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 OST - What A Coincidence
[출처]연예인?! 이제 그들을 말한다
글쓴이:상일이상일이 님
[2차 출처]쭉빵카페
글쓴이:네님은어디에 님
미혼모, 대마초 흡연 전과자, 3류 에로배우, 머리가 텅 빈 육체파 배우.등등
김부선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고, 지나치게 말하면 매장적이다.
그러나 그녀를 매도하는 사람들 중 ,과연 그녀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 지 의문이다.
언론의 공정성이 의심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황색언론에서 떠들어대는 말만 믿고 그녀를 오해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시대의 뼈아픈 초상, 김부선의 삶을 되돌아보자.
섬이 지독히도 싫었던 소녀
김부선의 고향은 제주도였다. 그녀의 본명은 김근희.
어렸을 적부터 자신을 가둬놓은 듯 한 섬생활이 너무도 싫어서 그녀는 18세에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다.
상경소녀의 넘쳐나는 끼는 유명 포토그래퍼의 눈에 띄어 패션모델의 길을 걷게 했다.
서구적인 마스크와 몸으로 순탄한 패션모델 활동을 하던 그녀는 패션쇼에서 하용수 감독을 만났다.
그리고 한번에 주연으로 발탁.
한국 영화 사상 전례없는 파격적인 시나리오를 주제로한 스릴러 영화 <여자가 밤을 두려워 하랴>에서 세련된 연기를 펼쳐 보였다.
3S정책으로 에로티시즘 영화가 난무하던 시절, 영화가 이름만큼 야하지 않아서 에로티시즘 팬들은 실망하기도 했으나
그녀의 연기는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영화인 <애마부인 3>의 주연으로 발탁되는 영광을 얻었다.
<애마부인3> 그 빛과 그림자
염해리라는 가명으로 영화에 출연한 후 전국적인 스타가 된 그녀는 끊임 없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우리에게 보여진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녀는 섹스가 무엇인지도 모를만큼 순진했다.
오죽하면 베드신 촬영이 힘들어서 감독이 에로비디오를 주며 이대로만 따라하라고 했을까.
아무튼 영화는 대박을 쳤고 그녀는 톱스타가 되었다.
유명영화의 후속시리즈의 주연으로 출연한 것은 그녀에게 인기라는 것을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냉혹한 루머와 "에로배우"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게 해 주었다.
"전 솔직히 의문스러워요. 그 당시에 거의 대부분의 영화가 에로티시즘 영화였는데 그 영화에 출연한 사람들은 다 지금도 배우로 잘 활동하는데, 왜 유독 저, 김부선이만 에로배우라는 딱지를 달고 사는거죠? 배우라는 것에 장르가 있나? 포르노 배우라면 모르겠지만, 하다못해 이정길선배님도 애마부인에서 제 상대역으로 나오셨는데 그분은 에로배우라고 안하잖아요. 하하하 지금 이렇게 웃지만 에로배우라고는 하지 말아주세요. 그 말 하나에 제 팔다리가 토막되는 거 같아요. 제 이미지를 가둬버린답니다. "(배우 김부선)
전두환 대통령의 만찬초대 거절과 그 참혹한 댓가
한참 유명세를 치르고 있을 때인 1980년대 중반, 김부선은 전두환대통령의 파티에 다른여배우들과 함께 초대를 받는다.
그런데 거절했다. 그것은 말로만 파티였을 뿐, 연예인들의 출세를 보증으로 한 국회의원들과의 성교제자리라는 것을
다른 연예인들의 입으로 수 없이 전해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파티를 거절한 후 김부선은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배우를 넘어선 여자로서의 참을 수 없는 수치를 당하게 되었다.
그 후 그녀는 사람들의 눈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감독님이 너 전두환대통령 파티 초대받았는데 갈거냐고 하데? 나 안간다고 했어. 자존심이 상했어. 다른애들 다 간다고 했는데 난 안 갔어. 그게 나야. 그런데 그 이후에 내가 히로뽕이나 대마초에 구속이 된 걸 보면, 과연 이게 한 사람의 보복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들어요. 왜냐면 제가 한 사람한테 피해를 주거나 그래서 적발된 게 아니라 누군가가 저를 밀고해서 잡혀갔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무관하진 않죠. 상상할 수 있는 충분한 일이에요. 저기 감히 청와대 오라는데 안 와? 이놈의 새끼. 넌 나중에 혼낼거야. 하고.."(배우 김부선)
애기 찾으러 온 사람인데...다른 것도 아니고 내 딸 찾으러 온 여자인데..
