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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는 복싱 말고 다른 운동 해요. (40대 복싱 도전기)
게시물ID : humordata_20214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날고싶은아이
추천 : 27
조회수 : 3725회
댓글수 : 55개
등록시간 : 2024/07/22 14: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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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말부터 몸이 부쩍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론 집안일과 술과 일에 쩔여진..
노동을 제외하고는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밖에 한 게 없는
몸이 정상일리 없었다.

그동안 운동을 해보려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였다.
헬스, 탁구, 수영, 배드민턴, 러닝..
빵빵한 내 똥배만 한 의욕은 길어야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야식으로 배달온 황금올리브 치킨 마냥 맥주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에 몸은 세월을 처먹으며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불면증, 이명, 식도염, 고혈압....
주인을 향해 쌍욕을 해대고 있었지만 가볍게 무시한 주인은 알게 되었다.

아..X라 몸이 아프다.

 


 

41살이 되고 새해에는 운동을 해야지 하던 차에
매일 출퇴근하던 길에 보이던 복싱장에 퇴근길에 들러 그냥 상담이나 해봐야지 하며 문턱을 밟았을 때
와.. 처음 보는 광경.. 소리.. 냄새..

줄넘기 선수인가 할 정도의 사람들이 미친 듯이 줄넘기를 하며
팡! 팡! 터져 나가는 미트소리..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샌드백을 치는 사람들
허공을 가르며 쉑쉑 소리를 내가며 주먹을 뻗는 사람들
사각의 링 안에서 죽일 듯이 치고받는 사람들
어디선가 땡!! 하며 들이는 종소리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격투스포츠는 처음이라 솔직히 무서웠다.
그에 반해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무장한 젊고 잘생긴 관장은 다정하게 상담을 해 주었다.
(그때 그 웃음에 넘어가지 말아야 했다. ㅠ)

상담을 하고 퇴근한 난 맘에 썩 내키진 않았지만
어느새 글러브와 복싱화를 서핑하고 있는 날 발견하고 말았다.

그렇게 내 40대에 복싱이란 스포츠가 시작됐다.

 

 


 

 

 

복싱 첫날!

 

난 알게 됐다.
내가 줄넘기를 못한다는 사실을.
아니.. 그건 내가 알던 줄넘기가 아니였 더 거 같다.
내가 알던 건 그냥 바닥에서 발을 띄워 줄을 통과시키면 줄넘기인 줄 알았던 거지..

세상에!
반듯이 서서 몸을 굽히면 손이 바닥에 닿는 게 정상이라고?
사람이 3분 동안 팔을 안 내리고 들고 있는 게 가능한 거야?
그 3분 동안 계속 앞으로 뒤로 뛰고 있을 수도 있다고?
그동안 주먹도 휘둘러야 한다고?

첫날이라며 간단한 스트레칭, 줄넘기, 기본 동작들만 연습하며 1시간을 겨우 채운
내 몸은 사람이 아닌.. 갓 태어난 송아지였다.
후덜덜 다리를 떨며 집에 도착한 나는 거실을 기어가며 옷을 벗고 쓰러졌다.
아.. 내일 운동할 수 있을까? ㅠㅠ

 

 


 

 

ESPN이 2010년도에 지구상에서 현존하는 스포츠 중에 복싱이 가장 힘들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10여 년도 넘은 조사결과겠지만.. 
내가 해본봐론 힘들다로는 표현이 안 되는.. X라 힘들다 정도 되겠다.

그 힘든 운동을 난 왜 이제야... 40이 넘어서 시작했던 걸까.

매일매일을 온몸에 파스를 붙여가며 사우나에서 지지고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며
포기 안 하고 1년 반을 버틴 나에게 관장은 신박한 소리를 질러 주셨다.

회원님!  복싱 대회 나가 보실래요?

 

아.. 그 말을 그냥 씹어야 했다.
대회 준비를 한다며 매일 스파링을 하고 체력을 키우기 위해 운동을 무리하게 해 나갔다.
주말에는 로드웍을 하고 근력운동을 하고
회사 일에 집안일에 운동에.. 

