. 예쁘게 떠. 예쁘게."

 

 

마지못해 대답했더니 이번엔 억지를 부린다. 그래서 싫은 녀석이다.

 

 

"이번엔 또 뭐야?"

 

 

후드를 뒤집어 쓴 감독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늘은 꽤 좋은 소식이라서." 라며 운을 뗐다.

좋아봤자 스켈레톤이지 뭘 바래?

그러나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였다.

 

 

"이번에 미궁 리뉴얼 공사 들어가기로 해서 말야. 당분간 휴가야.

4556번 너부터, 뒤로 1670번째 스켈레톤까지.

당분간 관짝에서 편히 쉬겠는데? 부럽구만~"

 

 

"젠장!"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감독관이 갸우뚱하며 물었다.

 

 

"왜? 휴가잖아? 매 번 용사인지 마법사인지 하는

놈들한테 시달리면서 이리저리 흩어지는 것 보단

낫지 뭘 그래? 적어도 자는 동안엔 아무 걱정 없잖아?"

 

 

"그런 문제가 아냐. 난 이 망할 미궁의 어두운 천장만

보며 천년을 넘게 지냈어. 

근데 이제는 그보다 더 어두운 관짝에, 이보다 더 좁은

공간에 처박혀 언제 깨어날지도 모른채 잠만 자라고?

난 됐어. 그냥 여기가 낫겠어."

 

 

"이상한 고집 부리지 마. 감성적인 것 까지 책임져줄 수

없는 곳이란거 알잖아."

 

 

"생각해봤어?"

 

 

"뭘?"

 

 

감독관은 서류를 내려놓고 물었다.

그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 신기한 듯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난 입을 열었다.

 

 

 

"쉬러 들어가서 의식이 어느순간 딱 끊어졌다가, 천년이건

이천년이건 관짝에 쳐박혀 있으면 말야. 다시 눈을 떴을 때

관속에서 편하게 누워있던 내 기억은 온데간데 없고

또다시 이 망할 천장만 바라봐야 하는거야.

그러다가 용사인지 마법사인지 오면 또 되도않는

이 칼을 휘두르며 공격하는 척이라도 열심히

해야 하지. 이 끝나지 않는 저주를 대체 뭘로

설명할거냔 말이야.

 

난 인간이였을 때 기억이 없어.

그래서 바깥세상이 궁금해.

그렇지만 이런식이면 이 미궁이 무너져내리는

그 순간까지도 난 그걸 영원히 볼 일이 없을거라고."

 

 

"너 지금 무슨... 바깥세상이라도 보고 싶다는 거야?"

 

 

"딱딱한 돌 바닥 말고, 대화할 상대라곤 거미밖에 없는

여기 말고... 그래, 하늘과 풀밭. 무심히 떠가는 구름을

보며 풀벌레 소리를 듣고 싶어. 찰나겠지만,

그걸 볼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은 없겠지.

아, 죽지는 못하던가?"

 

 

"아주 불가능하진 않지만..."

 

 

그러다 그는 흠칫 하며 뭔가 깨달은 듯 서둘러 일어났다.

 

 

"내가 무슨 멍청한 소리를 듣고 있는거야?

아무튼 휴가도 싫으면 대체 어쩌겠다는거야?

리모델링 사역이라도 할래? 넌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야. 바로 네 앞전 스켈레톤 까지는 인간제국

원정에 동원 될 거거든. 끔찍하구만. 

여긴 그래도 초단위로 쓸려나가진 않는데...

온갖 무기와 마법이 가득한 바깥세상에서는 그런

여유 부릴 시간 조차 없을거라고.

행운으로 알고 당장 관짝에 쳐박히던지,

리모델링 사역을 하던지 너 알아서 해."

 

 

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돌아서던 순간 나는 말했다.

 

 

"내 생각에는 세 번째 선택지도 있을 것 같은데?"

 

 

그가 고개를 돌려 날 쳐다봤다.

 

 

 

.

 

.

 

.

 

.

 

.

 

 

 

감독관은 어처구니 없다는 눈으로 기쁘게 칼과 방패를

손질하는 날 바라봤다. 난 내 바로 앞 전 스켈레톤을 대신해

인간제국 원정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날 대신해 쉬게 된 스켈레톤은 기쁨에 이를 딱딱거리며

당장 자신의 관에서 어떤 방향으로 누워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멍청하긴, 찰나일 뿐이야.

꿈 따위는 꾸지 못한다고.

 

자고 일어나서 개운함 따위도 없는데 말이지.

 

아마 녀석은 스켈레톤이 된 지 얼마 안된 모양이다.

 

 

나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풀을 밟을 때 풀이 푹 꺼지면 그 아래 있는 벌레를 밟게

되진 않을까? 하늘을 바라보다가 햇볕에 뼈가 타버리면

어떡하지? 용사가 나오기 전에 인간 말고 다른 동물도 볼 수

있을까? 그들은 날 두려워 할까?

바람을 뼈로 맞으면 어떤 기분일까? 산이라는 거대하게 솟은

땅도 있다는데 그건 어떤 모습일까?

