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쯤 나는 09년식 스타렉스를 몰았다. 29만 언저리 쯤 운행한 중고였는데, 여름에 살 땐 잘 몰랐지만 겨울이 되니 시동이 잘 안걸렸다. 결국 어느날, 일을 나가야 하는데 차 시동이 끝까지 걸리지 않아 보험사를 불렀는데 전에 있던 차의 문제들로 이미 출동횟수를 모두 써 버린 뒤였다. 카센터 직원은 배터리를 충전해 줬지만 따로 출장비가 발생했다.
나는 지갑에서 떨리는 손으로 오만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그건 며칠 치 식비였다. 어떻게든 시동은 걸렸으니 일을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 경고등이 뜨고, 결국 차를 카센터로 돌려야 했다.
"응 그래. 난데... 그렇게 됐어. 미안한데 삼십만원만 빌려줘. 제네레이터가 나갔는데 한두푼이 드는게 아니네... 미안해. 응. 고마워. 꼭 갚을게."
수리비를 어떻게든 구해서 너는 차를 고쳤다. 뒤 이어 나는 일을 나가기로 한 곳에 사정을 설명했지만 냉정한 목소리로 "그럼 계약금은 못 돌려줍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전화를 끊었고 난 일을 날릴 수 밖에 없었다. 화내는게 당연하지.
수중에 남은 돈이 없었다. 이만 얼마쯤 남은 돈은 기름값으로 모두 썼다.
겨울에는 일이 잘 없다.
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 집에 있는 돈을 모두 찾아내 만 얼마쯤을 만들어내고 그걸로 술을 사 먹었다.
"내가 일부러 그랬냐고. 어? 내가 일부러 그랬냐고!"
삼각김밥 세 개를 안주삼아 소주 세 병을 먹고 나는 누워 울었다. 그리고 잠들었다.
그 다음날부터 며칠동안 물류센터 알바를 뛰어 돈을 갚고 생활비를 마련했다.
밀린 집세는 언강생심이다.
- 다음 달 까지 밀린 집세를 좀 해결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도 더는 못 기다립니다.
집주인의 요구는 당연했다. 나는 사정사정하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난 뒤에야 시간을 좀 더 벌 수 있었다.
기억은 그렇게 다시 끄집어 내 졌다가, 가슴한 켠 서랍장에 넣어진다.
나는 지금 23년식 스타리아를 몬다. 어젠 쉬는날이라 차 시동을 걸 일이 없었다. 날이 추운데 그래도 한 번은 걸어야 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귀찮아서 나가지 않았다.
오늘 아침 차 시동을 걸었다. 추운날씨더러 '어쩌라고?' 하는 듯 차 시동은 아무 일 없이 걸렸다.
조금 맥이 빠졌지만 좋은 일이다.
편의점에서 따뜻한 음료를 샀다. 며칠 뒤에 친구들을 만나는 김에 새 옷과 신발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내일 출근시간 전 미용실을 예약해뒀다. 최근에 온라인게임 와우에 빠져있기 때문에 지난 일요일날 3개월치 계정비를 선결제했다.
그냥 쓰고싶은 것 대충 하고싶은 것 하며 산다. 어제 사먹은 돼지갈비는 맛있었다. 그냥 그런저런 또 그럭저럭 좋은 날이다. 어제도 오늘도.
나아지고 있다.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지만 한걸음 또 하루 지날 때 마다 상처를 흩뿌리고 간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옅지만 미소가 돌아온다.
노래가사처럼 인생이 나에게 술한잔 사주지 않은들 어때. 그러든 그러지 않든, 위로를 바랬던 시간을 어떻게든 쥐어짜서 버티다 보니 그런건 아무래도 좋은 날들이 점점 오고 있는걸.
내년 이 맘 때 쯤엔 고개를 끄덕이며 웃을 수 있길 바란다. 더불어 그렇게 시퍼런 날들을 보낸 나에게 말한다.
"괜찮아. 곧 좋아질거야. 술마시고 마음껏 울어. 너무 오래는 안되겠지만 적어도 하루쯤은 그래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