그녀는 26살에 한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녀의 지친 심신을 위로해 주던 그 남자는 김부선을 임신시키고 아이를 데려간다.
알고보니 가정을 꾸린 유부남이었던 남자는 아이를 찾으러 온 김부선을 마구 폭행하고 괴롭혔다.
아이를 찾고 싶은 마음에 김부선은 남자를 폭행혐의로 구속시킨다.
그 남자는 아이를 고아원에 맡겨놓았다고만 했고 김부선은 전국에 있는 모든 고아원을 수소문해다녔다.
그러다 한 수사관이 대마초 흡현 혐의로 그녀를 검찰로 끌고갔다.
89년이었는데 대마초를 흡연한 일은 87년이었다.
누군가의 밀고였다.
검사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상상도 못한 끔찍한 일을 겪게 된다.
"다짜고짜 물었지. 검사니까 뭔가 해결해 줄거 같았어. 내 딸 찾아줄거라고...,그래서 내가 언젠가 검사를 만나면 꼭 보여줄려고 편지를 써놨었는데 그걸 보여줬지. 정의의 칼을 든 검사님께...라는 구절로 시작해.그런데 그 검사가 그 구절을 읽자마자 바로 조수한테 칼을 가져오라고 시키는거야. 긴 장검, 니뽄도말야.
그러더니 그 칼을 우리 둘이 마주하고 앉아있는 테이블에 척 박더니 , 어이 김부선이 정의의 칼 들었어.헤헷 어떻게 해줄까? 그러는거야...
애 찾아달라고 한건데..나는 그냥 내 딸 찾아달라고 한 죄밖에 없는데..
그리고 나는 몇년전에 피웠던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됬어. 발각된것도 아니고 몇년전의 일을 누군가 밀고했나봐."
대마초 비범죄화 운동
대마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마약으로 취급되지 않는 추세고,
법도 별도의 법으로 관리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2000년 오히려 역으로 대마관리법이 마약관리법에 흡수되면서 처벌이 강화됐다.
"난 약물에 중독되었던 적이 있죠, 그 약물을 끊기 위해서 의료용 대마초를 피웠고 그래서 약물중독에서
벗어나게 되었어요. 대마초는 강력마약이라고 사람들이 알고있더군요.
그들 생각대로라면 제가 지금 손떨고 거리에서 덜덜떨면서 나앉아야죠.
저 61년 소띠예요. 16살도 못넘기고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죽을거라고 의사가 그랬어요.
지금 50을 바라보는데 하프마라톤을 뛰어요. 매일 북한산도 오르고요.
마약쟁이가 이렇게 건강할 수 있나요?"<배우 김부선>
세계보건기구, 국제기구에서 대마초의 중독성은 술과 담배보다도 훨씬 미약하며 무해하다고 입증했다.
그러나 황색언론은 그녀가 마약을 합법화해달라고 본질을 왜곡했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대마초를 피운것이 큰 죄가 아님에도 처벌받고 매장되어야 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국가이미지 개선을 위해 대마초의 흡연을 금한 이후..
김부선은 1989년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되었을때 '대마초가 마약아니라는거 알잖아요?'라고 소리치고
고개도 숙이지 않았다. 꽉막힌 보수꼴통눈에 그녀가 어떻게 보였을지 자명한 일이었다.
그녀는 최초였다.
유일하게 김씨는 대마초에 대한 현행 마약류관리법의 형사처벌 규정이 지나치게 과도하다면서 위헌심판청구와 헌법소원을 냈죠.
물론 결과는 우리나라 법체계 자체가 비과학적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며 기각됐습니다.
그녀는 2004년 다시 감옥으로 간다.
밝혀지는 더럽고 추악한 진실
"그 몬스터가 다시 찾아왔어. 그때 정의의 칼이랍시고 들고 날 조롱하던 그 검사. 있을수도 없는 일이야.
그떄가..89년이고 다시온게 04년이니 15년만이지. 자기 기억안나녜. 누구세요? 했지.
그때 중앙지검 판사로 나 만났데. 나 모른다고 했어.
근데,.나 그사람 얼굴 단한번도 잊어본적 없어 자알 생겼어요.
