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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암군 & 폭군 열전 - 6.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게시물ID : history_202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프로여행러
추천 : 10
조회수 : 1822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5/04/04 23:09:52
안녕하세요 ㅎㅎ 요새 바빠서 정말 오랜만에 올리네요 ㅎㅎ;;

혹시나 기다리셨던 분들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오랜만에 주제는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쓰기도 힘드네...) 입니다.

1.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ceausescu-danse-avec-kim-il-sung.jpg

여러모로 닮은 두 독재자 심지어 개새끼라는 점까지...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루마니아어: Nicolae Ceauşescu문화어: 니꼴라이 차우쉐스꾸[1]IPA[nikoˈla.e t͡ʃa.uˈʃesku]1918년 1월 26일 ~ 1989년 12월 25일)는 루마니아독재자로, 1965년부터 1989년 총살되기 며칠 전까지 공산주의 국가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국가 원수(1974년부터는 대통령)을 지냈으며 1989년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자 도주를 시도하다가 총살되었다.

뭐... 워낙 ㄱㅅㄲ라 설명이 짧네요.

인생 여정을 간단히 요약하면

원래부터 공산주의에 몸을 담았고, 공산주의 운동가인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 밑에서 쭉쭉 치고 올라가 2인자까지 먹고,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이름어렵네...)가 죽고 본격적으로 루마니아를 지 입맛대로 해놓기 시작합니다.

참고로 싱가포르와 비슷하게 족벌정치, 즉 가족들이 국가를 운영하는 형태를 띄었습니다.(

차우셰스쿠는 비밀경찰 고위 관리 이온 미하이 파체파(Ion Mihai Pacepa)가 서방으로 망명한 후 자신을 배신할까 봐 두려워했고 이에 배우자인 엘레나 차우셰스쿠를 비롯한 자신의 일가족은 물론 자신의 처가 식구들까지 행정부 요직에 앉히는 족벌 정치를 하였다. 엘레나는 루마니아 공산당에서 서열 2순위(공산당 간부 감독)였다. 엘레나의 형제들도 요직에 있었는데 형 마린(Marin, 1916년~1989년)은 빈 주재 루마니아 경제국장을 맡았고 동생 안드루타(Nicolae Andruță, 1924년~2000년)는 비밀경찰 총책임자를 맡았으며 다른 동생 일리에(Ilie, 1926년~2002년)는 국방부 차관을 역임했다.

차우셰스쿠의 차남[6] 니쿠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권력 후계자로서 간주되어 왕자로서 군림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며느리를 학생 친위대 책임자로 앉히는 등 일가친척 사십여 명을 루마니아 행정부와 루마니아 공산당 요직에 임명하는 족벌 정치를 벌였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자신도 루마니아사회주의공화국 대통령, 루마니아공산당 서기장, 국가평의회장, 군 통수권자, 국방위원회장, 공산당이념위원회장, 공산주의통일전선長, 경제사회개발최고회의장을 역임할 정도로 한손에 권력을 쥐고 있었다.(출처 위키백과)


2. 악행스토리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겁니다. 간단하게 북한을 떠올리시면 됩니다(그리고 실제로 북한을 모방했던...)

1) 개인숭배정책

간단하게 북한을 떠올리셔도 되고... 이부분은 엔하위키가 예시가 잘나와있어서...

propaganda.jpg
복붙이 소름끼치는 수준....

차우셰스쿠의 통치법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한 개인숭배정책이었다. 루마니아의 국경일은 차우셰스쿠의 생일이었으며 이것도 모자라 부인 엘레나의 생일도 국경일로 정했다. 거기에 우상화 작업과 국민들을 동원한 대형 행사, 그리고 부자 세습 등등의 개인숭배 정책은 평양 방문 이후에 북한의 모습을 보고 혹해서 따라한 것이다. 문제는 자기 명줄을 재촉했다는 것...

1978년 60세 생일 때 차우셰스쿠가 썼다고 한 664페이지의 책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책을 보면 일반적인 건강한 사회나 정상적인 사람들이 보았을 때는 역겹다 못해 혐오스러울 정도의 칭찬으로 범벅된 책이었다. 이 책은 차우셰스쿠를 다정다감한 가장, 영도력 있는 지도자, 창조적인 사상가로 묘사하며 추켜세웠고 그가 살았던 집 또한 성역처럼 그려졌다.