 

우연찮게 지난 인간제국 원정에서 살아돌아온 미노타우르스가

해 준 이야기 덕분에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상상하며 원정이

시작되는 날을 고대했다.

 

 

 

 

 

- 알파 팀, 진입한다! 셋, 둘, 하나!

 

 

알파 팀?

 

 

-쾅!

 

 

"용사다! 아니, 용사... 저게 뭐야?!"

 

 

다급한 오크 방패병의 외침이 들려왔다. 용사가 쳐들어 온 모양이다!

내 역할이란 뼈방패 정도다. 적어도 살점이 있는 것들이 도망치던지

아니면 칼이라도 한 번 휘두를 시간도 주는게 내 일이다.

 

원정 전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아무튼 직업병이란 무섭다.

난 지체없이 일어나 잘 손질된 칼과 방패를 들고 다른 스켈레톤과 함께

달렸다.

 

 

쾅, 쾅, 폭음이 가까워져 온다. 마법사 라는 녀석들이 함께 온 모양이다.

나는 코너를 돌아 검은 연기가 치솟는 40층 입구쪽으로 향했다.

이미 많은 몬스터들이 쓰러지거나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있었다.

 

 

- 투두두둣! 투둣! 투두둣!

 

 

마법과는 다른 소리였다. 뭐지? 석궁? 아니다. 벽면을 튕기며 내

오른 팔목을 스쳐지나간 건 석궁의 볼트보다 훨씬 작은 것이였다.

 

용사...

 

나는 그들을 마주하곤 아연실색했다.

용사라고 하기에 그들은 너무 검고 치렁치렁 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흑기사같은 까만 철모를 쓰고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다.

천으로 된 옷 위에 검은색 갑옷같은걸 걸쳤는데, 발놀림은

경쾌하고 잘 훈련된 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손에 든 길다란 무기는 마치 마법처럼 빠르게 볼트보다 작은

무언가를 발사하고 있었다. 거대한 미노타우르스도 그것에

몇 번 맞자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인간이다! 인간이 쳐들어 왔다! 뭐 해! 다음 층에 있는

녀석들도 싹 다 불러! 이러다가 기록 깨진다고!

적어도 40층인데 5분을 못버틴다는게 말이 돼?!"

 

마나 수정구를 든 채 마법을 쓰며 악다구니를 지르던 감독관은

잠시 뒤 피잉!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뚫려 그대로 사망했다.

불쌍한 감독관. 그래도 다른 감독관처럼 날 무시하진 않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복수고 나발이고 저 인간들이 든 무기에

맞은 것들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난 도망치기로 했다.

인간 제국 원정에 나서기 전에 몸이 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난 몸을 돌려 41층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 퍼억! 퍽! 퍼억!

 

아. 머리가 박살난 것 같다. 의식이 흐려진다.

머리가 박살났다고 원정에 참여시켜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보다 자꾸만 생각이 끊

 

기는

 

 

 

내일

 

 

이던

 

 

가?

 

 

 

 


 

 

 

"70층까지는 무난하군요."

 

 

"이 앞으로는 정신공격을 하는 비홀더들이 있으니까,

여기까지만 하자고. 공병대 불러서 여기 싹 정리하고

바로 조사팀 보내자고."

 

 

"다음번엔 EMP 교란장비라도 가지고 와야겠군요.

그나저나 나가서 뭐 하실겁니까?"

 

 

새뮤얼 중사와 릭 병장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미궁의 전리품을 챙기고 있었다. 릭 병장은 미노타우르스

목에 있던 보석 목걸이를 거칠게 잡아 뜯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감독관이 들고 있던

마나 수정구도 집어들어 탄창집에 집어넣었다.

 

 

"다 챙겼나..."

 

 

그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머리가 부서진 해골 하나를

발견했다.

 

 

"그래. 내가 원한건 이거야. 다음 할로윈때 유용하겠는데?"

 

 

릭 병장은 머리가 부서진 해골을 집어들어 옷 소매로 정성스레 닦았다.

 

 

"으. 드럽게, 그거 왜 챙기는거야?"

 

 

새뮤얼 중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릭 병장이 답했다.

 

 

"이렇게 예쁘게 부서진 해골은 보기 힘들거든요.

할로윈때 여기에 전구를 박으면 꽤 그럴듯한 인테리어가 나올 것

같아서요."

 

 

"악취미야. 악취미. 그걸 잘도 손으로 만지네."

 

 

"혹시 압니까? 이 친구도 언젠가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했을 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소원을 들어주는 셈 치는거면 좋은 일

하는거죠."

 

 

"스켈레톤이 그럴 리가 있겠냐. 아, 뭐든 얼른 챙겨버리고 빨리

나가자고. 여긴 영 습해서 피부에 안좋으니까 말야."

 

 

새뮤얼 중사가 고개를 저으며 릭 병장을 채근했다.

릭 병장은 씨익 웃으며 반쯤 부서진 4556번의 머리를 든 채

출구로 향했다.

 

 

출처 퇴고따윈 안했습니다.
요청에 의한 단편이였는데 쓰는동안 재미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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