드디어 대회 당일!
잊을 수가 없다.
큰 실내 체육관 한가운데 자리한 엄청나게 큰 복싱링 위에서 피를 튀겨가며 모든 걸 내 던지는 사람들
계속 소리치는 세컨 심판.. 응원하는 사람들..

시간이 지나갈수록 화장실에는 선수들이 피를 닦고 버린 화장지들과 역한 피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75kg로 출전한 난 계체량을 71kg로 통과하고 기다리며 알게 된 사실은
내 상대가 20대라는 것이었다. 아.....
원래 같은 나이대를 붙여주는 게 정상이지만 -75kg급에 연차가 맞는 선수가 20대 밖에 없었던 거 같다.
소화도 되질 않아 대충 끼니를 때우면서 몸풀기를 하고 쉬는 걸 반복하는 동안
긴장은 최고조에 도달하고 있었다.

드디어 내 번호가 불러졌다.
헤드기어를 쓰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굉장히 몸 좋고 자신감에 가득한 20대 청년 앞에 서 있었다.

땡!!

내 몸은 내 머리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었던 거 같다.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었다.
매일매일 운동이 힘들어 집으로 기어가야 했던 동안 수천번씩 반복했던 그 동작만이
내 몸에 기억되어 다시 반복할 뿐이었다.

1라운드 반 이상이 지나고 있을 때쯤 상대편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왜지?
내가 지른 기억조차 없는 주먹에 상대방은 바디를 맞고 다운이 되었다.
  해치웠나?
라는 궁극의 부활주문 같은 대사를 속으로 되뇌었다.

20대라는 게 어떤 건지 상대방은 아주 잘~ 보여주였다.
정말 쉬지도 않고 2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서로 주먹을 내 질렀다.
2라운드가 끝나고
더 이상 주먹을 올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어쩌지? 3라운드 뛸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다 못한 체 종이 울렸다.

쉬는 시간은 숨 한번 쉬면 지나가더니..

3라운드는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 같았다.
내 주먹도 상대방의 주먹도 내 몸도 모든것이 느리게만 지나가고
1초는 1분처럼 힘들며 내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내가 얼마나 맞은 거지?

상대방이 주먹을 내밀면 내 시선은 순식간에 뒤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아.. 너무 맞았나?
정신이 점점 흐려졌다.
세컨으로 온 관장이 뭐라고 계속 소리 지르는데 들리지도 않았다.
내 머리를 보호해야 할 가드는 더 이상 올릴 수 조차 없었고
그저 모든 힘을 다해 손을 내졌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땡!

드디어 끝났다.
다행이다. 다운은 안 당했어.
와이프랑 아들까지 와서 보고 있는데 최소한 쪽팔리진 않구나 생각했다.

주심이 나와 20대 청년의 팔 하나씩을 잡고 링 중앙에 세웠다.

점수 같은걸 주심과 부심이 말하더니..
이내 내 손이 하늘로 올라갔다.

진짜?

아마도 소리를 질렀던 거 같다.
링을 내려와 겨우 숨을 고르고 지나가며 그 청년과 그쪽 체육관 관장과 마주쳤다.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지나갈 때 내 뒤통수에 대화가 꽂혔다.

야! 너는 어르신한테도 지냐?

어르신? 어르신?? 어르신???
아놔~! ㅆ
아무리 졌다고 뒤통수에 어르신을 꽂다니!!

 

 


 

 

승리의 즐거움. 딱 거기까지였다.
해피엔딩 이어야겠지만.. 인생이 그리 만만한가 ㅋ
자고 일어나니 오른쪽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뭐지?

회전근개파열!
어깨를 들어 올리는 근육이 파열되었다.
아.. ㅆ 왜 내 인생은 이케 하드모드지?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을 하고 재활을 하면서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봤다.
"저 복싱 다시 할 수 있겠죠?"
그때 의느님 표정을 찍어 놨어야 했는데
"뭐 이런 미친X이 다 있지? 지가 메이웨더인가?"
눈으로 욕하기를 시전 하다 직업의식이 돌아오셨는지 얼굴을 고쳐 잡고 얘기해 주셨다.
"일단, 어깨 재활먼저 하시고 운동은 1년 뒤에나 생각해 보시죠."

메이웨더는 아니지만 정말 열심히 1년을 재활에 매진했다.
드디어 1년 만에 체육관에 다시 나갈 수 있을 때 또 흥분했던 거 같다.