또한 차우셰스쿠가 나오는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는 비밀경찰이 사전 감시를 철저하게 좋은 영상만 비추도록 비밀경찰의 구미에 맞을 때까지 몇시간 사진 편집작업을 해야 했으며 어색한 자세, 머뭇거리는 태도, 말을 더듬거나 찡그린 표정의 필름 찌꺼기들은 모두 수거해 비밀경찰들이 가져갔다.

또한 화면에 나오는 그 누구도 차우셰스쿠의 키(165cm)보다 커서는 안됐으며 갖가지 방법으로 키 차이를 줄이는 작업을 해야 했다. 도저히 편집이 불가능 할 정도로 장신인 샤를 드 골(196cm)이나 지스카르 데스텡 대통령(189cm) 같은 사람들은 차우셰스쿠 옆에 선 사진들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거기에 차우셰스쿠의 키가 작아 보일까 봐 차우셰스쿠의 사진 기사들의 키는 반드시 차우셰스쿠 보다 작아야 했다

우리나라는 북한이란 가까운 예가 있어서 이해가 빠르다는게 슬픔...

2) 감시, 공포정치

차우셰스쿠는 권력의 독점과 강화를 위해 국민을 도청했다. 이게 가능하겠나 싶지만, 진짜로 가능했다. 말 그대로 사방팔방에 도청기를 다 뿌려놓은 수준이다. 인구 2100만에 도청센터만 1000개, 도청기만 320만개가 있었다. 한마디로 국민들 대부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말.# 호텔의 모든 층은 도청의 대상이었고 관광업무를 담당하는 모든 일자리는 비밀경찰의 끄나풀이었다. 또한 잠재적인 경쟁자와 동료들에 대한 첩보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이러고도 비판을 할까 봐 비밀경찰들을 풀어서 사찰을 하거나 몇 사람만 모이면 잡아버리는 짓까지 했다. 또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끔 만들어 이런 식으로 반정부집단을 무자비하게 유혈진압했다. 근데 이러고도 망했다. 당연히 그와 그 일가붙이가 감행한 수탈과 부정부패는 말할 것도 없다.

이 때 루마니아의 비밀경찰과 그 끄나풀이나 정보원들을 다 합쳤을 때 그 숫자는 약 루마니아 인구에 1/4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혁명이 일어나기 몇년 전부터는 권력 장악력이 떨어진 차우셰스쿠의 빈자리를 비밀경찰들이 채웠다. 문제는 이러한 비밀경찰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는데, 이때에 들어간 돈은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가끔 차우셰스쿠도 돈의 사용처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의 부하였던 실비우 브루칸이라는 공산당 간부가 직접 계산을 해본 결과 나와 나의 집을 감시하는데 필요한 직원, 자동차, 시간외 수당등을 감안하였을 때 한달에 약 20만 레이(Lei)가 들어갔다.[5]

다만 이에 대해서는 조금 과장되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도청기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역정보를 흘리는 것을 사람들을 도청하는 것보다 더 중점적으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치 도청된 것처럼 몇몇 사람을 잡아 불순한 말을 했다고 잡아버리거나 모든 대화가 도청되는 것처럼 꾸몄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제기 되고 있다. 왜냐하면 직접 도청하는 것보다 모든 도청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한 심리적 압박과 자기검열을 하는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물론 반드시 도청해야 할 정적이나 호텔 대통령 궁 같은 장소들은 24시간 내내 도청을 했다.(출처 위키미러)

또한 그는 세쿠리타테라고 불리는 친위조직을 두고 있었다. 세쿠리타테는 차우셰스쿠의 충복(忠僕)인데, 차우셰스쿠는 고아 출신인 세쿠리타테 요원들을 어려서부터 훈련시켜 자신의 친위조직으로 만들었다. 세쿠리타테 요원들은 암살, 정보 수집 등의 임무를 맡고 있어서 차우셰스쿠의 독재정권이 유지되게 한 밑바탕 중 하나였으며 정규군 장군들 못지않은 권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3] 세쿠리타테는 크게 비밀경찰과 보안군으로 구분되었으며 이들 중 비밀경찰은 첩보와 테러를 담당했다.