그얼굴 어떻게 잊어요.그 잔인한 얼굴을...
그때 나는 아이를 잃고 대마초 피고 남자한테도 버림을 받고 화냥년으로 손가락질 받고..
그래도 이 사법부는 진짜 대통령보다 빽이 있고 가장 정의로운 사람들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었고
그래서 나는 구구절절 당신한테 그 힘든 과거를 기억하며 쓴 편지를 보여줬더니.."<배우 김부선>
김부선을 칼로 조롱하던 그 검사는 김부선에게 추악한 진실을 들려준다.
김부선과 함께 대마초흡연혐의로 들어온 국회의원 K.
김부선은 10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반면 K는 불구속 기소가 되었다.
법무부 장관의 입김과 YS대통령의 계급주의 사회론이 불어넣은 참혹하고 저질스런 결과였다.
"난 너무 웃기는 게, 우리나라의 지식인들.
서울대 법대 뭐 그런 애들은 피 터지게 공부시 킬 때 뭘 가르쳤는지 몰라.
남 굴복 시키는 거, 바른말 하면 큰일나는 거, 그런 거만 배운 거 같아"<배우 김부선>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대항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가 수감생활을 마치고 2005년 다시 복귀하자 세상은 조금 바뀌어 있었다.
그녀의 용기에 숨죽이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그녀의 헌법소원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고
사회 각처에서 그녀의 용기를 지지하는 한편 세계적인 시민단체인 NORML에서도 그녀의 주장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로 인해 방송캐스팅에서 제외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당시 추진중이던 영화 2편과 드라마 1편이 취소되었다.
오로지 박찬욱 감독만이 <친절한 금자씨>의 조연역할을 들고 그녀를 기다려주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김씨는 일반적인 연예인들과는 달리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주제에 관심을 많이 갖는 사람입니다.
국가보안법 철폐나 호주제 폐지 등은 물론 반전 집회 등에도 영화배우인 딸과 함께 참여하였고,
1987년에는 국내 여성계에서 최초의 독립영화라 할 수 있는 '굴레를 벗고서'에 노개런티로 출연했었고
2004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생들의 졸업작품전에도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연기가 하고싶은 배우
"영화 <H>에 내가 엑스트라로 나왔어. 노래부르는 장면만 찍혔는데..
그거 제대로 하려고 3개월을 그것만 연습했어. 사의찬미 노래인데..이제 자다일어나도 부를것같아.
얼마전에는 <황진이>에도 나왔어.
3씬만 나오지만 너무 행복했어.
이 여자가 장덕이라는 여자인데 기녀대빵이야.
끼도 많고 재주도 많고 . 주체할 수 없이 서럽게 울다가도 본인의 자리로 돌아와서 덩실덩실 춤추고.
한을 삭여내고..근데 너무짧잖아..하하 많이 하고싶은데 역할이 너무 짧아..그래도 너무 기뻐."<배우 김부선>
굴레를 벗고 전진하라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것 같은 그녀를 보며 역사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마약 하는 3류 에로 퇴물 여배우 출신 술집 마담..>이 당대 지식인 그 누구도,
사실은 자신도 잘 알고 있으면서, 가진 걸 잃을까봐.. 얻을 게 없어서.. 고개 쳐들고 말하지 못하던 걸, 주장하고 나섰다.
그녀의 행동을 평가절하 할 방도는 수 만 가지다.
개인적이고 감정적 생떼라 일축하는 논리 만들기 일도 아니다.
그녀 입장에서 재구성 된 이야기들이 일방의 주장과 이해만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가 움직여내는 역사를 보라.
남을 해하지 않은 한 보장되어야 할 자신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은 이렇게 제고되고 강화되어 간다.
그녀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사회적 의미를 스스로 정제된 문장으로 포장해내지 못한다 해서, 그 의미가 줄어드는 거 결코 아니다.
이 땅의 지식인들, 그녀 앞에 부끄러워 해 마땅하다.<딴지일보>
"한번도 지금 내 상황을 계절로 표현해보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적이 없는데..너무 행복하네요.
이런 질문도 받아서..뜨거운 여름이면 좋겠어. 봄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양심이 있으니까 욕심 안부릴레.
그저 언젠가는 분명히 이 시련이 지나갈거고 그 후에는 아름다운 나날이 분명히 누구에게나 와요.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예요.
부선이의 봄이 왔으면 좋겠어요"<배우 김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