몇 개월을 몸이 적응한다 했더니..
그날도 재수가 없었던 거 같다.
2:1 스파링 이라니.. 관장이 미쳤어.
한 명을 주시하다 다른 한명을 놓쳤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눈앞에 보이는 주먹에 다운됐다.
회심의 스트레이트를 날린 그놈은 우리 아들이었다.
누구 닮았는지..
주먹이 맵다. 매워.
눈이 떠지질 안았다. 또 뭐냐.. 

안와골절!
오늘 쪽 안구를 받치고 있는 뼈가 함몰돼서 눈알이 아래로 내려앉았다.
아놔~! 이젠 인생 울트라 모드인가?
대학병원에서 수술하고 2인실에 입원했다.
오랜 지병으로 입원실에 계시던 어르신이 어쩌다 그리 됐냐고 물으셨다.
사실대로 얘기하면 또 미친X 보듯이 보시겠지?

그렇게 복싱으로 두 번째 수술을 하고 다시 복싱을 시작했다.
여기서 울트라모드 끝나면 재미없겠지? ㅋㅋ

그날따라 정말 치고받고 하고 싶었는지
내 아들뻘 되는 갓 20살 되는 친구와 몇 라운드째 하는지도 모를 스파링을 계속 이어갔다.
원투 빽 스트레이트
위빙 더킹 스웨이 체크훅
원 어퍼 위빙...위빙
그때쯤?
헤드기어도 쓰지 않은 우리는 머리끼리 부딪혔다.
얼마나 쌔게 부딪혔는지..
링 바닥에 피가 쏟아지고 있는데 이게 내 머리에서 나는 건지도 몰랐다.ㅠ

왼쪽 눈 옆이 손가락 한마디 반이 찢어져 버렸다. 
흐르는 피를 누르며 응급실을 어렵게 갔지만.. 응급환자가 너무 많은 탓에
응급처치만 한 후에 다음날에야 수술이 가능했다.

이로써 3번째 수술!

 

 


 

 

살면서 이렇게 까지 계속 무언가에 매달려 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이거 평생 할 수도 있겠는데?

체육관 한번 차려볼까?

그 정신 나간 생각에 꽂혀 생활스포츠지도사 2급 복싱에 지원했다.
(어느 스포츠든 체육관은 지도사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없으면 불법!!)
나중에 알았지만 복싱은 합격율이 1~20%대 밖에 안된다.
무사히 필기를 합격하고 실기를 준비하는 동안 발톱이 빠질 정도로 연습하고
회원들 미트를 받아주고 오소독스/사우스포 모든 스탠스를 연습했다.
그때 했던 연습으로 지금은 스위칭이 자연스럽게 돼서 좋다.

대구

실기 시험장이 대구였다. 새로 온 관장도 자격증이 없어서 같이 시험 보러 전날부터 출발했다.
역시 대구는 막창의 메카였다.

구두시험을 보고 실기시험을 보기 위해 줄을 서서 몸을 풀고 있는데
내 앞에서 몸 푸는 사람을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전 아시아 챔피언! 유튜브에서 많이 봤던 사람이다.
아는 체는커녕 둘 다 준비하기도 바빴다.

실기를 마치고 내려오는 계단에 와이프가 기다리면서 반겨주었다.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지.. 자기 남편이 3번이나 수술해 가면서 하는 이 미친 운동을
포기하란 말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
항상 그랬다. "하고 싶으면 해" (어차피 하지 마라 해도 말을 안 들으니..ㅋㅋ)

그렇게 1년을 다 한 끝에 자격증을 손에 쥐었지만..
체육관을 차릴 돈이 없다 ㅠㅠ

지금도 다니던 체육관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
41살에 어설픈 줄넘기부터 시작해 48살이 되었다.
시작했을땐 혼자 였지만 지금은 대학생 아들과 고등학생 아들도 같이 운동한다.
체육관에선 고인물 아니라 썩은물로 취급받고
아직은 복싱이 재미있는 거 같지만
몸이 점점 머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자주 아파서 너무 아쉽다.

40대의 복싱 도전기

끝.

출처 https://tonyjjin.tistory.com/11
나의 4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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