다른 국가에서는 정규군이 우세했지만, 루마니아의 경우는 세쿠리타테가 우세했다. 가장 큰 이유는, 차우셰스쿠가 정규군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 그는 루마니아 정규군은 전혀 신뢰하지 않고, 차우셰스쿠의 아이들 중 자신의 지지자만 뽑아다가 자신에게 충성하는 비밀경찰과 보안군을 조직했다. 친위군 역할을 맡던 보안군들에게는 정규군에게는 주어지지 않던, 최신 장비와 높은 보수가 주어졌다.(출처 위키백과)


스탈린, 김일성 등이 했던 짓과 똑같은 짓거리를 하고 다녔다고 보시면 될거 같습니다.

전 국가의 감시화, 공포정치, 그리고 개인숭배...

3) 그 외...

몇개만 써보겠습니다.

-인구 증가 정책을 위해 낙태나 피임, 이혼 금지, 나중에는 40세 이하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다 걸리면 연봉의 20~30%의 세금을 물림. 더 심한건 아이를 못낳는 장애인이나 불임인 여자, 성 불구자 등도 세금을 매김;;;
-IMF권고로 국가부채를 줄여야 되자 국민들 식량배급을 줄여버림. 어느정도냐면 남은 돼지비계같은 찌꺼기 음식만 먹었다고(...)
-프랑스 방문 때, 영빈관 내의 모든 전깃줄과 전화선을 까 뒤집고(도청장치 확인한답시고) 영빈관에서 간단히 가져갈 수 있는 시계, 재떨이, 공예품들을 모조리 훔쳐갔다.(국가원수입니다 여러분...)
-사냥을 좋아해서 1989년 12월에는 무려 244마리의 사슴 박제, 385마리의 곰 박제를 모었다. 사냥할 때마다 동행했던 사람은 차우셰스쿠가 매년 수천마리의 야생동물들을 죽였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너무 많습니다(이게 대체 뭐하는 인간....)
자세한건 엔하위키미러 차우셰스쿠 항목 참조;;;;

https://mirror.enha.kr/wiki/%EB%8B%88%EC%BD%9C%EB%9D%BC%EC%97%90%20%EC%B0%A8%EC%9A%B0%EC%85%B0%EC%8A%A4%EC%BF%A0

3. 결과

루마니아 경제상태는 최악이 됬습니다(어찌보면 당연한 결과)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IMF의 부채는 다 갚았지만 그때문에 국가는 파탄이 났죠(돈은 지가 다쓰고 국민들 털어서 갚게하는...)

결국 티미쇼아라 시위를 시작으로 국민들의 대대적인 저항이 일어났고,
군인들 마저 국민들에게 동조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 결국 차우셰스쿠 부부는 붙잡혀서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본보기를 위해 처형 영상은 모자이크도 없이 전세계로 뿌려졌다는....
영상은 잔인한 관계로 올리지 않겠습니다(유튜브 찾으면 나오긴 합니다;)

4. 그 외...

이처럼 충격과 공포의 독재자인 차우셰스쿠이지만 놀랍게도...

루마니아에서는 차우셰스쿠를 긍정하는 세력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0년도 조사에 의하면, 41%가 차우셰스쿠를 지지하며, 63%가 현재보다 독재 시절이 더 좋았다고 보고 있고, 2014년(겨우 작년...)에는 이 비율이 더 늘어나 무려 66%가 차우셰스쿠를 긍정하는 놀라운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이유입니다.

이후에 들어선 민주정권들이 부패하고, 실업률이 급증하고, 민영화 등으로 인한 국부유출이 심해지자
적어도 일자리 걱정은 없었던(공산주의가 원래 100% 취업율 보장이죠...) 옛날을 그리워 한다는 이유입니다.

민주주의와 자유도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울러, 민주화 후에도 그 다음에 들어오는 정권의 중요성 역시 일깨워 주게 만드는 사례입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 간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E.H. Ca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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