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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연맹 사건에 관해 오늘날 극우세력들이 보는 인식.jpg
게시물ID : history_201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esert_Fox
추천 : 7
조회수 : 1231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5/03/27 08:02:28

 

 

 

 

 

 

이 책은 인영사 출판사라는 곳에서 나온곳으로 원세훈 재임시절의 국가정보원이 만들어낸 책입니다. (국가정보원이 쓴 책 관련 기사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8594 )

 

 

 

정보기관(국가정보원)에서 만든 이 책이 오늘날 극우 세력들이 보도연맹 학살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자료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요약하자면, 보도연맹 상당수가 좌익전향자 출신들이었고, 이 사람들이 한국전쟁 터지자마자 인민군이 점령,입성할때 인민군에 적극 부역한 자들이기에 예비검속 차원에서 학살한것은 불가피했고 정당했다는 이런식의 논리...


한마디로 개소리죠. 학살에 있어서 국제법 준수조차 씹어버리고 사법절차도 없이 저지른 불법적인 학살 행위를 정당화하다니..

 

반공 사상검사 출신 오제도씨(이 사람 극우 꼴통쪽으로 매우 유명한 사람..)의 증언을 통해서 이미 이거 다 개소리로 밝혀진 사안인데..ㅉ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4


■ 국민보도연맹(보련) 학살 사건

6·25 발발 직후인 50년 6월28일∼8월31일 수원 이남 지역에서 약 30만명으로 추산되는 민간인들이 보련원이라는 이유로 퇴각하던 경찰과 우익단체에 학살된 사건이다. 보련은 49년 4월5일 결성된 전향자 조직을 일컫는다. 당시 유명한 사상 검사이던 오재도 검사(현재 변호사)가 만든 보련에 가입한 이들은 전국적으로 50만명을 웃돌았다. 오변호사는 보련 결성과 학살이 자행된 경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보련은 세계 사상사에 유례가 없는 성과로 외국에서도 조사해 갈 정도였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면서 보련원들이 적에게 동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인해 경기도 이남에서 학살이 벌어졌다.” 

오씨는 국전쟁 개전 초기 서울에서 미처 피난 가지 못한 군경과 가족이 의외로 많이 살아 남은 데는 보련원들의 도움이 컸다면서, 수원 이남에서 무차별 학살한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이북에서도 반동으로 규정된 보련원은 오히려 인민군이 숙청할 대상이었는데도 남한쪽 군경이 심사도 하지 않고 무조건 집단 학살했다는 것이다. 서울과 경기 북부의 보련원만 학살을 모면했을 뿐 전국 각지에서는 약 30만에 달하는 보련원들이 영문도 모른 채 불려가 학살당했다. 30만이라는 숫자는 4·19 직후 전국 각지의 유족들이 국회에 낸 청원 내용에 들어 있다. 

오재도씨는 “이제 정부가 보련 가입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공식 확인해 범국가 차원에서 위령제를 올릴 때가 되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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